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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28 09:37

브레인 "이강훈의 누명, 김상철에게 빚을 청구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빚을 정산하다."

죄에 쫓기는 이강훈과 김상철의 초함과 절박함, 드라마의 긴박함이 고조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바로 이런 모습들이 이강훈(신하균 분)이라고 하는 캐릭터가 갖는 매력일 것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다. 출세지향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이강훈을 좋아하고 마음속에서부터 지지한다. 어째서일까?

사실 임상시험중이던 CH-PKC를 부적합대상자인 이강훈의 어머니 김순임(송옥숙 분)에게 부정투약한 것은 김상철(정진영 분) 교수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실이다. 저장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것은 김상철과 서준석(조동혁 분) 두 사람 뿐이었고, 그런데도 이강훈은 저장고를 부수지 않고서도 약을 꺼내 처방할 수 있었다. 윤지혜(최정원 분)도 도왔다. 그런데 이강훈은 그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지고 연구팀에서 쫓겨나는 쪽을 선택한다.

이를테면 정산일 것이다. 김상철에게는 빚이 있다. 어머니의 병이 악성 교모세포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치료할 길을 찾기 위해 김상철에게 매달렸을 때 김상철은 어찌되었거나 그를 개인연구원 자격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연구팀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구나 억지인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의 병이 다시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임상시험중인 CH-PKC를 어머니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허용해 주었었다. 그것은 이강훈이 반드시 김상철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다. 그런데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반면 그에게는 또한 김신우(전무송 분) 교수로부터 보내져온 사진을 통해 김상철에게 반드시 받아내야 할 아버지의 목숨에 대한 빚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어찌할까? 이대로 퉁치고 말까?

그래서 정리한 것이다. 그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 상황에서 김상철이 이강훈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고 전처럼 완강한 태도로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차라리 연구를 영영 중단하더라도 이강훈만의 책임이 아닌데 이강훈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 없다. 그랬다면 이강훈으로서는 김상철에 대한 자신의 빚을 영영 갚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강훈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강행했던 투약이었고, 따라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이강훈 자신이 그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그로 인해 김상철은 자신의 중요한 연구를 지킬 수 있었으니 이강훈으로서는 김상철에 대해 할 수 있는 바를 다 한 것이다.

참으로 경우가 분명한 사람이다. 더하고 빼면 0이다. 우수리도 없고 에누리도 없다. 사실 그게 쉬운 것이 아니다. 받으려면 더 받고 싶고, 주려 하면 덜 주고 싶다. 그런데 더하고 빼고 0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받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받으려 나설 수 있다.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다면 받아야 할 빚도 받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면 퉁칠 수는 없는가? 그러기에는 김상철로부터 어떤 사과도 심지어 사실인정조차 받은 적이 없다. 용서를 구해야 용서도 해 줄 수 있다.

어쩌면 김상철로서도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철이 이강훈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기 안에 숨은 가식이 무엇인지 밝혀보려 하지 않았느냐고. 자기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것이냐고. 그러나 이강훈은 모두 끝났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김상철이 이강훈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어쩌면 이강훈에게 보다 매몰차게 대함으로써 이강훈이 보다 쉽게 자신에 대한 증오를 내보일 수 있도록 마음의 짐을 덜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강훈은 김상철 안의 김상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죄책감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냉정히 떠나가고 만다.

김순임이 아들 이강훈을 위해 줄곧 이강훈으로 하여금 오해하도록 거짓말을 해 온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저주이자 복수는 후회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곱씹고 후회하며 고통속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반성조차 할 수 없는 후회라는 것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종양과도 같다. 갈수록 그 덩치를 키우며 인간의 양심을, 그리고 종래에는 인격마저 먹어치워 버린다. 남은 것은 후회마저 할 수 없는 찌꺼기에 불과하다.

김상철의 인격이 바뀌고 있었다. 하긴 이강훈이 그토록 김상철에 대한 증오에 집착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상철이나마 증오하지 못한다면 그는 어머니에 대한 죄악감에 평생을 시달려야 한다. 어머니에 대한 죄를 이강훈은 김상철을 증오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김상철이 아버지만 죽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혼란으로 어머니에 대해 터무니없는 오해만 하지 않았다면. 그러나 그러한 증오로 말미암아 이강훈은 자신의 의사로서의 삶을 당분간 저당잡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

김상철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강훈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바랬을 것이다. 욕해주기를. 바로 앞에서 비난을 퍼부어주기를. 살인자. 위선자. 이중인격자. 그랬다면 오히려 그의 죄책감은 덜어졌을 것이다. 단지 욕하고 비난을 퍼부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으로 조금은 자신의 죄가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강훈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김상철은 이강훈조차 없이 자기 혼자 오랜 죄의 무게를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토록 감당하기 버거워 기억속에서 지워버렸던 그 죄를 다시 일깨우지 않으면 안된다. 쫓기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환자였을 텐데도 화송그룹의 차홍경 회장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고 만 것이 그 때문이었다. 쫓기는 초조감에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듯한 차홍경 회장의 발언이 잔뜩 곤두서 있던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강훈이 찾아와 욕을 퍼붓고 비난을 쏟아내고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든 발길질을 하든 그랬다면 쫓기는 지금의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아주 절묘한 복수였다. 물론 이강훈 자신은 모를 것이다. 이강훈 자신도 지금 후회에 사로잡혀 있을 테니.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머니가 항상 걱정되고 신경쓰였었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다. 솔직히 드러낼 수 없었다. 약해질까봐. 지금의 자신을 지키지 못할까봐. 애써 부여잡고 있는 자신에 대해 놓아버리게 될까봐. 오해는 차라리 그를 위한 변명거리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하던가?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식을 위해 와이셔츠를 빨아서 깨끗하게 다려놓은 그 정성에 후회는 더 깊어진다. 더욱 자신을 모질게 다그칠 수밖에 없다.

