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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7 08:52

브레인 "이강훈, 마침내 장유진이 아닌 윤지혜를 선택하다!"

대미를 위한 마무리 수순, 그러나 마지막 숨은 반전을 예감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결국 이강훈(신하균 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더욱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였다. 그에게 기대며 그래서 더욱 그가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상대다.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하더라도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가출...

하기는 문제다. 그는 이미 장유진(김수현 분)에게서 어머니를 느껴버렸다. 장유진의 딸 루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다. 더구나 이강훈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후회와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장유진이 지금보다 더 비참한 상황이라면 보상심리에서라도 장유진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의 그녀에게서는 그런 감정까지 갖기란 힘들다.

그에 반해 감기에 걸려 앓아 누운 윤지혜의 모습은 차라리 루비와 닮아 있지 않은가?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항상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항상 그의 관심을 바라면서 그에게 기대고 응석을 부려 온다. 그런 그녀에게 유독 가혹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 또한 마음놓고 그녀에게 응석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욕설도 때로 애정표현일 수 있다. 폭력이 때로 스킨십이 된다. 사람의 거리는 악의마저 지극한 애정으로 바꾼다. 믿음이다. 그래도 좋다고 하는 믿음. 전혀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리라는 믿음. 그렇더라도 서로의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믿음이 윤지혜에 대해서는 있다. 그에 비하면 장유진은 아직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이강훈은 역시 자신이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자기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이끌리는 타입일 터다.

통쾌한 복수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다. 누군가와 달리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이 완벽하다. 이제는 이강훈이 김상철(정진영 분)을 아래로 내려다 본다. 더 이상 그를 의식할 일도 증오할 일도 없다. 더 이상 그가 김상철의 위에 선 순간 그는 더욱 안달할 일도 발버둥칠 일도 없다. 이제는 여유를 부려도 좋다. 고재학(이성민 분) 과장이 애써 언론을 통해 이강훈을 위한 보도를 내보내도 오히려 필요없다며 거만을 떨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러한 자만을 보여준다.

자만이란 나쁜 것이 아니다. 자만의 다른 말이 자존이다. 충분한 실력이 있고 근거가 있다면 자만이야 말로 여유의 근원이 된다. 어떻게 해도 자신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그토록 의식하고 경계하던 서준석(조동혁 분)에게까지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로 나타난다. 물론 서준석이 연구한 논문이 저명한 학회지에 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결코 편하지만은 않다. 그는 결국 스스로 자만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타입이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이를 끌어올리고, 어느새 끌어올려진 상대로 인해 더욱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래서 더욱 그에게는 윤지혜와 같이 편하게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할 것이다. 완벽한 우위에서 보살필 수 잇는 대상이 필요하다.

아무튼 역시 의학드라마에 있어 가장 감동적인 것은 환자 앞에서 의사로 돌아가는 겸허함과 철두철미함일 것이다. 필자가 SBS의 새 수목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에 대해 갖는 불만이기도 하다. 그토록 서로 갈등하고 질투하고 미워했음에도 정작 그가 환자이고 의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동안에는 다시 의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수술이 있음에도 혹시나 걱정에 소식을 묻고 이강훈이라면 문제 없을 것이라며 마음을 놓는다. 고재학도 결국은 의사였다. 병원내 정치야 어찌되었든 박인범(박철호 분) 부원장 역시 의사로서 환자인 김상철의 수술을 지켜본다. 그리고 역설처럼 김상철은 환자가 되어 자신의 뇌를 본다.

의사로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였다. 다시 환자로 돌아가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뇌를 감동으로 바라본다.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암에 걸려 수술을 필요로 하는 어떤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영혼이며 자신의 양심이다. 온갖 기억이 그 순간 뇌와 함께 스친다. 의사가 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의학드라마에서 거의 빠짐없이 의사가 환자가 되는 순간이 묘사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 순간의 감동이 사라진다면 환자란 단지 대상이 되고 수단이 될 뿐이다. 생명에 대한 무거움을 간직할 때 그는 의사가 된다.

필자가 의사라는 직업에 항상 감동과 존경을 느끼는 이유다.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의사야 말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다. 이강훈도 이미 한 사람의 환자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실수일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일수도 있다. 아니면 불가항력적인 다른 이유일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다시 없을 명의라 할지라도 자신의 손 아래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의사로서의 숙명이라 할 것이다. 그같은 죽음을 딛고서 그들은 의사가 되고 의사를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 환자와 마주하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사람이 죽음을 느끼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누구일까? 물론 성직자도 있다. 가족도 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열망이 자신을 치료하고 살려줄 의사를 찾게 된다. 의사조차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는 절망조차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의사는 항상 죽음을 옆에 달고 산다. 때로 그 죽음에 상처입고, 때로 아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모되어 가면서도,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죽음과 마주하며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싸워나간다. 서준석처럼.

