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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5.21 08:05

[김윤석의 드라마톡] 마녀보감 3회 "하늘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 허준과 연희가 만난 이유"

김새론의 신비로운 매력,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 마녀보감 ⓒJT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마녀보감. 피할 수 없기에 운명이다.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을 굳이 운명이라 말하지도 않는다. 함부로 입밖에 내어 말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운명을 벗어나려 발버둥칠수록 올무처럼 무심하게 조여 올 뿐이다. 운명을 벗어났다 여긴 순간 운명은 다시 운명으로 돌아온다.

더구나 선대의 잘못으로 인해 지워진 운명이었다. 유교문화권의 업은 불교문화권의 업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개인의 윤회가 아닌 혈연을 통한 유전으로 이어진다. 흔히 음덕이라 말하는 것이다. 조상이 덕을 쌓았으면 후손이 그 혜택을 받는다. 조상이 악을 행했다면 후손이 그 업을 받는다. 이른바 동기론이다. 조상과 후손은 같은 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덕도 업도 같이 받는다.

뒤바뀐 운명이었다.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서 태어났어야 했다. 그런데 억지로 운명을 비틀어 다른 사람에게서 태어나도록 만들었다. 그마저 예정된 순리였다면 상관없지만 어긋난 역리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필연이다. 잘못 태어난 이는 죽고, 그와 가까이 하는 이들마저 불행을 겪는다. 반드시 누군가의 직접적인 저주때문만은 아니다. 저주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지은 업 위에, 혹은 자신의 업 위에 저주라는 운명을 더한다.

행복했었다. 즐거웠었다. 처음으로 결계를 벗어나 또래의 소녀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다. 잔혹한 대가가 뒤따른다. 비극의 운명과 만난다. 애써 인간의 힘으로 억눌러 놓았던 결계마저 불타고 연희(김새론 분)은 더 참혹한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을 거스르려던 흑주(염정아 분)도, 사람의 의지를 받들고자 했던 최현서(이성재 분) 역시.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그렇게 운명은 에정된 길을 따라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얼자라는 신분은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안달하고 노력해도 이미 타고난 얼자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하늘이 정한 운명이 있다면 사람이 정한 운명도 있는 것이다. 신분이고 질서다. 윤리이고 정의다. 인간의 법칙이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어도 어머니의 신분이 다르다면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운명 또한 달라지게 된다. 정부인에게서 태어난 허옥(조달환 분)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과거를 보아 관리도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노비에게서 태어난 허준(윤시윤 분)에게 그것은 단지 꿈에서나 그려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 허준은 천첩에게서 태어난 얼자가 아닌 양첩에게서 태어난 서자였으며, 아버지 역시 문관이 아닌 무관으로 허옥이 과거를 준비해야 한다면 무과가 더 옳았다. 허준이 양예수의 제자로 들어가 내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허륜의 도움이었고 보면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 할 것이다.

하늘이 정한 운명과 사람의 정한 운명에 갇힌 두 사람이 우연히 세상의 경계에서 만나게 된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밤을 지새게 된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두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이유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은 제각각 자기만의 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허준에게는 위로였지만 연희에게는 두려움이었다. 과연 자기는 어떤 쓸모를 가지고 어떤 이유로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세상이 모두 자기를 외면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채 홀로 외롭게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자신을 속이고 있지만 그래봐야 어쩔 수 없이 채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무언가를 감당하기에 아직 작고 어리기만 하다.

겨우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허준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라는 가혹한 운명이었다. 겨우 하루 평범한 행복을 맛보고 있던 연희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벌써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저주받은 운명이었다. 양아버지 최현서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그 선의마저 연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역시 뜬금없다. 어째서 산속 사찰에 저주를 풀 수 있는 대단한 주술서가 감춰져 있고, 또 주술서대로 저주를 풀 수 있는 초들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일까. 설명되는 것은 근대 이후의 소설에서다. 세상은 그리 논리적이 않다는 것을 오래전 조상들은 벌써 이해하고 있었다. 그냥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 적혀있는대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의심할 필요 없다. 사람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아직 어린 김새론의 신비한 매력이 벌써부터 드라마의 중심이 되어 준다.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투명한 색깔을 덧입혀준다. 그녀를 중심으로 만나고 자기의 운명을 살아간다. 흑주가 알았다. 멈췄던 운명의 시계가 예정된 순간을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어둡고 불길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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