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5 07:13

TOP밴드 "이것이 밴드다!"

밴드가 주는 원초적 쾌감에 대해서...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그다지 기대같은 건 하지 않았었다. 또 다시 오디션 붐에 편승해 KBS에서도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구나. 더구나 대중적으로 그다지 관심도 없는 밴드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흥행에 있어 성공가능성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첫머리에서 김세황과 송홍섭, 남궁연, 정원영의 네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함께 연주하는 잼을 들으면서, 그리고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조유진, 정인, 신대철, 이현석, 김종진, 연윤근, 김영석, 손스타, 전태관, 유영석의 "미인" 연주를 들으면서 나의 실망은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 록일 터였다. 아니 이것이 밴드였다.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꾸미는 최고의 무대. 그리고 한국록의 정수가 담긴 명곡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의 아티스트들이지만 그들이 모였을 때 그것은 더 큰 시너지를 일으키고 감동을 전한다.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록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현역인기밴드들이 인터뷰를 한다. 밴드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노브레인의 무대. 키보이스와 에드 훠와 산울림과 봄여름가을겨울과 노브레인. "해변으로 가요"와 "빗속의 여인"과 "아니벌써"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난 네게 반했어"는 한국 록의 역사이며 밴드의 역사였다. 그로부터 2011년 서바이벌 밴드오디션 <TOP밴드>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밴드에 대한 정의와 밴드에 대한 역사와 그리고 현재이며 미래.

더구나 아름답다는 것은 그렇게 오디션에 참가하는 밴드의 면면들이다. 직장인들이다. 치과의사들이고, 현직경찰이고, 치어리더들이고, 고등학생들이다. 국악밴드에서 브라스밴드, 관현악밴드, 메탈밴드, 모던록밴드, 나이마저도 다양하다. 초등학생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단지 음악이 좋아서. 잘해서가 아니다. 그저 밴드가 좋기 때문에.

원래 그것이 밴드의 시작이었다. 밴드음악은 그렇게 단지 밴드가 좋을 뿐인 어느 집 창고에 모인 동네 꼬맹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코드 세 개,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전문적으로 악기를 다루는 것도 배우지 못하고, 그러나 단지 음악이 좋아서 모여서 연주도 하고 손발을 맞추다 우연처럼 거칠고 사나운 그들만의 음악으로 대중에 달려지게 되었다. 60년대 밴드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개라지 밴드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개라지 밴드는 이후 인디밴드들에 의해 그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

인디정신이라는 자체가 그렇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상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지 하고 싶어서. 들려주고 싶어서. 그래서 그들은 자기 일을 가지고 단지 음악을 할 때에만 밴드의 이름으로 모여서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곡도 쓰고 앨범도 내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자기 일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단지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프로음악인이라는 것은 꿈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장르도 상관없다. 심지어는 혼자서 1인밴드를 만들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 순간 감을 잡았다. 원색의 가발을 쓰고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격정적인 무대를 보여준 치과의사들의 밴드 "이빨스"에서. 치과의사라면 이미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 있을 터인데도 굳이 밴드를 만들어 연습하고 이런 무대에까지 나오는 이유. 그것은 현역 밴드의 멤버들이 들려주는 밴드의 정의와도 닮아 있다.

밴드란 원래 bande라는 군대라는 뜻을 갖는 중세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다. 17세기 영국의 국왕 찰스 2세에 의해 그의 궁장악단에 처음 붙여진 밴드라는 단어는 아마도 군대처럼 조직화된 연주자를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다. 마치 군대가 지휘관의 명령 아래 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듯 밴드는 서로 다른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모니와 앙상블. 조화. 공존. 가족과 친구.

