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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4.24 09:23

직장의 신 "직장인과 인간, 미스김 장규직에 마음을 열다"

뭘 생각해? 회사에 돈이 남아돌아? 뭐가 아쉬워서 임산부를 써?

▲ 사진제공=KBS 미디어, MI IN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산업혁명기 유럽의 도시 빈민가에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이를 죽여주는 전문가들이 은밀하게, 그러나 공공연히 성업중에 있었다. 아이가 울지 않도록 아편을 섞인 당밀을 입에 물리고 일을 나가야 했던 많은 어머니들을 위한 시대의 필요가 만들어낸 직업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머니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이를 질식시켜 죽여야만 했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산업화된 유럽의 도시들은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보다 큰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값싸고 반항하지 않으면서도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말도 잘 듣는 그런 안전하고 편리한 노동력이. 아이들과 그리고 여성들이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걸음을 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나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여성들 또한 임신한 몸으로도 광산의 갱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광석을 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광산에서 일을 하던 도중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자본가들에게 일을 하는데 방해만 되는 아이의 존재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자본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을 시킬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었지 괜한 노동력에 손실을 줄 수 있는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거나 갓태어난 핏덩이들은 아니었다.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했고,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에 소홀하면 그날로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무리 모성이 하늘이 부여한 가장 고귀한 본능이라 할지라도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생존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일을 해야 그나마 임금을 받고 먹고 살 수 있기에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모성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불법낙태수술과 날이 밝으면 도심의 강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시체들은 바로 그 증거들이었다. 목숨을 걸고 어머니들은 모성을 포기했고 그런 강인함으로 남편과 다른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지켜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출산을 위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여성을 고용한다는 것은 낭비라 할 수 있다. 임신한 여성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이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나머지는 잘라내지 않으면 안된다. 아예 그래서 처음부터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다. 여성을 고용하더라도 책임있는 자리에까지는 올리지 않는다. 적당히 결혼을 하면 퇴사를 하고, 결혼하고서도 계속 근무하게 된다 하더라도 임신을 하게 되면 적당히 그만둬 주기를 바란다. 물론 현대의 법체계는 그같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쓴다. 정규직은 철저히 법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비정규직은 이해가 맞지 않을 때 바로 계약연장을 안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일 터이므로.

임신한 당사자가 계약직인 박봉희(이미도 분)가 아닌 정규직인 다른 여성직원이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때도 임신사실을 숨기려 했을까? 임신사실을 숨기고 회사를 속여가며 병원을 다니고 했을까? 아무리 회사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법이 모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한 회사가 임의로 해고하거나 사직을 종용할 수는 없다. 물론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여러 간접적인 수단이나 회사의 분위기 같은 것으로 인해 강요 아닌 강요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는 현실에 얼마든지 있다. 그렇더라도 만일 당사자가 끝까지 버티고 다니려 한다면 회사가 어쩔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그래서 박봉희도 계약연장만 확정되고 나면 그때는 밝혀도 좋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계약기간 동안에는 계약직인 박봉희 역시 계약서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그야말로 첨예한 현장의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다. 기업은 더 큰 더 많은 이익을 목표로 한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유용하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인건비인 것이다. 불필요한 인력을 잘라낸다. 불필요하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던 것을 줄인다. 임신한 여성은 불필요하다. 회사가 더 큰 이익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 법은 임신한 여성들에 대해서 보호하려 하지만 자본은 그러한 법의 보호를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갈수록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일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은 정규직보다 짧은 기간 필요한 만큼만 보다 싼값에 쓰고 잘라낼 수 있는 비정규직이 훨씬 유리하다.

장규직(오지호 분)의 한 마디가 바로 그런 모든 것을 대변한다.

"뭘 생각해? 회사에 돈이 남아돌아? 뭐가 아쉬워서 임산부를 계속 써?"

