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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8.28 07:32

[김윤석의 드라마톡] 어셈블리 14회 "정치인 아닌 정치인 진상필, 정치인들에 외치다!"

정치공학과 정치인이라는 직업, 그들의 생존법에 대해

▲ '어셈블리'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셈블리. 정치인들이 정치공학에 매달리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직업이다. 정치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다. 정치를 해야만 한다. 정치를 그만두어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려 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끝내지 않으려 한다. 직장인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던가.

인간이 정치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당장 취직부터 해야 한다. 취직하고 나서는 잘리지 않고 끝까지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어야 한다. 밀려나지 말아야 한다. 남들보다 앞서지는 못해도 뒤쳐져 도태 되어서는 안된다. 남들 하는 만큼 한다. 남들 하는 만큼 인사담당자의 마음에 들려 준비와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남들 하는 만큼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눈치를 살핀다. 동료로부터 믿음과 인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하급자로부터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정치다.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다. 더 유리한 조건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다.

진상필(정재영 분)이 마음놓고 다른 정치인들을 질타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진상필은 정치인이 아니다. 일단 직업이 국회의원이니 정치인이 맞을 테지만 아직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지 않다. 국회의원으로서 재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더 가치있는 것들이 있다. 정치인 이전에 한 국민으로서, 그것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해고노동자 출신으로서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꿈꾸어 온 것들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설사 재선을 못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실제 진상필은 마음 한 구석에 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도현(장현성 분)은 아니다. 조웅규(최진호 분) 역시 아니다. 박춘섭(박영규 분)도, 강상호(이원재 분)도 마찬가지로 전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이 아닌 자신은 상상할 수 없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은 자신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당장 자신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배지를 잃는 순간 함께 잃어야만 한다.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조웅규도 솔직하게 사적으로 후배이기도 한 최인경(송윤아 분)에게 털어놓는다. 국회의원 배지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세상의 비난과 비웃음마저 무릅쓴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차라리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포기하는 쪽이 더 쉬웠노라고.

그래서 백도현도 감히 대통령과 맞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백도현을 멀리하던 친청계의 국회의원들 역시 진상필이 사무총장이 될 경우를 저울질하며 백도현의 편에 서고 있었다. 백도현의 지금껏 자신과 적대하던 반청계의 수장 박춘섭(박영규 분)을 설득하여 협조를 얻어낸 논리 역시 한 가지였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누리던 기득권들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껏 누리던 것들을 지키려면 자신을 도와야만 한다. 그만큼 필사적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국회의원 배지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마저 당에서 내몬다. 소속된 정당을 박차고 뛰쳐나간다.

그래서 진상필은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었다. 사무총장이란 족쇄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다. 대통령의 변덕으로 마음대로 갈아치운 사무총장따위 반드시 자리를 지키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자기가 하고픈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무총장도 되어 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바란다.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을 테니까. 백도현이 다시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다시 언제든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갈아치울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버림받고 사무총장자리까지 위협받을 때는 백도현 역시 청와대와 기꺼이 맞설 수 있는 거물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사무총장 자리와 대통령의 신임을 되찾고 싶은 목적에서였다는 것이 진상필과의 차이였을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자가 존엄할 수 없다. 욕망이 족쇄가 되는 과정이다.

정치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다. 크든 작든 권력이다. 홍찬미(김서형 분) 역시 국회의원이라는 권력과 친청계 수장 백도현의 측근이라는 권력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을 꿈꾼다. 발버둥들이다. 대통령과도 맞서고, 어제까지 적대하던 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던 손을 다정히 맞잡기도 한다. 나머지는 그 다음이다. 일단 회사에 자신의 자리가 남아 있어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상필이 매력적인 이유다. 국회의원인데 여전히 자기가 국회의원이 아닌 척 행동한다. 국회의원이 아닌 척 국민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과감히 해준다. 하지만 역시 정치인은 아니다.

어쩌면 더 큰 그릇일 것이다. 국민당이라는 일개 정당에 담기엔 너무 크다. 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료국회의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만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 자신으로 인해 죽었다 여기는 선배 배달수다. 죽은 이를 바꿀 수는 없다. 죽은 이가 바뀔 수는 없다. 한결같은 의지를 오롯이 자신은 따라야만 한다. 설사 그로 인해 공천받지 못하고, 선거에 낙선하더라도. 정치인으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더 큰 것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최인경이 여전히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면 진상필은 그 대통령마저 국민 아래로 보고 있다. 자신보다는 높지만 그러나 국민보다는 낮다. 그러나 정당의 도움 없이 그는 큰 그릇을 지킬 수 있을까?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여당인 국민당은 야당인 한국민주당과 사회당에 비해 고작 2석이 앞서있을 뿐이었다. 이탈표만 없다면 표결로 가더라도 충분히 마음놓아도 되는 의석차이지만 바로 그 이탈표가 문제였다. 겨우 2석 앞서는 의석 가운데 진상필의 1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진상필이 돌아서면 여와 야는 동수가 된다. 진상필이 딴청계를 만들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제 조웅규가 국민당으로 왔으니 의석차이는 4석, 진상필이 야당으로 가더라도 여전히 2석에 여유가 생긴다. 여대야소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진상필의 눈치를 봐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백도현이 진상필을 내치려 한다.

변수라면 백도현으로부터 버려진 홍찬미일 것이다. 백도현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면서 가장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백도현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오로지 자기의 안위만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보복이라기보다는 응징이다. 홍찬미는 백도현의 사람으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경우였다. 백도현이 청와대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하필 해고노동자들이 시위하는 모습이 겹쳐 보이고 있었다. 다르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어쩌면 더 가련한 신세일 것이다. 더 절박하게 정치에 기대게 된다. 백도현으로부터 버려졌으니 홍찬미는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떤 변화가 일게 될까?

진상필의 일갈은 분명 속시원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현실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몰라서 안썼다기보다는 상업드라마이기에 자제했을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려면 어느 정도 사실보다는 판타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알아야 하는 사실보다 알고 싶은 믿음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들 공학놀음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들을 질타한다. 그들이 싸울 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노동자들은 승산없는 싸움에 나날을 흘려보내고 있다. 통쾌하다. 그런 정치인이 있었으면 바란다.

시험에 통과했다. 돈도, 가족도, 권력도, 어떤 욕망도 인정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아니 그나마 어쩔 수 없는 인정에 가족에 대해서만 조금 흔들렸을 뿐 돈과 권력에 대해서는 아예 가차없었다. 워낙 돈과 권력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여전히 국민이다. 여전히 해고노동자다. 그 원점을 잊지 않는다. 더 큰 꿈을 이뤄가기를. 드라마에서라도 꿈을 꾸려 한다. 꿈을 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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