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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5.14 08:40

[김윤석의 드라마톡] 마녀보감 첫회 "귀신이 머무는 구중궁궐, 권력의 그늘"

의외의 단단함, 역사의 토대 위에 판타지의 성을 쌓다

▲ 마녀보감 ⓒ아폴로픽쳐스,드라마하우스,미디어앤아트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마녀보감. 악귀가 탐욕을 부르는가? 탐욕이 악귀를 부르는가? 권력을 향한 욕망보다 더 추악한 것은 없다. 이미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만큼 지독한 것도 없다. 마침내 자기 손을 피로 물들인다. 약속을 저버리고 그저 자신을 믿던 이의 등에 칼을 꽂는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보다는 중전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아들을 위해 자기가 낳은 딸을 죽여야 한다.

굳이 언제가 배경인지 알아보지 않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상의 시대가 아니라면 조선의 역사에서 저처럼 지독스럽게 왕까지 찍어눌러가며 수렴청정에 적극적이었던 이는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가 유일하다. 하필 태양이 기운을 잃었고, 더구나 5년 전 흑주술로 태양을 바꾸기까지 했으며, 무엇보다 대비 스스로 아들인 왕에게 왕위에 올리고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을 공치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더 확실해진다. 성수청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소격서가 폐지된 것이 바로 다음왕인 선조 때 임진왜란이 끝난 뒤였다. 

확실히 말 그대로 태양이 기운을 잃었던 시기였다. 5년 전 흑주(염정아 분)가 흑주술로 바꾸었다는 태양이 왕을 뜻한다면 어머니인 대비 문정왕후(김영애 분)를 거스를 수 없어 그 그늘에 가려야만 했던 명종(이다윗 분)의 처지가 정확히 들어맞는다. 왕위 권위를 잃으면서 왕을 거스르고 왕마저 넘어서려는 이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조정은 무능하고, 권신들은 탐욕스러우며, 살 길을 잃은 백성들은 유민이 되어 떠돌다가 백성이 되어 다시 나라를 소란케 했다. 차라리 악귀라는 것이 실제 있어서 그로 인해 그리 된 것이라 여기는 쪽이 더 마음이 놓을 정도로 최악의 시기였었다. 자연스럽게 없던 악귀도 모든 혼란의 중심인 궁궐로 모인다.

흑주가 궁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비마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대비가 가진 욕망 때문이었다. 자신과 가문의 영화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핏줄인 왕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란 오로지 왕을 낳은 생모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다른 이가 왕위에 오른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아들에게서 왕자가 태어나고 그로 하여금 왕위를 물려받게 해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수 있다. 바로 그같은 탁한 절박함을 흑주가 파고든 것이었다.

중전 심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중전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었다. 중전인 자신의 뒤에는 자신의 출신인 가문이 버티고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중전의 자리를 지키더라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한낱 무녀가 고귀한 자신의 몸에 매질을 해도 참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대비의 명령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것을 더욱 간절한 갈망으로 변했다. 모성이 아니었다. 오로지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끝내 딸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한다. 처음부터 잔인하거나 독한 성품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각박함이 그녀를 그렇게 내몬다. 자신이 약속했던 성수청 무녀 해란(정의선 분)의 어머니와 동생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서도 자신의 손으로 피를 묻혀가며 해란의 등을 찌른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해란의 큰 저주로 이어진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그토록 모질고 가혹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 왔었다.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노라 그렇게 많은 이들을 희생시켜 왔었다. 당장 사람은 죽었어도 원한은 망령처럼 남는다. 결국 문정왕후의 친정이 그녀의 사후 몰락하게 되는 이유였다. 인과란 초현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이능같은 것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법치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기가 한 만큼 돌려받는다. 그것을 때로 신의 이름으로, 귀신의 이름으로, 망령이나 혼령의 이름으로 돌리기도 한다. 악귀가 있어서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지럽기에 악귀가 사람에 달라붙는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바로 몇 해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떠올리고 말았다. 하필 대비역을 맡은 배우가 같은 김영애였다. 성수청과 소격서라는 이름과 궁중에서 흑주술이 쓰이는 장면 등이 얼핏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배경이 다른 만큼 드라마의 색깔 역시 전혀 달랐다. 인간의 나약함과 권력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둠 만큼이나 음험하고 끈적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마저 어른의 잘못으로 저주를 안은 채 태어나야만 했다. 아마 이 아이들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원래 자신의 생모였을 이로부터 저주를 받고 태어나, 다른 한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가 희생되어야 했던 잔인한 운명은 그들이 아닌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 가려는지 불안할 정도로 불길했다. 과연 최현서(이성재 분)가 말한 흑주가 조선을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외로 단단하다. 굳이 내세워 주장하지 않더라도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역사라는 기초 위에 판타지라는 자신만의 성을 촘촘히 견고하게 쌓아올린다. 주술이 난무하는 판타지에 대한 흥미 만큼이나 역사라고 하는 실제의 사실과의 접점 역시 기대하는 부분이다. 아직은 서론이다. 본론은 이제 시작하려 한다.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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