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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02 08:01

위대한 탄생 - 마침내 손진영의 1절과 2절을 듣다

멘토가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기적

 
지난 3월 4일 멘토 김태원은 자신의 멘토스쿨 마지막 심사에서 멘티 손진영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을 건넨 바 있었다.

“손진영씨에게는 후렴만 있고 1절과 2절이 없어요. 1절과 2절을 만들어야 합니다. 후렴은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방송에서 2명의 생방송진출자를 가려내고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한 손진영에 대해 방송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영이가 왜 비장함부터 배웠어야 했는가 그것이 너무나 아쉽다.”

그것은 박완규와 이번 신승훈, 방시혁 등이 동시에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 노래를 슬프게 불러? 몸서리가 쳐져. 슬퍼서.”

“예전에는 앞부분부터 휠을 너무 넣어서 뒤에는 도대체 어떻게 처리하려고 앞부분부터 저렇게 휠을 넣을까 생각했는데...”

“절박한 무대는 보고 싶지 않아요.”

아마 여러 가지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리고 졸지에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중압감, 더불어 네티즌이 찾아낸 한 장의 사진,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자 했다면 그만큼 음악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버겁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음색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음역대도 넓고, 박칼린이 인정한 정확한 음정과 리듬감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태원을 제외한 어떤 멘토로부터도 선택되지 못했고 좋은 소리도 듣지 못했다. 업보라는 말처럼 그로 인해 정작 멘토인 김태원마저 비판을 들어야 했었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너무 비장하다. 듣는 사람이 너무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당장 4월 1일 <위대한 탄생> 18번째 방송 '패자부활전'에서 방시혁과 신승훈의 손진영의 노래에 대한 평가가 그것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절박함이 빠졌어요. 그냥 편했어요.”

“앞부분에서 말하듯이 얘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것을 느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그것은 바로 김태원의 이 한 마디에 모두 요약된다.

“지금 그렇게 행복해 보였어요. 제가 다 행복합니다.”

하긴 손진영이 패자부활전의 무대에 오르자 김태원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위대한탄생이 시작하고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참 아름다웠죠?”

그것은 지금까지 모두가 외면하는 가운데 끝까지 그를 믿고 끌어오려준 멘토로서의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해 손진영은 위대한 탄생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김태원과 시청자들에게 이런 답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동안 제가 지내왔던 생활들과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이 한 기회를 통해서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마 그 말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사실 <위대한 탄생>에서도 손진영이 패자부활전의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쏟아졌고 김태원이 아닌 어떤 심사위원도 그를 돌아봐주지 않았다. 시청자들마저 심지어 손진영을 선택한 김태원의 결정을 비판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서 패자부활전의 무대에서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꿈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노래 도입부에서의 손진영의 손동작이 김태원 특유의 그것을 닮아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우연이었을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그런 동작이 나올 정도로 손진영에게 김태원은 필연이 되어 있었다. 마치 새끼오리가 어미오리를 따라하듯.

그것은 손진영에게 있어 치유이며 구원이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이미 아름다운 후렴에 이제까지 없던 아름다운 1절과 2절을 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애벌레가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게다. 날개짓하는 그 화려한 비상이 어느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무대가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위대한 탄생>이 부린 마법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무대에 오르고, 그리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얻어진 하나의 거대한 기적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말 그대로 자신감이었다. 절박한 가운데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어느새 자신감을 가지고 여유를 가지고 노래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해 보이기에 자신도 행복하다는 김태원의 말처럼. 자신이 행복하기에 듣는 사람도 행복하다. 자신이 여유가 있기에 듣는 사람도 편안하다. 그리고 방시혁이 말한 그대로 그것이 음악이고 노래다. 노래는 즐기자는 것이다. 놀자고 해서 노래다.

마침내 그는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짓누르고 있던 아픔과 삶의 무게로부터 스스로 이겨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딛고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비로소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과 표정도 그의 노래처럼 한결 가볍고 밝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멘토라 하는 것은. 그저 재능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끌어올려주는 멘토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삶 그 자체를 정의하는 말 그대로의 멘토다. 조언자이며 길잡이이며 스승이다. 김태원은 바로 그런 스승이었다. 손진영에게. 그리고 어느새 손진영에게 이입해버린 나 자신에게.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에게도.

