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21 09:10

샐러리맨 초한지 "백여치, 나보다 더 천하그룹을 위하는 척 하지마 역겨워!"

전회장의 외손녀가 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유방의 선과 정의, 독한 블랙코미디를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회사일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이 이제 겨우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아직 이렇다 할 직책도 없고, 그동안 책임있는 역할을 맡아 수행해 본 적도 없다. 실적은 당연히 없다. 기껏해야 부사장인 최항우(정겨운 분) 밑에서 후계자수업 조금 한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1년만 보아달라.

드라마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오유방(이범수 분)은 더 이상 선역이 아니다. 물론 인정에 이끌린다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진시황(이덕화 분) 회장이 죽고 외손녀 혼자 남았다. 그런데 회장이 죽고 난 빈자리만을 노릴 뿐 누구도 회장의 외손녀를 돌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유방이 나선다. 회장이 죽었다고 어느새 입장을 바꾸고 있는 회사의 중역과 주주들 앞에.

하지만 과연 천하그룹이라는 기업이 진시황 회장 개인의 소유이던가? 백여치(정려원 분) 자신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진시황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지분은 천하그룹 전체 지분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과반을 넘겨 지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머지 주주들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야 하는데 그런데 절반도 안되는 지분으로 천하그룹을 마치 당연히 자신이 물려받아야 하는 진시황 회장의 사유재산처럼 여기고 있다.

하기는 모가비(김서형 분) 실장 역시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진시황 회장의 지분이 과반을 넘는다면 물론 차기 천하그룹 회장을 선출하는데 있어 그의 유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 회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주주의 지분을 더한 것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데 주주총회를 열어 결정하려 해도 과반으로 진시황 회장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아니었다. 진시황 회장이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주려 해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사를 묻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과반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당연히 부결된다. 남은 주주들에게 모가비 실장을 지지할 것을 부탁할 수는 있지만 그녀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 아마 자신의 손으로 진시황 회장을 죽인 데 따른 정신적 충격이 그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 천하그룹은 진시황 회장의 것이며 당연히 그의 뜻에 따라 경영권은 물려질 것이다.

어쩌면 지독스런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주인공이다. 당연히 선역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선역을 맡은 주인공이 천하그룹이라는 기업을 개인의 사유물로 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전임 회장의 외손녀인 백여치를 천하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아니 정확히는 당연히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회장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인 오유방이 나서고 있다. 비열하게 최항우와 박범증(이기영 분)이 주주이사들과의 회합자리에 나가지 못하도록 모략까지 써가면서.

한국의 전근대적 기업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업이란 경영자 개인의 사유물에 불과한 것인가? 정작 기업에 투자한 주주나 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영자 개인의 의지에 따라 물려주고 물려받고 할 수 있는 대상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상식과 양심을 대변하는 오유방이 그래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에 거스르는 주주나 임원들은 배신자들이다. 양심과 의리를 저버린 사람들이다. 하필 그것이 오유방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지 않을까?

분명 천하그룹 역시 다른 많은 국내 재벌들처럼 지주회사체제를 채택하고 있을 것이다. 지주회사의 지분만 확보하고 있으면 그를 통해 얼마든지 최소한의 지분만을 가지고도 그룹 전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진시황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는 천하그룹의 지분이라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일 게다. 지주회사의 지분이 절반이 채 안되는데 전체 천하그룹의 지분 가운데 진시황 회장의 지분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회장의 외손녀이기에 백여치는 천하그룹의 회장이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오유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주주이사들을 협박까지 한다.

이 또한 사실 부조리일 것이다. 협박이란 협상을 전제하는 것이다. 협상을 통해 내가 의도한 바를 상대에게 강요하려 할 때 협박이라는 수단을 동원한다. 한 마디로 거래다. 내가 의도한 그것만 관철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 당연히 어떤 처벌도 징계도 없다. 물론 항상 그러한 약속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전제가 있기에 상대도 협박에 응한다. 분명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게 도움만 줄 수 있다면 모든 책임을 지워주겠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부정과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힘이 있다면 어떤 잘못도 거래를 통해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오유방이 백여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그에 비하면 백여치의 반대편에 있는 최항우는 어떠한가? 사실 백여치에게는 이미 천하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없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 천하그룹의 최대주주였다. 어찌되었거나 천하그룹에 몸담고 있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항우가 천하그룹의 이익을 위해 팽성실업과 경쟁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어이없게도 경쟁사인 팽성실업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천하그룹이 팽성실업과의 경쟁에서 패하며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되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들어간 비용과 그것을 상품화하는데 들인 노력, 그리고 경쟁입찰에서 팽성실업을 이기기 위해 투자한 시간들까지, 더구나 장차 신제품을 통해 거둬들일 수 있었던 이익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천하그룹이 손해를 입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천하그룹에서 일하는 임직원 모두와 천하그룹에 투자한 주주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유방은 당당하게 모두의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천하그룹과 팽성실업의 경쟁은 최항우와 백여치 두 사람의 개인적인 싸움이었고 팽성실업이 이김으로써 백여치가 이긴 것이 되었다. 회사와 주주들에 피해를 끼칠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항우, 나보다 더 천하그룹을 위하는 척 하지마. 역겨워!"