처음부터 임산부와 같이 회사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을 손쉽게 제거하고자 채택한 것이 계약직인 것이다. 그래서 기간도 짧다. 계약기간동안 문제가 될만한 부분들이 발견되면 바로 다음 계약에 그것을 반영한다. 정식직원이 아니기에 법 또한 그런 계약직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럼에도 남성의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유지하기조차 힘들기에 임신한 몸으로도 직장에 나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철저히 회사의 입장에서 장규직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니 그의 안에서는 계속 충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회사에 몸담은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임신한 박봉희를 동정하고, 그럼에도 계속 회사에 남아 일을 해야 하는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그러나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회사의 입장을 우선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고 자신의 역할이다. 자신의 위치이며 자신의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스김(김혜수 분)와의 씨름대결에서 일부러 져주고 만 것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지금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회사원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잠시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양심에 양보하고 만다.

비단 비정규직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래서 강제로 낙태 자체를 금지시키고 있었다. 책임질 수 없는 아이라도 일단 낳으라. 하지만 아이를 임신하는 것도 낳아 기르는 것도 여성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다. 예전처럼 그저 출산과 육아에만 전념하기에 현실을 갈수록 각박해져만간다. 생필품은 물론 모든 비용이 갈수록 오르기만 하는데 임금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여성도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성에 대한 철저한 보호만이 여성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을 선진국의 예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

아이를 가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피임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생긴다면 낙태를 한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기를 자신이 없다. 때로 아이들은 버려지기도 한다.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방치하는 것도 결국은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혹은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 아니 아이만이 문제일까? 사소한 일로도 이내 해고될 것은,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정주리(정유미 분)등의 모습이란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직장인들의 보다 극적으로 과장된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피구를 단지 상무가 원한다고 해서 다시 시작하고, 상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몸을 날려 상무가 던지는 공에 맞는다. 룰까지 멋대로 바꿔가며 상무를 만족시키려 한다. 그것이 과연 임신한 사실을 숨긴 채 회사에 남고자 거짓말을 하는 박봉희와 다를 것이 무얼까?

아무튼 그렇게 회사원이 아닌 인간 장규직을 선택한 탓에 미스김도 그에게 잠시 마음을 더 열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엄격하게 거리를 두고 구분지으며 빚을 주지도 빚을 지지도 않던 미스김이 장규직에게 자신이 마신 술값을 떠넘기고 일어섰다. 장규직이 대신 지불한 술값만큼 그녀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의 자리를 그녀는 장규직에게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연민을 품고 인정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끊임없이 회사원으로서의 자신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는 확신을 내보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아버린 때문이다. 회사에 자신의 영혼마저 저당잡힌 '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는 '인간'임을 보아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미스김은 장규직을 인정한다.

의외였다. 구영식(이지훈 분) 대리와 박봉희가 커플이었다니. 구영식과 박봉희의 관계가 드러나기까지 정주리와 금빛나(전혜빈 분)가 우연히 발견한 쪽지 하나를 가지고 회사 안에 커플을 찾아 헤매던 모습도 재미있었다. 코미디다웠다. 선입견으로 보니 마치 모두가 커플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선입견을 깨고 보니 - 정확히는 다른 선입견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니 그들은 커플이 아닌 평소의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절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구성이었달까? 그러면서도 구영식과 박봉희의 관계가 밝혀지는 순간에도 철저히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충분한 암시가 있었음에도 바로 직전까지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임신 사실은 어떻게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 낙태수술로 사망한 산모와 아이들이 아침이면 강물위로 떠다니던 그 시절과 임신을 어떻게든 피하려 애쓰는 지금의 현실이. 임신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다. 어차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제대로 회사일도 하지 못할 것이기에 여성은 고용과 진급에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임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회사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그런 존재라면 회사에 들어와서도 안된다. 인간이란 기업에 있어 수단에 불과하다. 기업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인간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미스김이 통쾌한 이유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정주리에게 자신을 이입하고 마는 이유다. 그 사이에 어쩌면 장규직이 있을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그것을 주도하고자 한다. 자신이 그 주인공이고자 한다.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단지 쓰고 버리는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다. 회사의 일부다. 그의 신념은 또한 많은 월급쟁이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회사에 목숨을 건다. 애잔하지만 강하다. 우습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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