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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29 08:27

무한도전 "1타 3100피의 대반전! 거북이 하하 토끼 노홍철을 이기다!"

하찮음과 시답잖음의 역설, 아무런 시름도 고민도 없는 코미디에 웃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필자 역시 하하만큼 짧은 것은 아니지만 대신 손톱이 무척 약하다. 그래서 캔뚜껑을 따다 보면 어느새 노홍철과 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뚜껑따개를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손톱이 견디지 못하고 벌어져버리는 탓에 실제 피를 본 적도 있었다. 캔뚜껑이란 따라서 손톱이 아닌 살로 따는 것이었다.

노홍철의 오산이었다. 물론 캔 하나를 따는 것이라면 손톱이 있는 쪽이 한참 유리하다. 손톱만 버텨준다면 손톱을 따개 밑으로 넣어 살짝 젖혀주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캔을 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면 결국 내구성 싸움이 된다. 손톱과 손톱밑살은 별개의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에는 단단하게 밀착해 있지만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벌어지고 만다. 손톱과 손톱밑살이 벌어지면 무척 아프고 더구나 더 이상 손톱이 힘을 받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캔을 따는 동안에는 손톱과 손톱밑살은 서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캔 하나였다면 좋았다. 아니면 방법을 달리했어야 했다. 오히려 손톱이 너무 짧아 손톱을 사용해 캔뚜껑을 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하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연약한 손톱밑살의 결합력에 의지하기보다 더욱 단단한 손가락살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한두개는 느릴 수 있어도 요령만 붙으면 기복없이 나머지 맨들을 무리없이 딸 수 있다. 실제 그렇게 되었다.

그야말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였다고나 할까? 토끼는 방심했고 거북이는 멈추지 않았다. 토끼는 안주하고 있었고 거북이는 이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고 궁리해서 도전하고 있었다. 손톱의 편리함만으로 얼마든지 쉽게 캔뚜껑을 딸 수 있었던 노홍철에 비해, 오히려 그것이 잘 안 되었기에 컴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궁리하고 노력해서 준비했던 하하가 승리한 이유였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듯 현실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도전자만이 마지막 승리를 거둔다.

대반전이었다. 설마 한순간에 3100명이 모조리 떨어질 줄이야. 김병만을 찾아가 캔뚜껑따기를 연습하는 동안에도 설마했었다. 저 손톱으로, 저 손으로 과연 노홍철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하가 애써 공들여 따낸 깡통을 스태프가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따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무래도 하하에게는 승산이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3100명이라는 숫자가 판단을 흐렸다. 이건 너무 크다.

아니나 다를까 하하가 전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캔뚜껑을 따 나가기 시작했을 때 경기장 안의 분위기는 바뀌고 있었다. 하하의 최종기록 11초 09, 노홍철의 마지막 같은 2차시기 기록 23초 99, 경기장 안은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기고 나서도 하하가 당황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TV로 보고 있던 필자마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로하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래서 리얼이다.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다. 바로 이런 것이 드라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 미리 짜여진 대본이 없기에 가능한 가장 극적인 드라마. 심장이 조이고 쌓여 있던 모든 것이 쓸려내려가는 듯한 짜릿함마저 느꼈다. 황당하지만 후련했다. 충격적이지만 시원했다. 역시 구경꾼의 입장이었던 때문일 것이다. 당사자인 하하와 노홍철,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 무엇보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할 수 없게 된 3100명의 관객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충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조차도 너무나 짜릿해서 방송을 보는 내내 고조된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이것이 끝이었다. 이어진 간지럼참기나 공받기, 닭싸움은 부록에 불과했다. 3100명이라는 인원이 한꺼번에 사라졌는데 과연 더 이상의 흥분이나 긴장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허탈함마저 느꼈다. 그럼에도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 진한 여운 속에 나머지 게임들을 즐길 수 있었다. 과연 하하는 대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며, 노홍철은 그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긴 노홍철이 이후 하하에게 연패를 당한 이유 가운데도 두번째 캔따기에서의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황 가운데 부담감이 더욱 그를 쫓기도록 만들었다.

어쨌거나 최근 <무한도전> 가운데 최고의 장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는 없다. 이보다 더 후련할 수는 없다.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엑스터시와도 같았다. 등줄기가 저릿저릿하고 있었다. 역시 반전이 있어야 드라마는 재미있다. 예능이란 다름아닌 각본없는 드라마다. 드라마의 재미는 충격량에 비례한다.

아무튼 확실히 <무한도전>다운 미션이었다. 코미디의 근본이다. 시답잖음. 하찮음. 심각할 것이란 없다. 진지할 것이란 없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더 진지하다. 조롱이다. 희롱이다. 전혀 심각하지 않을 일을 가지고 심각해지고, 전혀 진지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지고 진지해지고, 그러면서도 심각하고 진지한 가운데 하찮고 가볍다. 별 것 아니다. 역설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웃게 만든다. 그 모순과 부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의 시름을 잊고 생각없이 웃을 수 있게 만든다.

사람들이 굳이 코미디를 찾아 보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은 항상 심각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고민거리 투성이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때로 그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러한 현실을 잊고 싶다. 무엇보다 위로받고 싶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잠시의 위로일망정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 뒤에는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순간만은 근심걱정 없이 마음껏 웃을 수 있게 한다. 노긍정의 말처럼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동갑내기의 흔한 신경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새 체육관에서 수천관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이는 시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시합의 내용이라는 것이 캔따기나 간지럼참기 같은 시답잖고 하찮은 것들이다. 여기에 그 시답잖고 하찮은 시합을 위해 진지하게 사전에 연습까지 하고 있었다면 과연 어떠할까?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역설이 역설을 부른다. 하찮은 것이 진지해지고, 진지한데 하찮아지고, 그 하찮은 것이 또 심각해진다. 결론은 예능이다. 하하와 노홍철이 그 중심에 있다. 박명수와 정준하와 정형돈과 길이 그 자리에 있다. 유재석이 있다. 수천 <무한도전>의 팬들이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 앞에 그것은 더 큰 반전이며 역설이다. 재미있다.

어제오늘 시작된 급조된 예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하하와 노홍철 사이에 누적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관객은 물론 시청자까지 모두 알고 있는 그들의 장단점과 개성이 있다. 프로그램과 팬과의 밀착된 관계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다. 우습고 비장하며 하찮고 재미있는 충격과 공포의 역설의 드라마를. 무어라 말해야 할까? 그저 즐거울 뿐이다.

문득 길이 놀라웠다. 이제까지 적중률 80%다. 무엇보다 그 분석이 흥미롭다. 정준하는 '여전히 그걸로 민다'고 말하고 있지만 얼마나 적절한 비유이고 표현인가? 주식시장을 분석하듯 하하와 노홍철의 판세를 분석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절묘하다. 3200포인트가 까이고, 바닥을 쳤으니 반등할 것이고, 그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부실주일 테고. 두 사람을 제외하고 돋보인 한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길도 입이 터지는 것일까? 약간은 진부한 감도 있지만 적절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준다. 길도 혼자서는 제법 재미있게 할 줄 안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쏠쏠한 양념역할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내내 웃고 있었다. 느닷없는 반전에 정자세가 된 이래 내내 웃고 긴장하며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그동안 무슨 고민이 있었던가? 어떤 근심이나 걱정이 있었던가? 나 자신마저 잊었다. 즐거웠다. 이래서 <무한도전>이라 하는 모양이었다. 마음껏 웃었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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