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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6.04 08:46

[김윤석의 드라마톡] 가면 3회 "악마의 기회, 변지숙 서은하가 되다"

누구보다 두껍고 단단한 민석훈의 가면, 드라마를 이끌다

▲ 가면 포스터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스스로 쓰거나, 아니면 누군가 씌워주거나. 혹은 숙명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야만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명들이 어느새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 가면 뒤에 숨어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킨다.

결국 모두가 가면을 쓴 배우들일 것이다. 변지숙(수애 분)에게는 서은하라는 배역이 주어졌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서은하가 되어 어쩌면 평생을 그녀를 연기하며 살아가야 한다. 최민우(주지훈 분)가 진실이라 여기는 기억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다. 최면중 들은 단어 몇 마디가 기억을 왜곡하고 자신과 자신의 삶마저 정의하게 된다. 자신은 원래 그런 인간이다. 어쩌면 자신은 서은하를 죽이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으로 가면을 쓰고 연기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최민우의 매형 민석훈(연정훈 분)일 것이다. 민석훈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자신을 위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설득한다. 자신을 납득시킨다. 그렇게 자신이 되어 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한다. 죽은 서은하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철저히 억누른다. 더 큰 사명이 그에게는 있다. 더 큰 이유와 목적이 그에게는 남아있다. 원래의 민석훈 자신의 모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악마는 항상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게끔 한다. 강요하지 않는다. 강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이며 결정이었다. 모든 죄와 악이 다름아닌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을 타락케 한다. 인간이 스스로 타락했다 여기도록 만든다. 그러나 인간에게 과연 완전한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끝까지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려 했고, 변지숙이라고 하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 했었다. 하지만 선택해야만 했다. 경찰서까지 쫓아온 민석훈의 모습과 자신의 장례식에서 부조함을 들고 나오는 사채업자의 존재가 그녀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코 다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려 해서는 안된다.

함정에 빠뜨린다. 절벽을 건너게 하고는 다리를 끊어 버린다. 절벽만 내려간다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진정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면 단지 절벽을 내려가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높고 가파른 절벽이다. 발딛을 곳 하나 없이 절벽 아래에는 바위마저 떠내려보내는 거친 물살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돌아가고자 하는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스스로 절벽을 내려가 길을 찾을 것이다. 아직 절벽을 내려가지 않고 있다면 그만큼 돌아가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남기로 동의한 것과 같다.

이미 민석훈에 의해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있는데다, 여전히 사채업자에게 진 빚은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죽기 전의 비참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신의 장례식장 바로 앞에서 변지숙은 비로소 그같은 사실을 깨닫고 만다. 어차피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녀에게 희망따위는 없었다. 구원도 역시 없었다. 양심을 속이고 자신마저 잊어야 한다. 모두를 속이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원래의 자신이던 시절에도 구차하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비참하고 비루했다. 양심도, 가족의 정도, 잔인할 정도로 냉혹한 현실 앞에 너무나 무력하기만 하다.

나머지는 변명이다. 그렇게 자신을 잊는다. 자신과 타협해간다. 다른 자신이 되어 간다. 그래도 한 가지 진심을 남겼다. 사랑하겠다. 행복하게 살겠다. 가족이 되었다. 최민우는 그녀를 믿지 않는다. 아니 무엇보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복누이까지도. 거짓된 가면이 씌워진 채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야 하는 그들을 저주로부터 구원해주는 열쇠가 되어줄까? 실타래의 실처럼 미궁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이다. 아니면 영영 자신을 잃고 말 것인가.

수애도 수애려니와 인간 이상의 그 무엇을 보는 듯 연정훈의 무기질적인 연기가 드라마의 암울한 분위기를 더욱 신화적으로 극대화하고 있다. 유혹하고 함정에 빠뜨린다. 자유의지에 맡기며 오히려 스스로 타락케 한다. 아주 잠시 스치는 인간적인 감정이 그래서 애잔함을 더한다. 가장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다. 그대로일 것이다. 가면을 연기한다. 자신을 연기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변지숙의 표정없는 체념이 그와 대비된다. 인간이란 이토록 슬프고 아픈 것일까.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른다. 변지숙이 서은하가 된다. 서은하가 되었어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자신을 다른사람이 연기한다는 사실도. 어차피 그런 것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의도가 있다. 시리다. 삭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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