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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22 08:53

샐러리맨 초한지 "백여치, 내 눈에 당신은 모실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모가비가 진시황을 죽이고 백여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이유, 백여치는 태생이 다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분명 여주인공일 텐데. 더구나 일방적으로 모가비(김서형 분)에게 당하는 입장일 텐데. 모가비로 인해 외할아버지마저 죽고 그 재산까지 모두 빼앗긴 가엾은 피해자일 텐데도 백여치(정려원 분)를 보고 있자면 도저히 어떠한 동정이나 연민도 가지기 힘들다. 오히려 모가비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어찌되었거나 모가비는 이미 천하그룹의 총수다. 진시황(이덕화 분) 전회장의 유언과 주주총회의 결정에 따라 그녀는 천하그룹의 최고경영자로 결정되었다. 중대한 결격사유가 드러나지 않는 한 그녀는 천하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천하그룹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에 걸맞는 존중과 예우가 필요하다. 아무리 모가비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보라. 백여치에게는 제아무리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어도 모가비란 외할아버지의 비서실장일 뿐이다. 그녀는 여전히 외할아버지의 외손녀이고 모가비는 외할아버지의 비서실장에 불과하다. 아직 모가비가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뒤에 감춰진 내막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오로지 외할아버지의 비서실장으로서만 그녀를 대하고 있다. 그것도 외할아버지 앞에서 눈웃음이나 날리던 비서실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좋다. 그렇더라도 모가비는 그녀의 외할아버지인 진시황 전회장의 비서실장이었는가? 아니면 백여치의 비서실장이었는가? 아니 그조차 양보할 수 있다. 백여치 자신의 비서실장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가? 그녀는 회사에 고용된 것이지 진시황 전회장이나 백여치 개인에게 고용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했더라도 그녀 자신의 인격이나 존엄에 대해서까지 함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토록 모가비에게 함부로 대하고서는 모가비가 자기에게 서운하게 대한다고 사람이 바뀌었다 말한다. 그동안 진시황 회장에게 보였던 표정들이 가식이었다고. 사람을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뼛속까지 귀족이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수모와 위기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다시 일어날 힘을 낼 수 있는 것일 게다. 출신이 다르다. 근본이 다르다. 모가비와 자신은 태생적으로 다르다. 그런 자신감이 그녀로 하여금 일어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모가비를 쳐내고 자신의 것인 회사를 되찾아야 한다. 이미 천하그룹은 진시황 전회장의 소유로써 백여치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사유물이 되어 버린다. 모가비 실장이 그동안 진시황 전회장을 위해 바쳐온 시간과 노력들은 스스로 선택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것들이 되어 버린다.

모가비가 어째서 사람을 죽이는 최악의 무리수까지 두어가며 천하그룹의 총수자리를 노리게 되었는가? 필자의 처지라도 백여치의 밑에서는 더 이상 일 못하겠다. 일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백여치가 진시황 전회장의 자리에 올라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자신이 겪었던 수모와 굴욕들을 돌려주고 싶어질 것이다. 진시황 전회장을 죽이고 그 유언장을 조작해서 천하그룹의 총수자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백여치가 물려받은 모든 재산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만 이유였다. 주군의 자식이 싫어 충성스럽던 가신이 반역하여 주군을 친다. 역사상 흔히 보이는 유형 가운데 하나다.

결국 이 모든 비극과 혼란의 원인은 다름아닌 백여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무례함이 모가비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고, 그녀에 대한 증오가 모가비로 하여금 무리수를 두어가며 진시황 전회장의 자리를 노리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러한 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여치가 가진 모든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든 행위는 분명 백여치에 대한 증오였다. 백여치가 충분히 모가비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후계자였다면 그랬어도 모가비는 사람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백여치는 마냥 모가비를 혐오하고 경멸할 뿐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의 아랫사람인 적이 없었던 오유방(이범수 분)은 괜찮지만 외할아버지의 부하였던 모가비는 자신과 같은 동등한 인격이 될 수 없다. 너무 확고하다.

하여튼 백여치의 본모습이 드러나려 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의 <초한지>에서도 한고조 유방의 아내였던 여후 여치는 대단한 여결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상 한신과 팽월, 영포라고 하고는 한왕조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공신을 단호하게 숙청한 것도 바로 이 여치의 업적이었다. 한고조가 죽고 여치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여치와 그녀의 일족을 건드릴 수 없었다. 다만 지나치게 자신과 자신의 일족만을 위하려는 일방적인 이기가 반발을 불러일으켜 여후가 죽고 난 뒤 여씨일족이 몰락하는 빌미가 되고 만다.

