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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01 11:23

무한도전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관계와 기억, '무도팬'이 만들어지는 이유..."

리얼버라이어티의 원조, 리얼버라이어티를 정의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리얼버라이어티의 매력이라면 역시 대본도 세트도 없는 만큼 자연스럽게 멤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결합, 다시 말해 누적된 서사에 의해 확장되어가는 관계에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자연스럽게 그 동안의 관계와 기억들로부터 스스로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이번의 송년특집 '나름 가수다'만 하더라도 그렇다. 길과 하하는 원래 노래 만들고 하는 것이 주업인 음악인이었다. 박명수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려 8집가수다. 그러나 그 밖의 유재석을 필두로 노홍철, 정형돈, 정준하 모두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가만 따져보니 멤버들이 부른 노래들이 적지 않다. 특히 <무한도전>과 관련해서 부른 노래들은 그 자체로 <무한도전>에 대한 기억을 일깨운다. 그 위에 <무한도전>만의 '나름 가수다' 특집이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오로지 <무한도전>만이 가능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렇다면 그동안 띄엄띄엄 <무한도전>을 보아온 시청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무한도전>을 그다지 열심히 보아 온 것이 아닌 터라 음악인으로서 길이, 하하가, 박명수가 부른 노래들을 제외하고 때로 어떤 노래들은 상당히 생소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정형돈이 원래 불렀다는 '사랑의 서약'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고, 유재석이 원곡자인 '삼바의 매력' 역시 상당히 생경하게 느껴진다. 일단 원곡을 알지 못하니 미션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원래 <나는 가수다>에서도 그래서 대중들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은 순위가 낮다.

<무한도전>이 갖는 또 하나의 한계며 매력이다. 아니 그것은 리얼버라이어티가 갖는 근본적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경쟁방송사의 또다른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의 '송년의 밤'이 그런 한 예일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남자의 자격>을 애정을 가지고 시청한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다. 익숙한 얼굴들, 그리운 모습들, 그러면서 한 해 동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서 '송년의 밤'이다. 멤버 개인이 각자의 인연으로 불러온 손님을 제외한 <남자의 자격>의 손님들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기억과 서사 위에 존재한다. 때로 그것이 그렇지 않은 일반의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으로 다가온다.

실제 가끔 <무한도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무한도전>을 성의없이 보아 왔는가를 깨닫게 된다. 분명 나왔던 장면일 텐데. 분명 있었던 장면이기에 지금 그것을 다시 살려보려 하는 것일 텐데. 그러나 전혀 모르겠다. 그런데 한 편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자지러져라 웃는 팬들이 있다. 결국은 길들여짐이다. 기억이며 서사다. 지난번에도 말한 시청자와의 거리다.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시청자와 <무한도전>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자각하며 더욱 밀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특별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무한도전>이 겪었던 위기는 그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무한도전>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때로 너무나 당연하게 나오는 말이며 행동들이 어째서 그렇게 나오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경우에도 그 동안의 누적된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았는가 당황하게 되는 때가 있다. 하기는 관계란 그렇다. 관계가 쌓이면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것이다. 말한 것처럼 여우가 말하는 길들여짐이다. 그리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 등한히 여기게 됨을 뜻한다. 오로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특별해진다. 그러나 과연 공중파의 예능에게 있어 그것은 옳은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본이 따로 없다. 세트가 따로 없다. 상황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연기자들이 자기의 역할을 찾고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처음에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이야기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초창기 <무한도전>은 지금 <남자의 자격>이 그러하듯 미션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한도전>에 있어 미션이란 단지 이제까지의 누적된 관계와 서사를 일깨우는 도구 이상은 아니다. 숙성된다. 켜켜이 기억이 쌓이고, 기억만큼 관계가 누적되며 그 특별함은 더욱 공고해진다. 마니아가 생기고 그들에 의해 '무한도전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들만의 언어까지 만들어진다. 그렇게 시청자와 프로그램은, 연기자들은, 스텝 또한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때로 딜투도 난다.

얼마나 많은 다양한 관계들이 누적되어 있는가? 얼마나 두텁고 넓은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게 지난 기억 속에서 노래하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을 쌓아간다.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과정이 그렇다. 하나의 기억이 있으면 그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을 쌓아 나가며 관계는 누적되고 깊어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있기에 저렇게 쉬지않고 쏟아져 나오는가?

<무한도전>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남자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다만 <남자의 자격>은 아직 그만한 충분한 동력을 내적으로 축적하고 있지 못하다. 멤버가 바뀌고 이제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강호동이라는 큰 기둥이 사라지고서도 여전히 <1박 2일>스러울 수 있는 것은 <1박 2일>이라고 하는 예능이 그동안 쌓아 온 관계이고 기억일 것이다. 그것이 곧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된다. 시청자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아무튼 아니나 다를까 재미있었다.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제외하고, 다만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웃음으로 바꾸려 하는 연기자들의 노력이 정말 처절하기까지 했다. 전혀 MC다운 진행을 못하고 있는 정재형을 두고서도 웃음으로 만든다. 도저히 진행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정재형의 서툴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그것을 조율하며 <무한도전>의 것으로 만든다. <무한도전>이라는 괴물일 것이다. 기억이란, 그리고 관계란 항성과 같아서 더 복잡하고 더 깊을수록 주위의 것들마저 끌어당겨 버린다. <무한도전>이 <나는 가수다>를 먹어치우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해주다. 흥미롭다.

원조 리얼버라이어티일 것이다. <무한도전>의 역사가 리얼버라이어티의 역사다. 리얼버라이어티의 본질을 <무한도전>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무엇인가?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물론 그런 심각한 고민따위는 없다. 단지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포맷 안에서 최선의 웃음만을 고민할 뿐. 지나고 나니 단지 그랬었구나 말을 더할 뿐이다. <무한도전>이란 이런 프로그램이다.

확실히 느끼게 된다. <무한도전>을 깊이 사랑하는 이른바 '무도팬'과 일반시청자의 거리를. 그리고 때로 <무한도전>은 일반시청자보다 그러한 '팬'들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한도전>에 취해있는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다만 가끔은 거리를 느끼게 된다.

다음주 무대를 기대해 본다. 가장 기대하는 것이 역시 길, 리쌍의 음악을 좋아한다. 정준하의 가사는 디도스의 공격에 준하게 직설적이며 울림이 있다. 서사가 있다. 박명수 또한 상당히 범상하지 않다. 신나기는 하하의 편곡이 무척 신났다. 기다린다. 설레인다.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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