아마 필자가 천하그룹에서 일하는 입장이었다면 저 말을 듣고 그대로 참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주의 입장이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최항우가 팽성실업과의 경쟁에서 순조롭게 승리했다면 그 과정에 참여했던 관계자 모두에게 적지 않은 보상이 돌아갔을 것이다. 주주들 또한 회사가 이익을 거두면 그 만큼 더 많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주가가 오르면 또한 주주 자신이 보유한 재산가치 또한 오르게 될 것이다. 회사와 관련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백여치로 인해 천하그룹은 팽성실업과의 경쟁에서 패했고, 그녀가 임시회장이 됨으로써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과연 진정으로 그녀가 천하그룹을 위하려 한다면 무리하게 회장자리를 지키려 하기보다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과감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천하그룹을 위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천하그룹을 위하기는 한다. 바로 외할아버지인 진시황 회장이 소유했고 장차 자신이 물려받아 소유하게 될 천하그룹만을 위한다. 오로지 그 천하그룹만이 의미가 있다. 제아무리 유능한 인재이고 확실하게 실력이 검증된 인사라 할지라도 다른 이가 회장이 된다면 더 이상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회사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주주가 된 입장에서 누가 더 회사를 위하고 있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외할아버지의 회장자리를 지키려는 백여치는 정의롭고 실력으로 그 자리를 노리려는 최항우는 불의하다. 철저한 조롱이다. 이런데도 기업을 사유물화하려는 경영자들이 좋게 보이는가?

부조리극일 것이다. 진시황 회장 자신이 이미 부조리의 원인이었다. 백여치가 그 부조리를 이어받고 있다. 그리고 오유방은 그가 갖는 주인공으로서의 선의와 정의감을 통해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부조리이지만 그의 상식에서 선이고 정의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곧 악이고 불의다. 한참을 웃게 된다. 이래서 드라마는 코미디다. 화가 나는데도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이 뻔뻔한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당당해 보인다. 필자가 천하그룹의 임직원이거나 주주였다면 결코 그 당당함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모가비 실장의 연기가 대단하다. 김서형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인 데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환멸과 혐오, 더구나 그토록 오랜 시간을 가까이에서 모셔온 상사였다. 아무리 이기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었고 가식으로써 그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진시황 회장을 위해 모든 정성과 마음을 쏟은 그 순간들은 실재했던 진짜였다. 그런데 백여치에게 돌아갈 것들을 질투하고 탐내어 진시황 회장을 죽이고 그 시체를 앞에 두고 유서를 조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뒤를 돌아볼 수 없는 탐욕과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양심, 불안에 울고 두려움에 웃고 그럼에도 마침내 손에 쥐게 될 이익에 몸을 떤다.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그녀의 양심이 도리어 그녀를 옭죄게 될 것이다. 악이란 어디로 비롯되는가? 죄란 어떻게 저질러지는가?

분명 그녀는 악역일 것이다. 그야말로 악녀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하물며 그 죽인 대상이 지난 십수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그녀의 상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필연적인 과정들이 있었다. 그저 악녀여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악인이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 또한 평범한 수많은 개인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충동이 죄를 저지르고 본능이 그 죄를 합리화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돌아갈 수도 없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김서형이라는 배우는 매우 훌륭히 연기로써 소화해 보여준다. 촬영일정이 무척 빡빡할 텐데도 그녀에게 순간 몰입하고 있었다. 최고였다.

차우희(홍수현 분)를 끌어안고 자신을 갖기 위해 주문을 외우는 최항우가 귀엽기까지 하다. 선역과 악역이 바뀌었다. 주인공과 그의 경쟁자의 입장이 바뀌었다. 원래 <초한지>에서도 그랬다. 개인으로써 보면 어쩌면 항우 쪽이 유방도다 더 매력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최항우는 방심하고 있었고 유방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쓰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상황을 낙관하며 오히려 백여치를 동정하던 최항우와 최항우를 적으로 여기고 오로지 백여치만을 위하려는 유방과, 승부는 여기서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불운한 희생자가 된다. 누구보다 천하그룹을 위했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혈연을 이기지 못한다. 혈연을 지지하는 일반의 정서와 상식에 패하고 만다. 만일 그가 아닌 백여치가 천하그룹의 회장이 되게 된다면 말이다.

하여튼 역설일 것이다. 소외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한 오유방과 재벌의 외손녀로서 그 모든 것을 물려받을 백여치와의 관계란 것이. 실력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는 최항우는 차라리 악이다. 오로지 혈연만이 선이며 정의이다. 그를 외면하면 불선이고 불의다. 웃게 된다. 진짜 코미디다. 재미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