 
그래서 가장 감동이었다. 가장 아름다웠다. 33.8점이라는 패자부활전에 참가한 10명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보다, 박원미의 9.5점을 제외하고 가장 높았던 이은미와 방시혁의 9.0과 8.9점이라는 점수보다, 무거운 껍질을 벗어던진 채 한결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그 모습이. 그럴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계기를 마련해 준 멘토 김태원의 존재가.

“그런 것들도 제가 가르쳤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만일 김태원이 아니었다면? 김태원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단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외면하고 일찌감치 떨어뜨려 버렸다면. 사람들이 지적하고 비판하던 것처럼 아직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그를 떨어뜨리고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더 아름다워진 손진영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겠지. 손진영도 그와 같은 한결 아름다워진 노래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오디션에 대한 반란일 수도 있다. 가장 오디션답지 않은 오디션이었을 것이다. 오디션은 물론 첫째 꿈이다. 그러나 둘째는 경쟁과 생존이다. 살아남는 자만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고,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어 사라질 뿐이다. 손진영과 같이 현재가 부족해서는 마찬가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김태원은 그러지 않았다.

김태원 멘토스쿨이 그랬던 것처럼. 오디션의 이유인 꿈의 간절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오디션의 경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려와 따뜻함. 구원을 느끼는 것은 어느새 낙오하여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 현실에서 그래도 누군가 믿고 의지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었다. 비록 TV화면속에 비쳐진 판타지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굳이 절망하지 않더라도 어디에든 구원의 손은 있고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직 삶은 끝이 아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패자부활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손진영은 역시 패자부활에 어울린다. 최종심사를 통해 순조롭게 생방송에 나가기보다는 한 단계 더 고난과 좌절을 딛고 이렇게 아름답게 부활하는 쪽이 더 그의 모습과 어울린다. 그렇게 고난과 좌절을 딛고 한 걸음씩, 이제 생방송 무대에서 어디까지 올라가든 그것은 손진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바로 오디션이 보여주고자 하는 꿈. 오디션을 통해 보고자 하는 희망. 진심으로 그의 선전을 기대한다.

 
사실 많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굳이 언급할만한 참가자를 꼽자면 함께 패자부활에 성고한 조형우를 제외하고, 너무 어른스럽게 부르는 목소리가 자신의 강점을 가렸던 김정인과, 너무 감정에 북받쳐 울음이 노래를 가려버렸던 박원미, 감동은 있었지만 노래를 듣기가 힘들었다. 양정모도 사실 기대에 많이 미치지는 못했다. 너무 노래를 잘한다. 김태원의 표현대로라면 자기가 노래를 잘하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설렘이나 기대가 없다. 반전도 놀라움도 없다. 될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멘토들이 자신의 멘티들에 대해 애정을 아끼지 않는 것도 보기 좋았고, 그래서 멘토가 멘티에게 점수를 주지 못하게 하는 배려가 이해가 되었다. 더 이상 단순한 심사위원과 참가자는 아니라는 것일 게다. 무대 자체는 그다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오가는 따뜻함과 정이 역시 마음 한 구석을 훈훈하게 해주었달까? 물론 앞으로 생방송에 들어가면 또 누군가를 떨구어야 하겠지만 그런 마음의 정이 있어 경쟁이 주는 살벌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손진영의 마지막 멘트는 솔직히 오버였다. 거기서 느닷없이 부활의 ‘회상3’를 부르고, 패자부활전에서 탈락한 참가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열심히 하겠다. 채널을 돌릴 뻔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또 이런 것이 <위대한 탄생>만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멘토 김태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 참가자들에 대한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써의 인정과 배려, 진심이란 그 무게 만큼이나 사람을 때로 민망하게 만든다. 직구승부밖에 모르는 그 열혈이 조금은 귀엽기도 했다. 순수한 사람이다.

정말 기대하지 않은 감동이었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있었다. 박원미의 눈물도, 손진영의 어느새 여유있는 웃음도. 언제부터인가 마치 중독처럼 배워 쓰게 된 말이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꿈을 꿀 수 있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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