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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4.06 07:30

[김윤석의 드라마톡] 동네변호사 조들호 4회 "너무나 아쉬운 검사 신지욱의 캐릭터와 존재감"

동네변호사로서의 시작, 책임의 무게에 대한 자각

▲ 동네변호사 조들호 ⓒSM C&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동네변호사 조들호 4회. 신지욱(류수영 분)의 캐릭터가 비중에 비해 너무 심심하다는 느낌이다. 동기가 부족하다. 반드시 응징해야 하는 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기고 무찔러야 하는 적으로서도 무언가 아쉽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라기에는 아무래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냥 검사장 신영일(김갑수 분)과 주인공 조들호(박신양 분)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영일에게 다가가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조금 큰 조무라기 정도일까.

만일 조들호에게 이끌려 증인석에 앉은 할머니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사건은 처음부터 다시 수사되어야만 했었다. 교통사고 목격자가 나타났다. 살인이 아니었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내고 사망한 피해자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었다. 자신이 살해하지도 않은 사체를 훼손할 목적으로 일부러 불을 질렀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므로 피고인 변지식(김기천 분)의 살인은 물론 방화의 혐의는 동기단계에서 이미 부정되는 것이나 같다. 그렇다면 진짜 피해자를 교통사고를 내어 사망케 하고 불을 질러 그 시신마저 훼손한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그러나 정작 현직검사였음에도 신지욱은 그에 대해 어떤 흥미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친아들인 자신보다 더 아버지가 인정하고 또 신뢰했던 조들호에 대한 일방적인 질투심과 적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조들호를 이겨야만 한다. 어떻게든 법정에서 조들호를 꺾어야만 한다. 할머니의 증언이 과연 사실인가의 여부보다 오로지 그 증언이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심리적 약점을 이용하여 일부러 법정에서 치매를 악화시키는 비열한 수단마저 동원한다.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과연 진짜 범인이 누구였는가 최소한의 궁금증을 보이기보다 다음 상고심에서는 어떻게든 이기겠노라는 다짐만을 보이고 있었다. 그마저도 아버지 신영일에 의해 거부되었을 때 사실상 신지욱에게 남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아버지 신영일이 허락했을 때만 조들호와도 적으로 만날 수 있다. 정회장의 아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 인지한 상태에서도 정작 수사를 할 것인가의 여부를 아버지를 찾아가 먼저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지 말라니 하지 않는다. 조들호처럼 되고 싶냐는 말이 아무말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차라리 아버지 신영일보다 더 지독하고 철저한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만큼 욕심도 야심도 크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이용해서 조들호 한 사람 정도 곤란케 할 정도는 된다. 아니면 그러고자 하는 의지도 용기도 있는데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결국 져야만 하는 캐릭터다. 연민이라도 생긴다. 아니면 아직 신지욱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보여줄 것이 남아있는 것일까.

통쾌함이 부족한 것은 상대가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정의롭지도, 강직하지도, 그렇다고 악랄하지도 못하다. 너무 어설프다. 오히려 그보다 더 조들호를 괴롭힌 것은 피고인 변지식의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할머니의 치매였다. 거기서 정리된다. 재판의 결과 신지욱의 열등감은 더욱 깊어지고, 조들호는 변호사로서 자신이 나가야 할 목표를 가지게 된다. 신영일이 직접 찾아와 조들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적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 경고를 주고받는다. 진짜 적은 신영일의 뒤 더 높은 곳에서 굽어보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정회장의 아들과 관계되어 있었다. 신지욱이 인지한 불법과도 이어진다. 하필 법무법인 '금산'에서 임대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수임한 것이 바로 직전 변지식 사건에서 함께 팀을 이루었던 이은조(강소라 분)였다. 이번에는 법까지 조들호의 의뢰인인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아직 조들호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이길 수 있다는 허튼 큰소리조차 한 마디 내뱉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금산'과 어쩌면 검찰, 그리고 정회장이 버티고 있는 대화그룹을 이기고 의뢰인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본질을 짚는다. 변호사가 아무리 잘나봐야 소용없다. 검사가 아무리 대단하고 정의감까지 강해봐야 이래서는 의미가 없다. 법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있는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법이 없으면 아무리 악독한 범죄자라도 처벌도 체포도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법을 만드는가. 법을 탓하고,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탓해도 정작 그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특히 공중파 드라마에서라면 더 그렇다. 사회적인 문제가 될 일들도 개인의 문제로 만든다. 전직 검사이고 현직 변호사인데도 법으로 안되니 몸싸움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도 맛집으로 알려져 있고 단골도 적지 않은 식당인데 벌써 수십년 장사하던 곳에서 쫓겨나는데도 마음놓고 맡길 변호사 한 사람 없었다. 변지식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변호사는 보다 가까운 곳에 아무라도 손내밀면 잡아줄 수 있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변호사는 너무 귀하다. 동네의원처럼 마치 사랑방처럼 아무라도 찾아가서 법과 관련한 도움과 조언을구할 수 있는 그런 변호사가 많아져야 한다. 사무실의 위치가 좋지 않다. 사람들이 다가가기 힘든 대부업자의 사무실에 곁방살이 중이다.

치열하지도 그다지 절박하지도 않았지만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급격한 변화나 반전은 없어도 끊임없이 집중하게 만드는 상황들은 이어지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력의 차이는 명백하다.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도 확연하다. 아직은 변호사로서 서툰 조들호의 틈이 한 편으로 새로운 위기를 만든다. 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사건을 맡는다.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재건축을 위해 임차인은 무조건 쫓겨나야 하는가. 의외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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