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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0 16:19

내사랑 내곁에 "빠른 직구 승부! 이제 시작이다!"

힘이 좋다! 무브먼트가 좋다! 더 큰 격정이 준비되다!

 
직구승부다. 그것도 아주 지저분한 직구다. 흔히 그런 걸 무브먼트가 좋다고 한다. 공끝에 힘이 있어야 무브먼트도 좋다. 공끝에 자신감이 넘친다.

여기서 이야기를 한 번은 꼬아 보지 않을까 했었다. 아니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네 번도 좋다. 확실히 그런 쪽이 재미가 있으니까. 그렇게 떠나간 첫사랑이 돌아와 잊은 적 없다며 고백을 해 오고, 아빠 없이 자란 아이를 위해서도 여자는 새로 시작할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둘 사이가 깊어지려는데 더구나 그 사실을 남자의 지금 아내가 알게 된다면?

아내가 있는 남자라는 것도 흥미롭고, 그러다가 남자의 가족에게 들키지 않을까 그것으로 또 긴장하게 된다. 여전히 아빠 없이 외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자라는 아이가 불쌍하고, 어느새 여자를 응원하면서도 혹시라도 가정이 깨질까 남자의 아내에 대해서도 동정을 금치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 욕먹느니 그런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남자 뿐. 원래 주시청층이 여성들이기에 이런 때 남자가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경우 이야기가 너무 자극적으로 흐를 우려가 남는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건 어느 정도 자극이 필요하니까. 그러자고 이제 와서 고석빈(온주완 분)이 결혼까지 한 채로 도미솔(이소연 분) 앞에 나타난 것 아니던가. 그러나 드라마는 여기에서 그렇게 애써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꼬거나 비트느니 직구승부에 들어간다. 고석빈의 어머니 배정자(이휘향 분)을 통해 도미솔에게 고석빈이 결혼한 사실을 알리고 만 것이다. 배정자에게 물벼락을 맞고, 고석빈의 입을 통해 이미 결혼한 상태인데 만나지 못할 게 뭐냐는 무책임한 소리나 듣고, 그리고 도미솔은 고석빈에 대한 모든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지금 순간에는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불륜이라는 함정의 코앞에서 제작진에 의해 도미솔은 정상의 세계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에서 바로 끝난다면 그건 드라마도 아니다. 말했듯 그렇게 이야기를 설정하고 캐릭터를 끌고 간 이유라는 게 분명히 있다. 이미 그동안의 서사를 통해 충실히 묘사해 온 캐릭터들이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문앞에서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것을 강요당한 고석빈이 그다.

도대체 결혼한 몸으로 아내가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여자더러 계속 만나자 한다. 도대체 못 만날 게 무엇이냐며 나중에는 그러면 이혼하겠다. 도미솔이 분노한 것은 단지 고석빈이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을 숨겨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무책임이다. 아내가 있음에도 그 아내를 배려하지 않고, 더구나 만나는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는 그의 이기와 무심이. 그리고 그러한 어쩌면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이기와 생각없음은 그를 폭주케 만든다. 그때 미처 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려 드는 것이다.

도미솔은 고석빈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러나 고석빈은 도미솔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그런데 어느새 도미솔 곁에는 이소룡(이재윤 분)이 다가와 있다. 미묘한 삼각관계다.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유부남과 그 유부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엄마, 그리고 어느새 아이엄마를 좋아하게 된 한 남자. 여기에 배정자가 끼어들고 고석빈의 동생 고수빈이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더 꼬이게 된다. 그런데 인위적인 꼬임이 아니라 그런 캐릭터들이기에 어쩔 수 없는 꼬임이다. 그동안 축적해 온 캐릭터와 관계의 서사의 힘이다.

제대로 탄력을 받을 모양이다. 궁금해졌다. 과연 고석빈의 치기어린 고집에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배정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더구나 그리 투덜거리면서도 손자임이 확실한 영웅이를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그녀의 내면 또한 복잡하다. 굳이 그녀가 영웅이를 찾아 놓고서도 봉선아를 만나려 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칫 영웅이가 상처입을 수 있다. 고석빈과 만나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물을 끼얹으며 결혼한 사실을 이야기할 뿐 그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일 것이다. 가장 통속적이고 그리고 일상적이다. 어쩐지 그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핏줄이기에 아들을 위하지만, 또한 핏줄이기에 영웅이도 외면하지 못한다. 가정에 대한 그녀의 보수적인 입장은 조윤정(전혜빈 분)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둘이 어울릴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다. 그 기묘한 동거. 여기에 딸 고수빈까지 등장하면? 엇갈리는 입장과 감정들이 서로 첨예하게 얽히며 갈등을 예고한다. 과연 마지막 순간 그녀의 선택은?

아무튼 의외로 상황을 빨리 정리하는 느낌이다. 지저분하게 끌고 가기보다는 한 순간에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다. 하지만 그동안의 준비된 서사가 이야기를 더욱 다시 한 번 힘있게 꼬아 버린다.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었구나 싶은 순간, 이제는 이소룡과 도미솔이 잘 되는 일만 남았구나 하려는 순간, 그러나 예고편을 통해 보여지는 장면들은 이제 겨우 시작이로구나. 고석빈은 그런 캐릭터였고, 배정자의 역할은 그러했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제대로 예상을 깬 하나의 반전이었다. 캐릭터들이 살아있으니 도저히 어디로 튈 것인가. 설득력이 있으니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하게 된다.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 최근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게까지 궁금해하기도 처음일 것이다. 분명 해피엔드로 끝날 것 같은데 그 해피엔드의 의미마저 명확하지 않으니. 다만 사람이란 이리도 복잡하고 다양한 내면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까지 얽히고 설키며 존재하는 것이로구나. 드라마란 결국 사람을 보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장 성공한 드라마라고나 할까.

바로 그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내 이웃처럼. 내 친구처럼. 어딘가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처럼. 누군가 내게 술자리에서 이웃동네에 도미솔이 살고, 다리 건너에 고석빈이 산다고 말해도 믿겠다. 시장에서 지나치는 저 아주머니는 배정자이리라. 반찬가게에는 봉선아 여사가 영웅이와 함께 장사를 하고 있을 테고. 이재윤은 도미솔과 잘되었으면 좋겠다.

간만의 정직한 드라마였다. 정직하면서도 드라마란 결국 꼬이고 얽히고 틀어지는 격정이고 우여곡절임을. 어느새 공감하게 되는 절절한 리얼리티와 개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관심을 잡아끄는 그런 그야말로 드라마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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