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4.23 05:28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17회 "마침내 김현숙에게 전해진 진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위해서, 아버지 김철희의 고군분투기

▲ '착하지 않은 여자들'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차라리 이 에피소드를 김현숙(채시라 분)이 더 이상 과거의 일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지금과 앞으로의 자신을 위해 살겠다 결심하게 되는 계기로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불우했던 과거 자신의 처지를 지금의 잘못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처럼.

비로소 대등해지고 있었다. 항상 높은 곳에서 김현숙을 굽어보며 비웃던 나현애(서이숙 분)가 자신이 쓴 반성문을 회수하기 위해 그 김현숙을 상대로 속임수까지 쓰고 있었다. 김현숙의 말처럼 나현애에게 김현숙이란 언제든지 비웃고 짓밟고 내버려도 되는 대상이었다. 자신의 아들 이루오(송재림 분)에게 함부로 말하는 김현숙을 보며 전혀 망설임없이 폭력부터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김현숙은 자신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관성이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므로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김현숙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달라졌다. 김현숙이 자신의 약점을 틀어쥐었다. 있는대로 어르고 달래보지만 과거와는 달리 쉽게 굴복하지도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한 태도로 자신을 압박하며 궁지로 내몰고 있었다. 그래서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여우는 말한다. 포도는 시고 맛없을 것이다. 김현숙은 자신이 쓴 반성문을 이용해서 자신을 더 막다른 궁지로 내몰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김현숙이라고 하는 열등한 낙오자의 바닥이고, 그것을 꿰뚫어 본 자신의 현명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자신이 승리했다. 사실은 패배한 것이다. 약오르기는 하지만 더 이상 김현숙에게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극복해야 할 과거도 무엇도 아닌 단지 싫은 사람에 불과하다.

너도 나와 같지 않은가. 어째서 김현숙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현애를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젊다. 그리고 능력있다. 마치 또래와도 같은 젊은 나이와 사범대학을 일등으로 졸업했다는 커리어는 아직 어린 김현숙에게 자신을 투영하기에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동경했다. 마음에 들고 싶었다.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런데 거부당했다. 철저히 부정당했다. 마침내는 버려지고 말았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딸 정마리(이하나 분)를 교수로 만들어 자신의 열등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고작 검도사범인 이루오가 박사인 딸 정마리의 주위를 맴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현애가 보는 세상과 김현숙이 보는 세상은 같았다. 하지만 누구의 세상에서도 김현숙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 발 더 내딛는다. 자신만이 아닌 스스로의 세상에서도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끝끝내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어야 하는 많은 아프고 상처입은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조금 더 일찍 김현숙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전혀 몰랐었다. 이제 겨우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나현애를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을 내딛기에 주위가 너무 분주하다. 오랜만에 찾은 아버지에, 딸 정마리와 이루오의 문제에, 더구나 마치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장모란(장미희 분)이 무겁게 건넨 과거의 진실이 쓰인 편지까지. 시련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면 김현숙은 뒤늦게 부쩍 자신이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게 될 것이다.

역시 여리다. 어찌보면 순진하다. 자신의 악의를 일부러 상대가 알도록 한다. 악다구니를 쓰며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악의를 상대에게 알아달라 보채고 있다. 그러니 그러지 말아달라. 그러니 제말 그런 말은 말아달라. 오히려 장모란에게 못된 말들을 쏟아내고서는 돌아나오며 엉엉 아이처럼 목놓아 울고 있었다. 서글퍼서. 자신의 처지가 서럽고 억울해서. 나현애였다면 장모란에게 말한대로 자신이 아는 진실을 무기로 삼기 위해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박은실(이미도 분) 역시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본 경험이 없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스스로 위축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홀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홀대한다. 친딸 김현숙이 아닌 박은실을 수제자로 삼은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강순옥(김혜자 분) 자신이었다. 평소 동경하던 정구민(박혁권 분)과의 우연한 만남은 어떤 사건들로 이어질까?

지난 30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되찾으려 한다. 어린 딸을 임신시킨 못된 사위놈을 뒤늦게 혼내주기도 하고, 밤늦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와 앉아 있는 수상쩍은 사내놈도 야단치고, 온갖 잔소리에 훈계에, 아내 강순옥에게도 못다한 남편노릇을 다하려 한다. 그 오버스런 수선스러움이 한 편으로 불편하면서 한 편으로 마음 든든하기도 하다. 김현숙은 처음으로 자신을 대신해서 나현애를 혼내주겠다는 자기 편을 만났고, 김현정 역시 이문학(손창민 분)을 타박하는 아버지 김철희가 못내 불만스러우면서 흐뭇하다. 그런 것이 아마도 아버지의 빈자리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서운한 마음에 강순옥은 마음껏 응석도 부려본다. 화도 내고, 원망도 내보고, 다만 김현숙에게 건넨 장모란의 편지는 지금의 들뜬 분위기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들떠있던 만큼 반동도 클 것이다. 30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사람마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외면하고, 어떤 이들은 정면으로 맞서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부러 받아들인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위로하고, 때로 그런 자신을 혐오하면서. 상처가 독이 되고, 상처를 감추려 가시를 세우고, 자기 안으로 숨어 세상과 단절한다. 살아가는 방법이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다. 아직은 혼란스럽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