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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6 08:20

나는 가수다 "박완규의 '하망연', 김광석의 '다시부르기'를 듣다."

전혀 알려지지 않는 보물을 찾아 나선다. 놀랍고 즐겁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먼저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아야겠다. 분명 김광석이 리메이크한 '이등병의 편지'의 작곡자는 김현성이 맞다. 그러나 음반으로 취입하여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는 다름아닌 전인권이었다. 1990년 한겨레신문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겨레의 노래'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비록 한 장의 음반만을 내놓은 단발성 기획이었지만 김민기의 주도 아래 전인권은 이 노래를 음반에 싣게 된다.

물론 김현성 자신이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할 테니 자신의 무대에서 직접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곡자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역시 음반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인권을 원곡자라 불렀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원곡자를 이야기할 때 후자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자 역시 전인권을 원곡자로 알고 있다.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비유하자면 윤종신이 말한 것처럼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는 마치 이미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예비역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부른 듯한 그런 느낌이다. 아련하고 그래서 어쩐지 그립기까지 하다. 곡을 쓴 김현성 자신도 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돌아서며 느낀 소회를 노래에 담았다 하니 어쩌면 이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전인권이 부른 원곡은 전인권의 야수성 그대로 당장 입영소로 출발해야 하는 당사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담아내고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적우는 전인권의 그것에 가깝다.

김광석의 그것과 같은 섬세한 감성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신효범이 묻고 있었지만 그러나 전인권의 원곡에서도 그런 섬세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원초적이며 직설적인 감정만이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2년이라는 젊음의 소중한 시간을 군대라는 낯설면서도 두려운 공간에 갇혀 보내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 단지 편지와 전화만으로 그 소식을 들으며, 그 두려운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그런데 섬세한 감정따위 느낄 여지가 있을까? 필자 역시 부모님과 헤어져 입영소로 들어설 때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적우는 그런 처절함을 닮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전인권의 그것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다. 전인권은 역시 남자이다 보니 자기 이야기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초조, 공포다. 그에 비하면 적우의 버전은 그런 남자를 떠나보내는 여자의 심정이다. 친구와도 다르다. 짝사랑하던 남자를 군대에 보낸 경험이 있다고 하던가? 사랑하는 이를 군대라는 이질적 공간으로 떠나보내는데, 그리고 오랜 시간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될 텐데 경우는 다르지만 역시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추억이지만 맞는 그 순간은 두려움이고 불안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김광석의 리메이크가 의미있는 것은, '이등병의 편지'가 수록된 김광석의 리메이크앨범 '다시부르기'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의 잊혀졌던 명곡들을 다시 보편적인 대중의 관심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일 것이다. 김광석만의 대중의 원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보편의 문법에 의해 노래들은 다시 대중들에 들리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김광석의 히트곡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부르기'를 통해 재해석되어 대중에 알려진 리메이크곡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김광석의 노래였고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그 노래들을 김광석을 통해서만 기억한다.

과연 '하망연'이라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설명을 들으니 어렴풋 기억이 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하망연'이 삽입된 장면에서는 TV속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지 OST까지 주의깊게 듣고 있지는 못했다. TV속 영상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지 OST를 하나의 음악으로서 따로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박완규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절로 귀가 끌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구나.

다시 원곡을 들어보아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원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박완규가 부른 버전이 더 인상적으로 들렸다는 것이다. 애절하면서도 관조적이다. 열정적이면서도 절제가 있다. 지켜보는 듯, 그러면서도 어느새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직접 그것을 느끼고 있다. 테이의 말처럼 단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드라마가 머릿속을 스친다.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또렷하게 펼쳐 보인다. 그만큼 박완규가 이 노래에 진심으로 빠져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노래를 또 하나 알았다. 원곡도 좋지만 박완규가 부른 노래도 매우 매혹적이다. 새로운 - 전혀 대중들에 잊혀졌던 노래가 박완규라는 탁월한 보컬에 의해 다시 대중들에 들리고 불려진다. 역시 이와 같은 노래경연프로그램의 의의가 아닐까? 토요일 경쟁방송사에서 하는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2>에서도 어쩌면 잊혀졌던 명곡들을 다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물며 어떤 노래들은 아예 대중들에 들려질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때 기분이 좋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보람을 느낀다. 당장 원곡 '하망연'의 음원을 결제한다. 그리고 박완규가 부른 음원을 기다린다. 두근거린다. 새로운 음반을 기대하며 레코드점을 들락거리던 바로 그 설렘이다. 좋은 노래는 항상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행복하게 만든다.

적우의 '이등병의 편지' 리메이크는 매우 훌륭했다. 적우의 목소리는 이같은 호소력을 필요로 하는 노래에 잘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는 진심이 전달된다. 박완규는 담담하게 마치 읊조리듯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노래'를 들려준다. 쉽지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박완규가 이런 정도의 가수였구나. 새삼 감탄했다. 그는 진정 박완규였다.

거미의 '애인있어요'는 거미만의 감성으로 원곡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고 원곡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로서 그 감정 또한 충실히 싣는다. 수수하지만 굳이 꾸미려 하지 않는 대범함이 있었다. 본격적인 경연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신효범의 '미련한 사랑'역시 그런 점에서 원곡에 충실한 점이 더욱 귀에 들어왔다. 이소라도 말한 바 있지만 가수를 위해 원곡을 훼손해서는 원곡에 미안한 것이다.

김경호와 '걸어서 하늘까지'는 너무 뻔하게 매치되어 흥미가 반감된다. 그래도 김경호는 훌륭한 보컬이다. 제대로 메탈로 편곡해서 달려보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김경호는 댄서가 아닌 록커다. 그것도 메탈지향의 상당히 하드한 음악을 추구하던 음악인이다. 윤민수는 목상태의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관록이 붙은 듯 보이고, 테이는 아직 뭐가 뭔지 보이지 않아 모르겠다. 테이도 그다지 노래 못하는 가수는 아닌데 많이 부족해 보인다. 아직 초반이기 때문이리라.

결국은 '하망연'이었다. 다른 선곡은 어느 정도 예상범위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 노래는 정말 아니었다. 그런 주제에 전혀 기대하지 않게 노래가 좋았다. 박완규가 부른 버전은 더 좋았다. 이리 흥분하는 이유다. 다음주 <나는 가수다>는 기다려 볼 만하겠다. 적우도 신효범도 순위와 전혀 상관없이 마치 소개팅을 기다리는 듯 마냥 설레인다. 멋진 만남이 될 것 같다. 기대한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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