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6.07 07:48

[김윤석의 드라마톡] 또 오해영 11회 "마침내 모든 진실을 알다"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오해와 갈등이 깊어지다

▲ 또 오해영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또 오해영.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로부터 원망을 듣게 되는 경우란 것이 있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실수도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인데 자신이 원인이었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인해 자기가 이유가 되어 누군가 상처받고 피해입는다.  

억울하다. 하지만 더 억울한 것은 결국 그로 인해 실제 상처받고 피해입은 당사자들일 것이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마음껏 해 볼 수 있었으면. 마음껏 미워할 수라도 있었으면. 오히려 안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 자기에게도 무척이나 살갑고 친절했었다. 그러면 아픔까지도 너무 선명한 이 상처들은 어쩌란 말인가. 모든 진실을 알고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예쁜오해영(전혜빈 분)을 향해 살기까지 품고 달려들었으면서도 결국 그냥오해영(서현진 분)은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만다.

차라리 내가 미웠다. 차라리 못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예쁜오해영의 잘못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에게 어떤 나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태진(이재윤 분)을 파멸시켜 자신의 결혼을 깨뜨린 것도 순전히 우연히 이름이 같았던 예쁜오해영과 자신을 착각했던 때문이었다. 행위는 있는데 동기가 없다. 결과는 있는데 의도는 없다. 행위 자체와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결국 동기와 의도 만큼 원망과 미움이 갈 자리가 비게 된다. 신마저 없다면 그 마음이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래서 더 박도경(에릭 분)의 한 마디가 간절했던 것이다. 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기 잘못도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자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예쁜오해영이 아닌 그냥오해영 자신이 모든 원이이었던 것이었다. 자기로 인해 박도경이 두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 전도가 유망하던 사업가를 범죄자로 만들었고,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예비신부에게 파혼이라는 멍에를 씌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기에 대한 원망 때문이다. 결혼식 당일 자신을 버리고 떠난 자기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기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사람의 자존심이란 하찮고 비열하다. 그러므로 자신은 괜찮다. 자신은 만족할 수 있다. 그냥오해영이 바란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박도경은 무릎을 꿇을 만큼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그냥오해영이 박도경을 사랑하게 되고 난 이후의 모든 시간들이 의미가 있었다.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엇갈린다. 자존심이라기보다는 배려였다. 배려라기보다는 자존심이었다. 쉬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냥오해영의 다짐이었다. 사랑에 빠진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자신의 마음을 결코 이대로 의미없이 놓아보내지 않겠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다. 죽음을 앞두고 환각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더이상 그녀를 붙잡으려 해서는 안된다. 떠나려는 그녀를 이대로 떠나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리고 남은 그녀는? 그녀에게 남겨진 상처들은? 그녀의 감정과 마음들은? 사랑도 너무 멋있게 하려고 한다. 참 안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나마 그동안도 자존심을 돌아보지 않는 그냥오해영의 무모함이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예쁜오해영에 대한 오랜 열등감이 그 흉칙한 상처를 벌리며 그나마 물러설 곳 없이 그냥오해영을 몰아세운다. 조금만 물러서려 해도 영혼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들이 그녀를 움츠러들게 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마저 떠올리게끔 만든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더이상 낮출 것도 없다. 지금 여기가 한계다. 이제는 누군가 상대편에서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 차례다. 알면서도 박도경은 그냥오해영을 위해 돌아서기를 포기한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를 거부한다. 자신을 찾아온 예쁜오해영에게 매몰찰 정도로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도 너무 진심이어서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큰 절망이 찾아온다. 가장 떠올리기 싫은 오랜 상처가 그녀의 행복을 헤집는다. 극과 극이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활짝 웃던 얼굴이 세상이 지워진 듯 먹먹하게 닫힌다. 감정이 선명하지 않을때가 가장 극한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을 때다. 예쁜오해영도 박도경을 직접 찾아가서 고백하며 울며 웃는다. 웃으며 운다. 박도경의 꿈인 때문이다. 박도경의 입장에서 보는 환각이다. 자신이 아닌 그녀들만이 오로지 살아있다.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이 휘감으며 그늘을 만들고 그림자를 드리운다. 입체가 된다. 그녀들을 지켜보는 박도경은 여전히 평면이다. 의도한 것이든 우연의 결과이든.

어이없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차라리 자기의 약혼녀를 빼앗으려 그런 것이라면 화는 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자기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자기의 약혼녀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도 아니었다. 자기를 노린 것도, 자기의 약혼녀를 노린 것도 아니었다. 오해였다. 착각이었다. 실수였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실수로 자신의 사업은, 자신의 사랑은, 자신의 삶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원망하고 미워해야 하는데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한 나머지가 남는다. 어쩔 줄 모르고 차안에서 몸부림치는 한태진의 모습이야 말로 그 나머지의 흔적이다. 자신으로 인해 또다른 오해영이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예쁜오해영은 비로소 감당해야만 한다.

맞아떨어지는 것은 없다. 원인과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같은 부조리와 모순 가운데 인간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예정에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죽음처럼. 어떤 사고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인다. 개연성은 드라마를 위해서나 필요하다. 그 과정에 있다. 오해와 갈등은 커져간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