그래서 밴드에 다른 이해나 타산이 들어가면 밴드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밴드가 이내 멤버들간의 불화로 해체되고 마는 것은 그래서다. 음악이 좋아야 하고, 밴드가 좋아야 하고, 멤버들이 좋아야 한다.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못해도 아름다운 밴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밴드가 진짜 앙상블이 나오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밴드의 근본에 대한 물음과 답이 아니었을까. 단지 연주를 잘하고 노래를 잘하는 프로를 찾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밴드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찾고 보여주겠다. 하기는 심사위원이며 코치로 나오는 면면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신대철, 김도균, 김세황, 이현석, 남궁연, 체리필터, 봄여름가을겨울, 유영석, 송홍섭. 그것이 밴드의 정신이며 인디의 정신이고 개라지의 정신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다. 어째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진은 마치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의 연장인 듯 그 아류로써 홍보하고 있었는가. 이와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이 이미 KBS에 있었다. 작년 상반기 크게 화제가 되었던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의 "남격밴드"였다. 악기라고는 다룰 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어느사이엔가 그럴싸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남격밴드가 출전한 아마추어 밴드콘테스트에서 만난 많은 아마추어밴드들.

차라리 그 연장에 있지 않을까? 뭐라도 대단한 걸 바라고 시작한 밴드가 아니었다. 돈을 벌자. 인기를 얻자. 대단히 유명해지자. 단지 밴드가 좋아서 밴드를 했고 기회가 되어 오디션이 열리니 출전하게 되었다. 그 순수함과 남격밴드는 닮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프닝에서 남격밴드가 나와 연주를 해 주었으면. 새로운 레파토리를 준비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성우밴드인 온에어와 아나운서밴드인 소리아나와 경쟁하면서. 현재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이 멘토 겸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자우림과 김윤아도 "온에어"팀에 고치로 출연하고 있었다. 단지 오디션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튼 신대철과 김도균, 이현석, 김세황 등의 연주도 새삼 다시 듣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연주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들을. 하나같이 밴드와 밴드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니 누구보다 따뜻한 눈으로 출연자들을 지켜 볼 것이다.

어색한가? 서툰가? 전혀 손발이 맞지 않아 밴드라 부를 수 있는가 싶은 아나운서 밴드 "소리아나"조차 그래서 밴드인 것이다. 말하지만 잘해서가 아니다. 능숙해서가 아니다. 무대에 서는 것을 즐길 때, 무엇보다 모두가 하나 됨을 즐길 때. 멋지지 않은가? 그래도 그들은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그들이 즐겁다면 시청자도 즐거울 것이다.

시청율따위는 처음부터 상관없었다. 그것은 방송국 관계자들이 신경쓸 바인 것이다. 어차피 밴드를 소재로 오디션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체가 시청율과는 상관없이 가겠다는 뜻이다. 하필 드라마 시간대인 오후 10시 10분에 시작하는 것부터도 일정부분 시청율을 포기하고 가겠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마이너하지만 마니악하게. 때로는 숫자로 드러난 시청율보다 그 충성도가 더 의미있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10% 안팎만 찍어주어도 마니아들만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제작비는 빠진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작년 남격밴드가 그랬었던 것처럼 밴드음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보면 어떨까?

<슈퍼스타K>와도 <위대한 탄생>과도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다. <나는 가수다>와도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벌써부터 시청율로 인해 폐지는 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최대한 멋진 그림들을 많이 뽑아내어 보다 오래 갈 수 있었으면.

어쩌면 오디션프로그램으로서는 크게 이슈가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시청율도 낮아서 고전하게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밴드는 그런 게 아니니까. 과연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코치들과 심사위원들을 믿는다. 내가 존경하는 음악인들을.

온에어 팀의 무대는 훌륭했다. 베이스를 배운 것이 이제 고작 일주일이라던가? 밴드를 만들어 연습한 것도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아닌가? 소리아나팀의 연주는 확실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즐거워하니 보기에 좋았다. 마치 프롤로그처럼.

토요일 저녁 기다리며 볼만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위대한 탄생>이 끝나고 더 이상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질려 있을 때. 그저 그런 흔한 오디션은 아니기를 기대하는 바다. 밴드란 그다지 파퓰러한 소재가 아니다. 이해할 수 있기를. 즐거웠다. 흥분되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