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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5 07:16

내게 거짓말을 해봐 "첫사랑을 빼앗기고 첫사랑을 빼앗다!"

현기준-공아정, 일생일대의 위기가 다가오다.

 
원래 드라마란 다른 말로 우여곡절이다. 어째서 예로부터 사랑 이야기가 그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는가.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상당수가 그같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다. 행복하거나 아니면 불행했거나. 우여곡절이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비로소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의 사랑을 가꿔가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끝날 것이라면 드라마라는 게 존재할 이유가 없겠지. 남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굳이 귀한 시간에 전기요금까지 들여가며 보고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말은 해피엔드를 보자는 것이지만 결국은 그 해피엔드에 이르는 우여곡절을 보자는 것이다. 서로 엇갈리고,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고,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처절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그래서 비극으로 끝나면 비극으로 끝나는 대로 그 애잔한 슬픔에 취하며, 희극으로 끝나면 희극으로 끝나는 그대로 그 희열에 동참한다. 이래저래 관객이란 참 잔혹하면서도 편한 존재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아정(윤은혜 분)의 뜻하지 않은 거짓말에서 시작된 편지풍파는 북경의 나비처럼 오해와 오해가 겹치며 어느새 현기준(강지환 분)의 일상마저 휩쓸고 있었다. 우연한 첫만남과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재회와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불편한 인연의 연속. 앙금은 가라앉고 골은 깊이 패이고, 과연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보며 그리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다 사람이 만나 서로를 좋아하고 사귀게 되기까지의 길들여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워낙에 특별한 인연으로 시작했다 보니 그 과정이 남들보다 길었을 뿐. 누구는 첫눈에도 반해 사랑을 시작한다는데 공아정의 거짓말에 의해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남들처럼 솔직해지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즉 예로부터 사랑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주위의 반대라는 장벽이 남아 있는 셈이다. 고난이 있어서 사랑도 더욱 깊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했고 솔직하게 드러냈으니 두 사람이야 좋았겠지만 주위에서는 어떨까? 현기준과 공아정이 실제 서로 좋아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현명진 회장이나, 여전히 현기준만을 바라보고 있던 오윤주(조윤희 분)나, 어느새 공아정을 좋아하게 되어 버린 현상희(성준 분)나. 엇갈림은 다시 갈등을 낳고, 더구나 현상희를 제외하고 - 아니 현상희마저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틀어놓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서로에게 솔직해진 만큼 그동안의 거짓을 밝히자. 결국 현기준과 공아정 부부(?)를 좋게 보고 있던 첸회장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그것은 결국 월드그룹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졌고, 여기에 오윤주의 아버지가 첸회장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변수로 대두된다. 현상희는 이미 물러서겠다 다짐을 했고, 고모이기 이전에 월드그룹이라는 하나의 기업을 책임져야 하는 현명진 회장의 판단은 단호하다. 여기에 현기준에 대한 오윤주의 사랑을 넘어선 집착까지. 현기준과 공아정 두 사람이 넘어야 할 선은 높고 단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으로 끝일 것이라 자신하는 것은, 오윤주나 현상희나 - 특히 오윤주의 경우 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악하다거나 독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악하거나 독해야 이것저것 일도 꾸민다. 일을 꾸미는 사람이 있어야 사건도 일어난다. 하지만 굳이 공아정을 찾아와 하소연하는 모습에서는 그럴만한 조짐은 그다지 보이지 앟는다. 그렇다고 현상희는 이미 기대에서 한참 벗어난 사람 좋은 삐에로와 같은 모습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웃고 있다. 첸회장으로 인한 어려움이야 드라마가 그래왔듯 어떤 식으로든 첸회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 테지.

아무튼 첫사랑을 친구에게 빼앗겨야 했던 공아정과, 그런 공아정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겨야 하는 오윤주, 첫사랑을 빼앗길 위기에서 하소연해오는 오윤주의 모습에 공아정 역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쉽사리 그녀를 위해 양보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현기준을 놓아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런 것일 테니까.

누군가는 빼앗긴 사랑에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뺏앗는다는 생각조차 없이 그 사랑에 행복한 웃음을 짓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이번에는 누군가의 눈물을 딛고 다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결국에 남자와 여자 두 사람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수많은 러브스토리에는 그래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뒤에서 실연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던 조역들이 있었던 것이다. 유소란과 천재범의 사이에서는 공아정이 그 조역이었고, 현기준과 공아정의 사이에서는 오윤주가 조역이었다. 한때 현기준과 오윤주 사이에서도 현상희가 그 조역이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굳이 친구인 유소란에게 첫사랑을 빼앗기고 자기 인생에 다시는 사랑이란 없을 것이라 선언했던 공아정과 약혼까지 했다가 파혼한 오윤주의 첫사랑 현기준이 우연에 의해 얽히도록 만든 것이? 더구나 유소란이 그랬듯 공아정 역시 거짓이지만 현기준과 결혼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물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어렵사리 제주도까지 쫓아와 자기 여자 옆에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천재범이나, 그런 천재범 앞에 허세를 부리면서도 어느새 무너지고 마는 유소란의 모습도 그래서 의미가 깊다. 하기는 원래 로맨스 코미디든 멜로든 주제는 하나다. 사랑. 과연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광기인가? 비극인가? 기쁨이고 행복인가? 드라마는 것을 마치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첫사랑을 친구에게 빼앗긴 공아정이 다른 누군가의 첫사랑을 빼앗듯. 자기 여자 앞에서 한없이 한심해지고, 자기 남자 앞에서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을. 그러고 보니 현기준도 솔직해지면서 많이 바보가 되었다.

쉬어가는 회차라 생각한다. 일단 현기준과 공아정 사이의 줄다리기가 일단락되었으니 이제 그에 따른 나머지 정리가 남았을 뿐이다. 주위의 납득을 받아내기 위한 마지막 난관과 이제까지의 거짓말에 대한 수습과정이다. 그동안 저질러 놓은 것이 있는 만큼 그 수습도 요란뻑적지근할 것이다. 그를 위한 준비인 셈이다.

다만 아쉬우면서 불안하다면 원래 안정감과 지루함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안정감을 찾아간다는 것이 혹여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선다는 뜻은 아닐가. 다음주. 하긴 그래서 현기준이고 공아정일 터다. 이제까지에 대한 신뢰다. 기대한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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