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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1.27 07:21

[김윤석의 드라마톡] 육룡이 나르샤 34회 "대의와 대의, 서로 용납할 수 없는 패업의 한가운데에서"

죽거나 죽이거나, 내일이란 없는 오늘의 절박함에 내던지다

▲ 육룡이 나르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육룡이 나르샤. 대의가 대의인 것은 대의란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의란 보편이다. 균질이다. 모든 곳에 존재하며 모든 것에 미쳐야 한다. 더 큰 대의가 작은 대의 여럿을 아우를 수는 있어도, 같은 대의가 한 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 대의를 쫓는다는 것은 그래서 외롭고 참혹하며 고단한 과정인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짓밟고 오로지 대의 하나만을 남겨야 한다.

어쩌면 이성계(천호진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 모두 마음놓고 있었을 것이다. 이인겸을 실각시키고, 길태미와 홍인방을 제거했으며, 마침내는 최영마저 몰아내고 있었다. 잠시 위화도에서 함께 회군했던 조민수가 경쟁자로 나서기는 했지만 이미 둘 사이에 힘의 우열은 너무나 분명했었다. 그나마 이색(김종수 분)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명성과 명분 뿐이었다. 정몽주(김의성 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가 얼마나 반대하고 반발하든 힘으로 왕을 끌어내리고 고려의 역사를 끝장낼 수 있다. 스스로 왕위에 올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선포할 수 있다.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더 완벽한 때와 명분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흐르게 될 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원망과 불만은 결국 새로운 왕조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나타나게 된다. 순조로운 출발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정몽주와 같이 학식과 인품과 명망을 모두 갖춘 인물이 자신들과 뜻을 함께한다면 더 완벽한 상태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몽주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조금 더 멀리 돌아가는 것도 결코 늦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몽주는 아니었다. 정몽주에게는 오늘밖에 없었다. 내일이란 없었다. 당장이라도 정몽주 자신의 숨이 끊어지면 고려의 역사는 끝나는 것이었다. 아니 저들이 먼저 행동에 나서면 고려의 역사와 함께 자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이었다. 자신이 살려면 고려를 살려야 하고, 고려를 살리려면 먼저 고려를 위협하는 저들을 죽여야만 한다. 죽느냐, 죽이느냐, 정몽주에게 오로지 선택이란 이 두 가지밖에 없었다. 사는 것은 저들을 죽이고 나서다. 저들을 죽이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위조차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적들을 죽이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바로 그 차이가 지금 이성계와 정도전이 겪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왔다.

자신과의 오랜 우정과 신의마저 볼모로 삼은 정몽주의 비열한 책략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도전도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정몽주의 대의와 자신의 대의는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몽주의 대의는 고려에 있었고, 정도전의 대의는 자신이 세우려는 새로운 나라에 있었다. 정몽주의 대의가 고려를 지키는 것이었다면, 정도전의 대의는 바로 그 고려를 부수는 것이었었다. 정몽주가 고려를 포기하지 않고 정도전이 새로운 나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다. 서로 반대편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대의를 이루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정몽주에게 타협이란 정도전과의 공존이 아닌 자신이 찬성했던 토지개혁의 대상이던 부패한 사족들을 사면시켜 도당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고려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잠시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협력할 수 있다.

정몽주와의 대화를 통해 이방원(유아인 분)도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당장 자기 살 길을 찾아 대장이라 부르며 따르던 분이(신세경 분)에게 몰려와 따져묻는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서 현실을 실감한다. 백성들은 이미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손놓고 있다가는 정몽주를 앞세운 권문세족의 반격에 모든 것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자신들에게도 고난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자칫 죽을 수도 있다. 그저 권력싸움이 아니다. 누가 더 높은 관직에 오르고, 더 큰 권력을 쥐고, 그러다가 싸움에서 지게 되면 모든 것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납작 엎드리면 되는 그런 한가한 싸움이 아니다. 아니 그런 한가한 싸움에서조차 승자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패자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철저한 파멸만이 돌아갈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일단 싸움이 시작되었다면 이겨야 한다. 하물며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대의를 앞세운 싸움이다. 관용도 타협도 없다.