당장 모가비를 대적할 수 없으니 바짝 엎드린다. 짐짓 알콜중독에 폐인이 된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경계를 풀고 비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동정심을 유도한다. 그러나 가슴 속에 벼린 칼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둔다. 감정으로 대할 것이 아니다. 상대를 죽이는 것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한 번만 제대로 찌를 수 있다면 상대는 죽을 수밖에 없다. 권력의지다. 그보다는 모욕과 수모에 대한 설욕의 의지다. 그녀의 자존심이다. 그녀는 태생이 다르다.

아무튼 지록위마의 고사가 그대로 보여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어느날 백성들이 임금에게 묵이라는 생선을 잡아다 바쳤다. 임금이 먹고 맛있다며 은어라 부르라 시켰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먹어보니 맛이 영 아니라 도로 묵이라 하라고 지시했다. 묵이 도루묵이 된 사연이다. 어차피 물고기는 한 가지인데 왕이 은어라 하니 은어가 되고 묵이라 하니 도루묵이 된다.

권력이다. 권력이란 표준이다. 그 시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권력의 의지가 모든 것을 정의한다. 빨갱이라 하면 빨갱이고 불령선인이라 하면 불령선인이다. 깡패도 애국주먹이라 부르면 애국주먹이 된다. 거부하면 죽는다. 거부하면 배척받고 도태된다. 그래서 권력은 때로 그것을 즐기기도 한다. 7월이 July가 되고 8월이 August가 된 이유였다. 덕분에 엄한 2월만 28일로 줄어 버렸다. 바로 그것을 지록위마라 부르는 것이다. 사슴을 말이라 해도 말이라며 따르게 된다.

최항우(정겨운 분)가 참 멋있다. 모든 것을 잃고 초라하게 돌아서는 백여치에게 조언도 해준다. 그것을 동정이라며 오히려 가시를 세우려 드는 백여치가 원래 성격이 안좋은 것이지 최항우는 나름대로 그녀를 위해 마음을 써주고 있었다. 모두가 모가비의 위세에 눌려 사슴을 보고도 말이라 하는데 오로지 최항우만이 도저히 같이 못 있겠다며 박차고 나간다. 남자다. 이제는 도저히 악역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천하그룹에 대한 악의야 그의 아버지가 죽은 이유로 인해 어느 정도 동정의 여지가 있고, 더구나 진시황 전회장이 죽었을 때도 그는 외손녀와는 상관이 없다며 오히려 그녀를 동정하고 있었다. 차우희(홍수현 분)를 대하는 감정 역시 진짜다. 답답할 정도로 서툴고 진실한 그의 감정이 드라마 가운데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어쩌면 다른 드라마에 대한 어떤 풍자였을 것이다. 도대체 운전하면서 뭔 딴짓을 그리 많이 하는가? 아무리 도로에 차가 없어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딸 때도 교관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방어운전이다. 그런데 운전대만 잡으면 뭔 할 일들이 그리 많이 생기는 것인지, 그 결과가 바로 교통사고다. 고작 최항우의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뿐인데 그 사이 눈앞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그대로 쾅! 안전밸트도 항상 반드시 매야 한다. 안전밸트만 했어도 최항우는 그렇게까지 다치지 않았다.

어쨌거나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라는 것일 게다. 백여치의 말이나 행동에 도저히 이입이 되지 않는다.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차라리 모가비를 동정하게 된다. 백여치는 여주인공이다. 의도한 것이거나. 아니면 초한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무리하게 현대의 기업에 적용하며 생겨난 예기치 못한 모순이거나. 오유방조차 그저 전근대적인 낡은 인물로 보일 뿐이다. 진시황 전회장의 지분이 고작 25%인데 백여치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다. 웃는다.

결국 모가비의 몰락은 주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데서 오고 말 것이다. 박범증(이기영 분)을 쳐냈다. 그는 모가비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다. 자신의 손발이 되어주던 사람마저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 그저 의심하고 강압하려 할 뿐. 그녀의 편은 없다. 그녀의 한계다. 너무 오랫동안 2인자로만 머물렀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 본 적이 없다. 과연 누가 모가비를 치고서 모가비의 자리를 대신할 것인가. 백여치가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미운 감정도 연기를 못해서는 도저히 들지 않는다. 백여치가 밉다. 모가비를 연민하게 된다. 오유방을 이해한다. 최항우와 차우희의 관계에 몰입한다.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주는 연출과 대본 또한 탁월하다. 재미있다. 글을 쓰는 이유다.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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