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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23 10:14

나는 가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가 1등이에요!"

청중 앞에 당당한 박완규와 그가 부르는 드라마를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1등이에요."

순위를 발표하면서 자신의 예상순위에 대해 PD가 묻자 주저없이 대답한다.

"내가 1등이에요."

오만하지만 당연한 것 아닐까? 과연 최선을 다한 자신의 무대가 최고가 아니라면 관객들은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 청중들은 무엇을 들으라는 것일까?

굳이 시간을 내어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굳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TV앞에 앉은 시청자였을 것이다. 만족하지 못한 무대였다면 모를까 스스로 만족했다면 그것이 바로 그러한 관객과 시청자 앞에 최선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최고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물건을 팔려 해도 남다른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품질이 뛰어나다거나, 아니면 가격이 저렴하다거나, 아무것도 장점이 없는데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물론 아무도 그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반이나 음원이 가수에 따라, 혹은 음악에 따라 그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아무런 내세울 수 있는 것 없이 시장에 내놓는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더구나 동료들이기도 한 다른 여섯명의 가수와 경연하는 자리다. 최고가 아니라 여기면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다른 가수들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다. 자신이 생각한 최고의 무대를 가지고 다른 가수와 경쟁한다. 그래서 더 나은 평가를 들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 그런 각오로 무대에 오른다. 다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자가 <나는 가수다>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다. 조용필 역시 지적했듯 어찌되었든간에 모두가 나름의 팬을 가지고 있는 프로가수들이다. 그 가수의 팬들에게는 그 가수야 말로 최고의 가수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순위가 매겨지고 서열이 정해진다. 과연 최근 <나는 가수다> 팬들로부터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적우의 경우 그것을 보는 팬들의 입장이 어떨까? 그녀의 노래에 감동하여 그녀의 노래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된 이들일 터다. 그런데 자격에 대한 논란마저 불거진다.

뿐만 아니라 경연이 열리던 당시에도 가수들에 투표한 청중평가단 가운데 낮은 순위를 기록한 가수에 대해 좋았다며 표를 준 평가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청중들 입장에서는 그들 가수들의 노래가 다른 어떤 가수보다 좋았다. 그런데 그러한 소수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된 채 숫자로서 계량되어 판단의 기준이 된다. 누구는 <나는 가수다>에 어울리네, 누구는 한참 떨어지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가수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팬들과, 그의 무대를 최고라고 판단한 청중에 대한 모욕이다. 순위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버린다.

박완규가 옳다. 순위는 단지 결과일 뿐이다. 청중평가단이 그 순간 그렇게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박완규에게는 그것이 최고였다.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 후회는 없고 순위야 어쨌든 박완규 자신에게 그것은 1등감이다. 그리고 그러한 박완규의 노래를 선택한 이들에게도 그것을 1등이었다. 그것이 모여 결과적으로 박완규는 1등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높은 순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척 저조했던 적우의 '이등병의 편지'처럼.

사실 <나는 가수다>가 방송되고 나서 결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누적된 숫자일 뿐 그 자체로 어떤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고라 여기면 최고인 것이고, 단지 그러한 의견들이 결과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주관적 판단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무모함 때문이다. 역시나 숫자로서 서열을 짓는 것에 한국사회는 익숙하다.

후회가 없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순위까지 높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것이 통해서 박완규는 1위가 되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다른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하는 그 진정성이 느껴졌다. 모르는 노래였지만 그러한 박완규의 진심을 통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각인처럼 새겨졌다. 그리고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였기에 선입견 없이 오로지 박완규의 노래로서만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컸을 것이다.

적우의 무대는 예상대로였다. 구슬프다는 말이 어울렸다. 서럽다는 말이 어울렸다.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는 공포였다. 절규였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기억이고 관조였다. 그에 비해 적우의 '이등병의 편지는 서러움이고 슬픔이었다. 자식을 군대보낸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할까? 필자가 입대하던 그날도 어머니는 그리 우셨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목소리로만 전해지는 그 진심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다만 김광석의 색깔을 지우는데는 실패해서 그 점이 조금은 마이너스가 되었으리라. 워낙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표준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순서도 안좋았다.

신효범의 '미련한 사랑' 역시 의외로 순위가 낮았다. 자문위원인 김현철은 그것을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불렀다 했는데, 그보다는 지나고 돌아보며 자신에 화를 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JK김동욱의 '미련한 사랑'이 자신에 대한 넋두리였다면 신효범의 '미련한 사랑'은 미련한 자신에 대한 분노이고 질타였다. 후회이고 자학이었다. 그래서 날이 서있었고 구슬펐다. 초반 음정이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중저음이 강한 김동욱과는 다른 신효범만의 고음을 살린 멋진 편곡이었다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마다 듣는 귀가 다르기는 하다.

