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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23 08:23

내사랑 내곁에 "어머니와 어머니"

어머니, 불초한 자식일 수밖에 없음에...

 
참 눈물겨운 장면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모든 자식을 죄인으로 만드는 장면이 아닐까.

얼마나 사랑스런 아이인가. 엄마의 입장에서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일 것이다. 차마 죽지조차 못할 정도로. 죽으려다가도 그래도 따뜻한 쌀밥이나 해 먹여야겠다며 죽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딸아이가 어느새 자라 이렇게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으니.

차라리 아이가 못되어 엄마에게 무슨 해꼬지라도 하면 나을 것이다. 못되기 자라 나가서 크게 사고라도 치고 하면 그것도 그나마 나을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길러 온 딸인데 그만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 것이 예고되었다. 혼자서 딸을 길러 온 엄마이기에 더욱 그런 딸의 처지가 예사롭지가 않다.

모든 부모가 갖는 걱정과 고민. 그리고 모든 자식이 갖는 죄의식. 그래도 태어났을 때는 모두가 소중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이고이 금이야옥이야 자식 하나 바라보고 많은 것을 희생해가며 길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자식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는가.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하물며 도미솔(이소연 분)의 처지에서야.

그러면서 더욱 애잔한 것은 어머니로써의 모성을 이야기하는 엄마 앞에 딸 또한 한 어머니로써 자신의 뱃속에 있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차마 딸 때문에 죽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 딸 때문에 죽으려 한다. 그러자 딸은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며 울부짖으며 말한다. 어머니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미 어머니가 되려는 딸. 그러나 그것을 축복받을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엄마 봉선아(김미숙 분)의 가슴은 미어진다.

주눅들어 눈치를 보면서도 우동을 맛있게 먹는 도미솔에게 자신도 도미솔을 가졌을 때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며 우동을 덜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어머니라는 것일 게다. 여전히 용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 화해라기보다는 수긍이고, 이해하기보다는 수용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딸이고 딸의 아이다. 딸의 행복을 바라지 딸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화내고 원망하고 울부짖고 절망하는 것도 딸을 사랑해서이지 딸을 진정 미워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정여사도 딸 선아로부터 아이를 훔쳐내 버릴 수 있었던 것이고, 그 딸 선아를 위해 그 버린 아이를 찾고자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어느샌가 고석빈의 어머니 배정자(이휘향 분)을 이해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녀 역시 어머니일 테니까. 더구나 그녀는 가난이 무엇인 줄을 안다. 고생이 무엇인 줄을 안다. 그래서 더욱 자식에게 집착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행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온전히 미워할 수는 없다.

난감한 드라마다. 분명 배정자는 악역일 터다. 악역으로 설정되었을 터다. 모든 죄에는 슬픔이 있고, 모든 악에는 아픔이 있다던가. 어느샌가 그에 공감하게 된다. 나라도 저랬겠거니. 아마도 많은 이들이 저렇겠거니. 조금 비열하고 조금 치사하고 조금 야비하고 조금 몰염치하기는 하지만 또한 많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저렇게 억척을 부리며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문제다. 미워해야 하는데 미워할 대상이 없다. 고석빈(온주완 분)마저 미국으로 도망가서 보이지 않고. 그나마 가장 만만한 것이 고석빈인데 고석빈마저 없으니 이제 대놓고 미워하고 욕할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 그저 불쌍하고 안타깝고. 또 울고 아파하는 모습이 보기에 불편하고. 그러니까 그래서라도 욕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없을 때 부대끼게 된다.

더구나 이제 또 다음주부터는 임신사실이 드러나며 학교에서의 고난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미성년 임산부의 학습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는가?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퇴학. 그러나 그래도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고등학교는 나와야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동년배들이고 동급생 친구들이기에 더 잔인할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큰 죄인가? 그렇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인가? 그것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것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완전히 포기한 듯한. 하나의 다큐멘터리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미성년자의 임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파고든 예가 없었다.

어머니로서의 어쩔 수 없는 모성을 연기하는 김미숙에 대해서는 역시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고, 자식을 위해 양심마저 저버리는 이휘향의 독한 연기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디테일이 있다. 궁지에 몰린 이소연의 눈물연기 또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세 엄마의 눈물공세에 쿨하게 그러나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는 김미경의 무심함은 또 빛을 발하고.

온통 여자들 뿐이로구나. 그러나 바로 여자들의 드라마일 테니까. 지난 회차에서 사라정(사미자 분)이 말한 그대로 남자는 이 이야기에서 타자일 수밖에 없다. 엄마 뒤에 숨어 미국으로 도망가버린 고석빈처럼. 그 처절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그러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참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드라마로서의 재미까지 포기한 그 과감함에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조만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듯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끌고 있다. 그것이 좋지만 좋은 드라마가 묻히는 것이 너무 아쉬운 관계로. 딜레마라고나 할까?

이번주도 역시 많은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극적인 재미도 재미지만 공감할 수 있는 재미도 재미일 터다. 좋은 드라마다. 언제고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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