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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7 10:22

빛과 그림자 "단지 장철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모순과 비극을 보다."

어째서 강기태는 단지 장철환만을 탓하며 원망할 수밖에 없는가?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뭐랄까... 어떤 슬픔을 느끼게 된다. 과연 강기태(안재욱 분)가 겪고 있는 모든 부조리한 현실이라는 것이 오로지 장철환(전광렬 분)이라는 한 개인의 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조명국(이종원 분)의 배신과 차수혁(이필모 분)의 동조와 노상택(안길강 분)의 폭력, 그러나 과연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힘은 어디로부터 나왔겠는가?

당장 비서실의 장철환과 중앙정보부의 김부장(김병기 분)이 대립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권력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더 큰 권력을 손에 넣고 그것을 휘두르기 위해서. 그리고 그 권력은 바로 특정인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조명국과 노상택의 힘이 장철환으로부터 나오듯 장철환의 힘 또한 바로 그 특정인으로부터 나왔다. 김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식물이 서로 햇빛을 탐하여 다투듯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들은 그렇게 권력을 탐하여 다툰다.

과연 그 권력의 비호 없이 장철환이 그처럼 무도한 일들을 벌일 수 있을까? 노상택이 장철환의 배경을 믿고 조직폭력배 조태수(김뢰하 분)을 끌어들여 송미진(이휘향 분)을 공격하려 하듯, 장철환 역시 그의 뒤에 그 권력이 존재하고 있기에 심지어 국가공무원마저 불러 폭행하고 법 위에 뜻을 두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 수 있는 이유부터가 바로 그 권력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이었다. 권력을 위해 연예계를 손에 넣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그같은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강기태는 그러한 현실과 모순들에 대해 장철환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 한다. 물론 강기태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러나 노상택의 뒤에 도사린 장철환의 권력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만 신정구(성지루 분)처럼 그는 아예 그러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든다. 강기태의 비극이라면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려 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 들지는 않는 점이랄까?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면 그러한 모순들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것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노력들이 없다. 과연 그러고서도 강기태는 노상택과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막말로 노상택이 백주대낮에 강기태에게 칼침을 놓아도 장철환은 경찰을 이용해 그것을 무마할 힘을 가지고 있다. 언론조차 그 사실을 크게 보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약소한 쇼단의 단장 따위 어디서 죽어나가든 국민의 관심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거기에 강기태의 아버지 강만식이나 신정구가 그랬던 것처럼 빨갱이의 딱지까지 씌우고 나면 오히려 노상택은 영웅이 되어 추앙받게 될 것이다. 그만한 힘이 당시의 권력을 등에 업은 장철환에게는 있었다. 역시 강기태 또한 송미진을 통해서 중앙정보부의 김부장과 통하게 되지 않겠는가?

아마 중앙정보부 김부장의 이름은 재규였을 것이다. 역사대로라면 그렇다. 중앙정보부 역사상 김씨성을 가진 부장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러나 그 가운데 70년대에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한 사람은 김재규 한 사람 뿐이다. 외모로 보았을 때 혹시 김형욱이 아닌가 했지만 당장 유신이라는 말에서부터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이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연도를 특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김재규가 중정부장으로 있다면 그것은 얼추 1977년 이후가 될 것이다.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한 것이 1976년 12월이었다. 다만 문제가 그렇다면 장철환의 대사에서 암시도니 대마초파동과 가요정화운동과 시기가 맞지 않게 된다.

대마초파동이 있었던 것이 1975년, 그리고 상당수 음악인들이 대마초와 관련해 구속되고 활동이 정지된 상황에 그것을 이용해 가요정화운동이라는 정권차원의 캠페인이 벌어진다. 한 마디로 권력의 입맛에 맞게 대중가요를 길들이겠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암흑기였다. 그렇다면 장철환의 대사에서 아직 가요정화운동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 이후에나 중앙정보부장이 되는 김재규가 등장하는 것이 당시 상황에 옳은가? 그렇다면 장철환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보부의 김부장 또한 허구의 인물이라는 뜻이었을까? 김재규와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차씨성을 쓰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장철환은 강기태를 만날 일이 없다. 역시 <빛과 그림자>는 허구의 드라마다.

아무튼 중앙정보부장이 김재규를 모델로 하고 있다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강기태에게 더할나위 없는 선택이 되어 줄 수 있다. 일단 김재규는 유신을 종식시킨 당사자다. 뿐만 아니라 당시 김재규에 대한 주위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유신을 끝내는 그 순간까지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 있으며 실세로 불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역시나 '실장'에 밀려 소외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충분히 강기태의 배경이 되어 줄 만도 하다. 명분과 실질을 모두 줄 수 있는 배경이다.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80년대 다시 다른 인물들과 강기태의 운명을 가르게 되리라.

과연 강기태가 시대를 자각하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드라마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시대의 모순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 보려 하지 않았다. 그 모순을 헤집고 진실을 들추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도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라 말한다. 그 아랫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런 일들이 저질러졌다고 말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권력은 잘못이 없었다. 아랫사람이 잘못한 것이었다. 실명조차 나오지 않은 누군가 대신 장철환이 강기태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차수혁은 이정애를 위해 장철환을 저버리고 뛰쳐나오고 만다. 거기에는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양심도 크게 자리했다. 차라리 권력의 명령을 받들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라 했다면 따랐으련만 여자를 골라 바치는 일을 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다.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일에서는 비뚤어진 우월감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은 자신과 같은 이가 할 일이 아니다. 이정애는 그 빌미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차수혁은 근본적으로 나약한 지식인의 모범과 같은 인물이다. 충동적으로 결정은 내려도 그것을 밀고나갈 힘은 없다. 그런 힘이 있다면 그는 처음부터 강만식을 배신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무도해지는 노상택의 폭력과 더욱 궁지로 몰려가는 강기태, 차라리 무능해서 버러지처럼 바닥을 전전했으면 좋으련만 불경한 자가 감히 능력까지 지녔다. 조태수라고 하는 폭력과 마주한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 송미진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무도한 시대는 무도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과연 강기태에게 그런 운이 찾아올까?

어쨌거나 차수혁이 자신을 저버리고 떠나니 오히려 분노하여 이정애를 탐하려는 장철환의 모습에서 권력의 실체를 본다. 권력이란 무오한 것이다. 오류가 없는 것이다. 없어야 한다. 자신이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자신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그래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 화를 내고 더 노골적이 된다. 요즘도 닮은 모습을 본다.

어쩌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모순이 가득한 시대. 그러나 그것이 바로 불과 얼마전까지의 현실이었다는 점이 비애를 느끼게 만든다. 그런 비애 속에 당시의 낭만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런 시대에조차 아름답다. 아름답게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비극이면서도 희극인 이유다. 사람은 그렇게 웃는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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