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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4.26 09:15

내 연애의 모든 것 "정치와 로맨스, 정치를 마치 사랑을 하듯"

본능이 가리키는 순수의 충동과 열정, 계량되지 않는 그 본질에 대해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랑이란 본능이 시키는 이적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런 사랑에 대해서조차 이성으로 계량하려 든다. 이유를 분석하고 과정을 추리하고 결론을 예단한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사랑을 한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랑을 하게 된다.

예뻐서. 잘생겨서. 착해서. 성실해서. 잘해 줄 것 같아서. 실제 잘해주기도 해서. 돈이 많거나, 괜찮은 직장에 다니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거나 명성이 있거나. 자라온 환경도 보게 된다. 주변의 배경이나 여건 역시 중요하게 살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떤 사이가 될까?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랑이란 있다. 때로 도저히 자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상대에 대해서는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과 함께 운명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인연이란 결국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랑이다. 자기가 할 만한 사랑이다. 그것을 판단한다.

하지만 처음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계산 따위 머리에 없다. 아니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득 깨닫고 보니 사랑이었다. 심지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겨우 알게 된다. 머리가 반응하기 전에 몸이 반응한다. 심장이 먼저 쿵쾅뛰고, 얼굴이 번저 발갛게 달아오르며, 말을 더듬고, 침이 마르고, 행동이 어색하게 굳는다. 그리고서야 머리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사랑이로구나. 나는 사랑을 하고 있구나.

나이를 먹게 되면 몸보다는 아무래도 머리가 앞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동안의 학습과 경험과 훈련된 내용들이 본능을 대신해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랑도 그와 같다.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인가? 어떤 상대가 사랑하기에 좋은 상대인가? 나아가 어떤 사랑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 사랑은 꿈도 낭만도 아닌 현실이다. 자신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조건을 따지고, 손익을 계산하고,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미리 예상해 본다. 내게 좋은 사랑일까? 내게 어울리는 사랑일까? 말했듯 사랑은 현실인 때문이다.

그래서 로맨스는 존재한다. 로맨스란 꿈이나. 말 그대로 낭만이다. 어느새 잊고 만 지난날의 순수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재고 따지지 않는다. 머리로 계산하기보다 본능이 시키는 그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한다. 어떤 현실의 장애나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고 끝끝내 사랑이라고 하는 순수와 열정을 이루어내고 만다. 신분의 차이에도, 각자가 좋은 현실적 여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사랑이라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사이에도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현실에서 쟁취해내고 만다. 과거의 꿈이며 현실의 환상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사랑하고 영원을 약속하고 그렇게 이루어내고 살아가는 경우도 현실에는 많이 있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몸이 먼저 시킨다. 사랑한다. 상대에게 끌린다. 욕망을 느낀다. 충동에 이끌린다. 그것이 사랑이다. 머리로 계량하기 전, 후천적으로 학습하고 훈련받은 이성으로써 판단하기 이전의 본능이 시키던 원초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몸이 먼저 닿는다. 사랑을 하기 전에 몸부터 닿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서로에게 이끌리기 시작한다. 상당히 야릇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이다. 아직 어릴 적에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해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그들은 이미 성인이다. 아직 상대가 없던 때에도 그들은 꿈을 꾸고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부한다. 부정하고 도망치려 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이성으로는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물론 주위에서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상대와. 어떻게 그런 조건의 상대와. 하지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에 그들은 굴복하고 만다. 정확히는 그런 자신에 솔직해지고 만다. 그러면 또 어떤가? 김수영(신하균 분)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오만한 사람이다. 세상에 자기밖에는 없고 오로지 자신만 안다. 자기만 옳고 자기만이 유일하다. 타협하지도 굴복하지도 않는다. 사랑도 바로 자신의 것이기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뿐. 자신을 위해 그에 충실하면 그 뿐이다. 그에 비하면 노민영은 아직 구애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절묘한 연계일 것이다. 하필 그 순간 대한국당의 대표 고대룡(천호진 분)이 김수영을 찾는다. 자신을 키워보고 싶다. 김수영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그러면서 말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세상은 바뀌지 않고 자신만 바뀐 현실에 대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 힘을 갖고자 자신을 바꿔야 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러면서 김수영에게도 김수영 자신의 목표를 위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을 제안한다. 현실과 타협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이 앞으로의 김수영의 정치인생을 책임져주겠다. 자기가 정치인으로서의 김수영을 이끌어주겠다. 고대룡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하지만 김수영은 거절한다.