그토록 올곧던 선비 정몽주가 이처럼 비열하고 냉혹한 정치가로 돌변하고 만 이유였다. 정몽주의 변화에 대해 전해듣자마자 이색이 정도전을 원망하는 말을 내뱉고 마는 이유였다. 그만큼 절박했던 때문이었다. 막다른 궁지까지 몰려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을 지키고 돌볼 최소한의 여유마저 없었다. 신의도, 양심도, 인정도, 명예도, 유자로서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신념마저도 모두 그를 위한 제물로 내놓는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 한 가지만큼은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 정도전 역시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도저히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꿈을 위해 유자로서의 자신을 포기해 왔었다. 정도전이 그동안 정몽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해 온 이유이기도 했다. 정몽주야 말로 그동안 자신이 꿈과 이상을 위해 포기해 온 자신의 대신이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자로서의 자신을 초기한 정몽주와 마주하며 정도전은 비로소 오랜 꿈에서 깨어난다. 그만큼 서로에게 간절했고 절실했던 그 한 가지가 이미 서로를 마주한 채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늦었지만 선택해야 한다. 죽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산다는 선택지는 없다. 살린다는 선택지도 없다. 죽이면 산다. 살리면 죽는다. 아버지에게 그같은 사실을 명확히 한다.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단 둘 뿐이다. 호위라고는 없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 이성계와 이방원 둘이서 정몽주가 보낸 병사들을 따돌려야 한다. 잡히면 죽는다. 만일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면 자신들은 산다. 선택의 연속이다. 정몽주를 죽이거나, 고려를 무너뜨리거나. 실패한다면 모두는 죽는다. 그야말로 백척간두다. 벌써 오래전부터 정몽주는 지금 이방원이 서 있는 그곳에 서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는다. 삶과 죽음이 그 순간 갈린다.

결국 이성계를 말에서 떨어지도록 만든 것은 정도전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땅을 빼앗긴 권문세족 조성원이었다. 아무 존재감없이 그저 기분나쁜 배경처럼 권력자의 주위를 맴돌던 그가 어쩌면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 행동에 직접 나선다. 절박함이란 반드시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쫓고 신념을 지키려는 어떤 대단한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탐욕이다. 욕심이다. 자기 것을 잃은 데 대한 원망이고 분노다. 하지만 더 솔직하고 더 직접적이다. 내 것을 되찾겠다. 내 것을 지키겠다. 빼앗긴 땅을 돌려받기를 바라던 가난한 백성들처럼, 아니 오히려 가진 것이 더 많고 더 크기에 간절함도 더 크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그들마저 또한 인간이며 개인이다. 개혁을 하자는 입장에서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현실의 모순이고 부조리이며 비정상이겠지만 자신들에게는 이미 당연하게 이어져 온 일상이었다. 사회전체에 있어 정의의 실현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누리고 있던 것들을 빼앗기는 또다른 모순이고 부조리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개혁에 나서듯, 또다른 모순과 부조리를 막기 위해 반발하며 개혁에 맞선다. 개혁에 대한 당위 만큼이나 개인의 절박한 이유들을 이이고 그 위를 밟고서 나가야 한다. 때로 피를 부른다. 더 치열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과연 천하제일검이다. 가마를 지키고 있던 무휼(윤균상 분) 이하 이성계의 무사들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척사광(한예리 분) 손짓 몇 번에 모두 쓰러지고 만다. 그나마 무휼만이 힘을 앞세워 한 번 칼을 부딪혀 보았을 뿐 그마저 그 다음을 견디지 못했다. 다만 결정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이성계를 암살하기 위해 살수로 나선 상황에조차 피를 꺼려하여 이성계가 타고 있다 여긴 가마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오로지 칼등으로만 공격한다. 여전히 실력차가 압도적이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조그이라도 허점을 드러낸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달밝은 밤 하얀 눈 위를 달리는 흰 옷의 미녀가 아름답다. 철저히 미학만을 추구한 영상이고 연출이었다. 무휼과의 인연은 아직 이어지고 있지 않다.

무명의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무극 연향(전미선 분)과 육산선생(안석환 분)과의 사이에 충돌이 예고된다. 공양왕(이도엽 분)의 소심함이 정몽주의 절박함에 제동을 건다. 당장이라도 정도전과 그의 당여들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이성계가 살아돌아온 뒤가 두렵다. 이성계를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한다. 모든 힘을 동원해 살아난다. 이방원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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