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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9 09:13

난폭한 로맨스 "꿈으로부터 배반당한 이들의 눈물, 스릴러와 페이소스가 있다."

스릴러의 한 전형이 로맨틱코미디의 가벼움 속에 유쾌하게 가지를 뻗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세상에 가장 아픈 짝사랑이 바로 꿈에 대한 짝사랑이다. 사실 배신도 아니다. 멋대로 사랑한 것일 뿐. 멋대로 꿈을 꾸고 멋대로 꿈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 어느새 멈춰 돌이켰을 때 남는 것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꿈으로부터 거부당한 자신 뿐. 멋대로 사랑하고 멋대로 배신감을 느낀다.

아마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25년이라는 시간으로부터 배반당했다. 25년이라는 이제껏 살아온 시간들로부터 거부당했다. 모든 것을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실패와 좌절 뿐. 스스로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리고 그는 선택했다. 마지막 락커룸을 비우고 떠나는 자리에 서러운 눈물 한 방울 없다면 그것이 더 안타까운 비극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락커룸에서 홀로 짐을 정리하며 눈물을 짓고 마는 진동수(오만석 분)와 그런 그를 수고했다며 배웅해주는 기자 고재효(이희준 분), 그러고 보니 고재효 역시 중학교 시절 야구를 했었다 한다. 그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끝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도 결코 야구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또한 보다 일찍 절망하고 좌절했었을까? FA계약을 마치고 모두의 관심 속에 걸어가고 있는 박무열(이동욱 분)을 보는 순간 진동수의 마음과 고재효의 마음은 한 가지였을 것이다. 상실감. 배신감. 무력감.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런 점에서 꽃뱀 유미진과의 에피소드는 의미심장하다. 그녀 또한 사랑을 했을 터다. 연기를 사랑하고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했다. 그러나 역시 그녀 또한 배신당했다. 거부당했다. 비뚤어진다. 도저히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사랑에 안달하고 집착하다가 어느 순간 좌절하고 절망하여 엇나가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던 시절에는 그녀도 아름다웠을 텐데. 그러나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단지 질투와 증오, 원망만이 남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단서였을까? 드라마는 묘하게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다. 워낙에 가벼운 코미디라 간과하기 쉬운데 드라마의 기둥줄거리는 스릴러다. 유명프로야구선수를 지속적으로 협박하고 위험으로 내모는 미지의 인물과 그를 추적하는 주인공과 주위의 인물들. 김동아(임주은 분)는 그런 점에서 주인공을 돕은 상당히 특이한 정신세계를 갖는 탐정의 역할을 맡는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지식과 그에 따른 방대한 데이터,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로지 집에서 취미생활만을 즐긴다는 점에서 여러 추리물들에 등장하는 탐정들의 전범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직관에 대해 이성과 논리를 맡는 것이 실장 김태한(강동호 분)이다. 유은재(이시영 분)은 박무열의 가장 가까이에서 사건과 부딪히는 역할을 맡는다. 하나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있고, 그로부터 가지를 뻗듯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더해지며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꽃뱀 유미진 역시 협박범을 찾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야구를 그만두는 진동수의 모습에 맞춰 꿈으로부터 배반당한 비극적 군상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고재효가 야구를 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도 바로 그래서다.

다만 아쉽다면 과연 박무열만이 손에 굳은살마저 벗겨지도록 연습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진동수는 아니었을까? 유미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노력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배신당한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스스로 배신한 것이다. 노력해도 안되니까 배신당했다 여기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니까 거부당했다 여기고 배신감마저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해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새 박무열의 헤진 손바닥에 눈이 가고 마는 유미진의 순수를 본다. 그녀 또한 그렇게 손이 헤지도록 달려들던 때가 있었기에. 손이 헤지도록 노력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손을 보더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의외로 흥미롭다. 과연 협박범은 누구인가? 지금에 와서는 모두가 의심스럽다. 솔직히 지금 당장 의심스러운 것은 가정부(이보희 분)와 이보희 뿐이다. 아니 오수영(황세희 분) 또한 용의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쉽게 드러내지 않는 대신 드라마는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를 통해 조금씩 실체에 접근하도록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로맨틱코미디라는 원래의 장르에 어울리게 유은재와 박무열의 감정도 무르익어갈 것이다.

역시 남자로 의식하는 게 먼저였다. 원수와도 같은 레드 드리머지의 선수라는 판단 이전에, 자신이 경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자각 이전에, 그 전에 먼저 박무열을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인식해야 했다. 남자로서 인식하고 느껴야 했다. 남자로 보이는 순간 유은재에게 혼란이 찾아온다. 과연 사랑일까? 그냥 단지 혼란이기 쉽다. 이제까지 남자로 보이지 않던 누군가가 갑자기 남자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자연스런 이끌림이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발전될 것인가? 박무열은 현재 유은재를 전혀 여자로 보고 있지 않다. 그를 위한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주 단위로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더 좋을 뻔했다. 한 주에 하나의 에피소드, 아니면 한 회당 하나의 에피소드,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되며 중심줄거리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더욱 드라마가 의도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을 텐데. 아니 이 또한 의도한 바인지도 모르겟다. 조금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상당히 재미있어질지 모르겠다.

부족하던 격정이 채워졌다. 유은재 혼자 가볍다. 유은재 혼자 생각없이 고민도 없다. 모두가 심각하다. 모두가 격정을 안고 있다. 그래서 코미디는 유은재를 중심으로 흐른다. 스릴러는 심각한 박무열을 중심으로 흐른다. 그 접점을 찾은 느낌이다. 지켜본다. 전혀 뜻밖에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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