서준석이 다시 의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환자인 김상철을 살리기 위한 수술실에서였다. 김상철을 살리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가운데 어느새 서준석은 수술에 대한 공포를 잊는다. 자신으로 인한 죽음마저 잊는다. 아니 잊은 것이 아니었다. 잊지는 않되 다만 물러서지는 않는다. 하나의 죽음을 딛고 다시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자리에 선다. 그리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하나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다시 하나의 죽음과 싸워 한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그는 의사다.

반전을 예감한다. 아무리 마지막회를 앞두고 있지만 너무 풀려 있다. 너무 잘 풀리고 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김상철이 살아나고, 김상철의 수술을 계기로 서준석 역시 의사로서 돌아오고, 김상철을 딛고 이겨낸 이강훈은 자존을 얻어냈다. 이제는 사랑마저 이루려 한다.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롭다. 이럴 때 반전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상철이 자신을 진료한 안과의에 부탁한 것과 이강훈의 예상을 벗어난 김상철의 눈상태가 그 단서가 될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다. 대미를 위해 거스르지 않는 수준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반전일 것이다. 무엇일까?

동승만(이승주 분)은 역시 제자리를 잘 찾아갔다. 이강훈과 비슷한 부류라 생각했을 테지만 정작 그와 가장 가까운 것은 고재학이었다. 그에게는 야심과 출세애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실력이 없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 자존이 없는 야심은 단지 욕망에 불과하다. 자존과 자아를 위한 치열함이 없는 열망이란 단지 욕심에 불과하다. 그를 위해 고재학이 있다. 조대식(심형탁 분)이 이강훈에 이끌리는 이유와도 같다. 그렇게 정리된다. 비슷하지만 다르고, 전혀 다르지만 비슷하다.

여봉구(권세인 분)와 이하연(김가은 분)의 러브라인은 조금 뜬금없다. 역시 이강훈 드라마의 희생양일 것이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가까워졌는가? 양범준(곽승남 분)과의 삼각관계조차 소리소문없이 정리되었다. 조금은 더 아기자기한 러브스토리로 꾸며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주변의 이야기는 철저히 죽어버렸다. 지금에 와서 두 사람이 잘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잘된 일인가 그다지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다만 이하연이 매력적이기는 하다.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는 다스베이더를 베고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만났다. 그리고 그 순간 제국의 황제가 있었다. 이강훈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김상철을 죽였다. 서준석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을 죽였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의사로서 김상철을 마주한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이강훈에게는 더 이상 조교수니 교수니 하는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의사로서의 만족, 의사가 된 자신의 추구일 것이다. 그의 의사로서의 삶은 이제 막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아버지를 죽인 자궁에서 이제 그는 갓 태어났을 뿐이다. 서준석 역시 죄책감 뒤에 숨어 있던 의사로서의 사명을 되찾고 의사로서의 가혹한 숙명에 자신을 맡기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이제 곧 끝난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들의 삶의 끝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의사일 것이고 의사로서 살아갈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가 있을 것이다. 굴곡진 위기와 고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성취와 만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강훈은 성장했고 의사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모순과 격정 가운데 그는 의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사랑도 이루었다. 이강훈의 드라마다. 드라마는 그래서 일단 여기에서 끝이 난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혹시나 마지막 잊지 못할 일격을 예감하며. 어떤 멋진 마무리일까? 아쉬움이 있어 향기는 더욱 진하다.

조금 갑작스런 느낌도 있다. 너무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정리되려 하고 있다. 이강훈에게만 집중하는 사이 모르는 곳에서 모든 일들이 끝나버린 느낌일까? 역시 조율에 실패한 느낌이다. 작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이강훈이 커버린 탓이다. 신하균의 힘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이강훈을 제외하고는 휑한 느낌이다. 마치 고기집 가서 고기가 너무 맛있는 나머지 다른 것은 아예 손도 대지 않고 나온 뒤의 허전함일 것이다. 밥도 야채도 밑반찬도 모두 필요한 것이었는데.

이강훈의 드라마다. 이 한 마디의 이 드라마의 명암이 들어 있다. 이강훈은 너무 맛있는 고기다. 신선하고 연하고 진하다. 그러나 고기가 너무 맛있는 나머지 다른 것들이 너무 허술하다. 고기만 먹어야 한다. 물론 고기는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맛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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