사랑과 같다. 몸이 먼저 깨닫는다. 머리로 알기 전에 몸이 먼저 그것이 사랑인가 아닌가 먼저 알고 자기에게 알려준다. 자신은 노민영을 사랑한다. 노민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김수영 자신의 몸이 – 정확히는 몸이 가리키고 있는 본능의 충동과 욕구에는 한 점의 거짓도 계산도 들어있지 않다. 순수하게 노민영을 오로지 원하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굳이 계량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아도 그것만이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솔직한 진심일 것이다. 오로지 김수영은 그 같은 진실에 대해서만 자신을 낮추고 타협을 시도한다. 김수영 자신의 본능이 가리키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 오로지 그에 대해서만 진지해지고 솔직해질 수 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 아는 것도 본능의 영역이다. 인간의 이성은 선험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이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것이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노민영은 아직 솔직해지지 못했다. 죽은 언니가 있다. 언니가 남긴 딸이 있다. 한때 첫사랑이었던 사돈 송준하(박희순 분)도 있다. 명색이 녹색정의당의 대표다. 당직자와 보좌관 단 한 사람 있는 동료의원 고동숙(김정난 분)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 같은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처한 입장을 위해 누르고 비튼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그러나 결국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길이다. 자신은 과연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럼에도 노민영 또한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죽은 언니를. 언니가 남긴 딸을. 첫사랑이기도 한 사돈 송준하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 누구를 위하는가? 무엇을 위하는가? 결국 선택의 문제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김수영은 자기에게는 무엇보다 사랑이 주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에 솔직해지려 한다. 노민영은 아직 가리고 있는 것들이 많다. 고대룡 또한 다르지 않다. 그도 선택을 했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을 가장 우선할 것인가? 김수영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 노민영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 사랑은 본능에 이끌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란 그들의 이성이 가리키는 오롯한 대상 그 자체일 것이다. 정치도 사랑처럼. 사랑도 정치처럼. 그래도 정치인인데 김수영이나 노민영이나 너무 아이같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이 많은 송준하는 피곤하다. 그래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근심도 많고 걱정도 많다. 엄격하고 절제되어 있다. 자기보다 주위가 항상 먼저 우선한다. 그에 비하면 안희선(한채아 분)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란 없는 것 같다. 노민영과 인터뷰하면서도 짐짓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조차 그저 어린 소녀의 호들갑마냥 살갑게 지나칠 뿐이다. 곱게 잘랐다. 사랑받으며 자랐다.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굴욕도 좌절도 없다. 어린 소녀다. 어울리지 않게 마치 사춘기 소녀마냥 그녀는 개구지고 활기차다. 보수언론 사주의 일가이면서도 그래서 진보정당을 위한 기사를 당당히 지면에 올릴 수 있는 것일 게다.

순수란 무엇인가? 사랑에 있어서도. 정치에 있어서도. 일상에 있어서도. 자신을 얽매고 있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솔직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나, 자신에게마저 거짓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나. 거짓없이 솔직한 마음이, 몸이 가리키는 본능의 충동과 이성의 냉철한 판단이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그것이 순수한 열정 그 자체가 아닐까. 순수하게 사랑하고, 순수하게 정의를 추구하고, 순수하게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킨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생활인이고, 어른이고, 그러면서도 소년이고 소녀다.

현실정치와 로맨스가 만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정치인과 로맨스가 어울릴 수 있는 이유다. 정치인이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듯 정치를 한다. 순수하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들이 잊고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그것들처럼. 사람은 사랑을 한다. 순수한 사랑처럼.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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