김경호는 순위가 너무 높아서 놀란 경우였다. 헤비메탈이란 연주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악기의 연주와 그를 뚫고 들려오는 보컬의 목소리일 것이다. 하기는 김경호는 목소리 자체가 악기다. 다만 일관되게 두성으로 샤우트만을 질러대는 김경호의 스타일은 쉽게 지루해지고 말았다. 놀랍기는 하지만 워낙 김경호를 좋아해서 모든 앨범을 구입했던 탓에 김경호의 스타일 자체가 익숙하다. 드라마란 없이 일관되게 질러대는데 많이 아쉬움을 느꼈다. 박완규는 드라마를 보았던 당사자이기에 노래가 어울린다고 했지만 과연 김경호가 부른 '걸어서 저하늘까지' 어디에 드라마의 애절함이 있는가. 김경호의 음반이나 공연을 지켜보며 항상 아쉬워한 부분이었다.

윤민수는 오히려 안 좋은 목상태가 좋게 작용한 것 같았다. 힘겹게 쥐어짜는 목소리가 노래의 가사와 너무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애절하고 안타깝다. 간절하고 처절하다. 포유류가 내는 가장 강한 소리라는 것은 그런 상황에조차 가슴을 헤집으며 노래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가운데 윤민수의 무대로 가장 좋은 무대였다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탄하고 감동했다.

거미는 스탠다드했다. 정석대로 불렀다.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조금 넘쳤다. 과연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주는데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불러주어야 할까? 차라리 노래의 말미에 슬픈 웃음을 지어 보이는 쪽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너무나 밝고 맑아서 서러운 웃음이다. 원망하는 가사가 아니다. 다그치려는 가사도 아니다. 아닌 척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을 흘려전하는 가사다. 하기는 거미는 이은미가 아니었다. 필자와 해석이 많이 달랐다. 납득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테이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차라리 <불후의 명곡2>였으면 어땠을까? 너무 가벼웠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가수다>에는 <나는 가수다>만의 스타일이 있다. 무겁고 두텁다. 청중의 스타일 자체가 그렇다. 신나게 방방 뛰는 것은 좋은데 원곡이 갖는 묵직함마저 훼손해 버렸다. 그렇게 캔을 찾아갔을 때 '비겁하다~'로 시작되는 그 부분을 노래의 핵심이라 주의를 주고 있었는데. 그 부분이 달라지면서 신선하고 유쾌하지만 원곡의 느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신감마저 줄 수 있었다. 긴장을 했는지 목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해 많이 불안한 느낌도 있었다. 좋은 가수인데 안타깝다.

그리고 역시 대망의 박완규. 사실 OST 미션이었지만 미션에 충실했던 가수는 박완규 한 사람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박완규는 1위감이었다. OST란 한 마디로 주제음악이다. 드라마나 영화등의 작품을 드러내기 위한 음악인 것이다. 해설서와도 같다. 가이드와도 같다. 당연히 그 음악을 들으면 그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야 한다. 그 쯤 되어야 OST라 할 수 있다. 당시 출연한 배우까지 만나가며 드라마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려 노력한 순간 이미 박완규는 미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눈앞에 펼쳐지는 드라마의 장면에 박완규는 스스로 민종사관이 되어 장금과 마주하고 있었다. 청중도 그것을 함께 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굳이 민종사관이 아니어도 좋다. 대장금이 아니어도 좋다. 사랑하는 연인이 보이지 않는가? 굳은 의지로 사랑을 믿고 관철하려는 연인들이 있다.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믿고 한 걸음 물러서 버티고 서 지켜보려는 연인이 있다. 굳이 <대장금>의 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그 장면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그 노래에는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공감했기에 박완규는 1위였다.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너무 단편적이지 않았을까?

스스로 최고라 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있어 오만이 아니다. 아니 자동차를 생산하는 입장이라면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에 대해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고도 아닌데 그 가치보다 한참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사기다. 최고라 여기지 않고서 무대에 오른다면 마찬가지다. 대중의 시간이란 그렇게 싸구려가 아니다. 그래서 아티스트 자신도 싸구려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과 그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다. 박완규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 그만의 겸허함일 것이다.

확실히 <나는 가수다>를 보고 나면 필자 자신의 귀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느낀다. 한 번도 순위를 맞춰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말한다. '결과야 어떻든 이 노래는 내게 있어 1위'라고. 어쩔 수 없이 듣는 것은 필자 자신이니까. 부르는 것은 가수 자신일 것이다. 필자의 마음과는 같지 않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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