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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6.02.17 20:22

[권상집 칼럼] 악마의 계약, 프로듀스101 계약서 파문

문화권력의 슈퍼갑질 – 연습생을 노예로 간주하는 불편한 시선

▲ 프로듀스101 ⓒCJ E&M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CJ E&M은 국내 문화산업 모든 분야에서 슈퍼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이미 지상파 및 종편을 압도하고 있고 영화에서는 독점 논란이 있을 정도로 영화계 시장의 50% 점유율을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음악/공연 산업에서 CJ E&M의 말 한 마디는 중소기획사 대표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업계에서 CJ의 지독한 갑질이 종종 화두로 떠오를 정도니 문화산업 토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 같다.

일간스포츠의 단독 보도로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계약서 내용이 일부 노출되었다. 밝혀진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게 만든다. 기존에 수많은 오디션 프로를 기획하며 출연자와의 논란을 경험하면서 쌓인 학습이 집약되어 나타난 계약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엠넷의 대표적 논란거리 중 하나인 ‘악마의 편집’을 우려해서인지, 방송 내용을 통해서 나타나는 네티즌 및 시청자의 반응과 결과에 대해서 출연진이 일체 명예훼손 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 드러났다. 억울해도 ‘힘 없는 네가 참아’라는 식이다.

엠넷이나 tvN은 그간 방송 편집을 통해 출연자들 간의 시기와 질투를 적나라하게 조명하는데 역량을 발휘했고 이로 인해 일부 출연자는 네티즌들의 융단 폭격과 같은 비난을 받았다. 그때마다 출연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SNS 등에 엠넷을 비판했으니 이번엔 철저하게 100명이나 되는 여자 연습생들에게 출연 전에 엠넷이 ‘감히 우리에게 도전하지 마’라는 선포를 내린 것과 다름 없다. 이 정도면 과거 SM 등이 논란을 빚었던 노예계약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출연료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지상파의 인기 배우들이 CJ의 방송 채널에 출연할 정도로 이미 CJ는 방송계에서 절대권력을 자랑한다. 그 이유는 지상파, 종편도 감당 못하는 출연료와 제작비 등 엄청난 예산을 CJ가 쏟아 붓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CJ가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출연료는 지상파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런데 ‘프로듀스101’에 출연하는 아이돌 지망생은 출연료 자체가 0원이다. 이 역시 ‘엠넷 방송 출연을 고마워해라’라는 갑질의 마인드가 담긴 계약서 조항이다. 출연료가 전혀 없어도 참아야 하고 문제가 생겨도 절대로 민형사 소송을 하지 말라는 계약서를 통해 슈퍼갑질이 얼마나 을을 얕보고 무시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논란거리는 많다. 출연자의 가족 및 기획사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정보에 대해 사전 누설할 경우 엠넷과 계약 해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방송 공개 전 스포일러가 워낙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해도 (그동안 엠넷이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종종 출연자들의 스포일러가 존재하긴 했다) 법적으로 스포일러 자체를 통제한 건 안타까운 발상이다. 이 계약서 조항을 기획한 사람은 굉장히 치밀하고 철저하게 갑의 자세에서 을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파고들며 작성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엠넷은 ‘해당 내용은 범용적이고 일반적인 표준 출연 계약에 대한 내용’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유감을 표명해야 할 당사자가 바뀐 느낌이다. 이번 ‘프로듀스101’에 참여한 기획사는 46개, 여자 연습생만 101명이 모였다. 취지야 거창하게 ‘제작하다’와 ‘입문’의 뜻을 결합해서 ‘프로듀스101’으로 프로그램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의 유치함과 진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여자 연습생간의 경쟁과 갈등, 전형적인 오디션 틀에 갇힌 진부한 스토리, 전문가도 아닌 장근석이 전체를 지휘하는 코미디 같은 설정이 뒤엉키며 프로그램은 이미 산으로 간지 오래다.

거대 기획사는 해당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연습생을 내보내지 않았다. 자체 트레이닝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엠넷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소형 기획사만 을의 입장에서 또 한번 철저하게 슈퍼갑의 폭력적 조항에 휘둘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출연만 시켜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소년 소녀들이 대한민국에 넘쳐난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다. 101명이 집단으로 춤을 추며 전문가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힘없는 을이 슈퍼파워인 갑의 선택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걸 연상케 한다.

종종 언론에서는 노예계약 파문이 있을 때마다 기획사들의 갑질 행태를 비판하고 거대권력 CJ의 독과점 행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설날이나 추석 때는 아이돌을 헐값에 집단으로 출연시켜 이들의 애처로운 행태를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이번 설 특집에 방영된 SBS의 ‘사장님이 보고 있다’ 라는 프로그램. 타이틀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슈퍼갑질을 연상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사장님이 보고 있으니 조심히 잘하라는 뜻인지, 알아서 기어가라는 뜻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제목을 지었음에도 방송에 출연한 임원과 제작진은 즐겁기만 한 모습이다.

이번 프로듀스101 계약서 유출 파문과 관련하여 엠넷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출연자들의 출연료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열정페이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돌 지망생 위에 군림하는 기획사들과 해당 기획사들 위에 군림하는 대기업.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로 운영되며 약자에게 지속적으로 불리한 입장을 강요하고 종용하는 슈퍼갑들의 행태. 일방적인 승자독식구조가 전체 문화산업의 해악을 부추기며 업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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