아마 김신우 교수가 김상철에게 하려 했던 경고도 그와 비슷한 맥락의 것이 아니었을까? 김신우 쯤 되면 그동안 많은 환자들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환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김신우 자신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환자도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지 않을까? 책임조차 지지 못하는, 반성조차 하지 못하는 후회란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 후회조차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인간은 더이상 자신이 아니게 된다. 단지 한 순간 책임을 피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이강훈에게 김상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낸 것도 결국은 그를 위한 정리의 차원이었을 것이다.

과연 지금의 단계에서 김상철의 후회는 더욱 김상철을 삼키고 파괴할 것인가? 그렇게 부수고 먹어치운 끝에 괴물만을 남겨놓을 것인가? 고재학(이성민 분) 과장의 위기가 혹시나 그런 우려를 가능케 한다. 아직까지는 고재학이 드라마의 가장 주도적인 악역이었다. 고재학의 비중이 작아진다면 이후의 악역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떻게 해도 고재학이 보여주는 어쩌면 귀엽기까지 한 악역을 대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김상철이 악역이 되면 그는 진정 무서운 악역이 될 것이다. 드라마가 너무 어두워진다. 갈수록 폭급해지는 김상철의 모습에서 그런 우려를 본다. 자칫 드라마가 너무 뻔한 선악구도로 가게 될 수 있다.

서준석의 캐릭터가 비로소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곱게 자란 도련님답게 그가 사는 세상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자기가 좋은 게 좋고, 자기에게 옳은 것이 옳다. 병원내 정치의 어두운 그늘따위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윤지혜와의 질척거리는 사랑싸움 역시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는 그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흔들린다. 자신도 모르게 병원내 정치의 어둠에 물들고 마는 자기에게 흔들리고, 윤지혜에 대한 애증으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에 흔들린다. 어느새 병원내 정치의 어둠에 물들어 이강훈으로부터, 더구나 윤지혜로부터 의심받고 오해받고, 그러나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그는 너무 올곧고 순수하다. 윤지혜에 대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강훈을 만나려 수술실을 떠나 있던 윤지혜를 쫓아내고 마는 이유다. 그는 그렇게 자기 자신마저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만다.

서준석 역시 애초의 시놉시스와 상당히 달라진 캐릭터 가운데 하나다. 무언가 아직 보여지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더 악해지던가, 아니면 오히려 더 순수해지던가. 그에게는 이강훈과 같은 회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깔끔하게 악인으로 가거나, 아니면 원래의 순수로 돌아가거나. 지금의 혼란은 오히려 서준석이라는 인간을 좀먹고 그의 인격마저 삼켜버릴 뿐이다. 앞으로 서준석의 캐릭터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한 재미일 것이다.

불쌍하다면 역시 윤지혜일 것이다. 참 타이밍이 안좋았다. 정리하려 했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솔직해지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병원을 나가는 순간까지는 남는 것 없이 깔끔하게 모두 정리하고 나가려 했었다. 그래서 윤지혜에게 데이트도 신청했었다. 하지만 이강훈이 병원을 나서는 순간 그에게는 다른 시간이 닥쳐오고 있었다. 김상철에게 복수해야 한다. 김상철의 위선을 파헤치고, 그가 저지른 죄악을 밝히고, 마침내 그를 지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최소한 김상철과 겨룰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 역시 죄인이다. 죄인으로서 어찌 사사로이 개인적인 감정에 그 기회를 놓칠 수 있을까? 이강훈에게 기대하고 마침내 이강훈에게 바람맞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이강훈만을 바라보며 이강훈에 의해 휘둘리고 마는 캐릭터인 탓이다.

하기는 그래서 윤지혜에 이강훈은 끌리고 마는 것이다. 워낙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다. 항상 스스로를 내몰고 다그치느라 몸도 마음도 모두 한계까지 지쳐 있다.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쉼터가 필요하다. 윤지혜게서 그런 쉴 수 있는 빈 자리를 찾는다. 포근하게 기대어 누울 수 있는 여유를 찾는다. 여기에서 윤지혜가 바뀌어봐야 장유진(김수현 분)의 카피밖에는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윤지혜까 여주인공인 것일지도.

결국 이강훈이 의지하게 되는 것이 재벌집 딸 장유진이었다. 장유진과 장유진의 형부인 선배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 그가 새로 비비게 될 언덕이다. 역시 저렴해졌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유진에게 스스로 먼저 나서서 부탁을 건네고, 선배에게 노골적으로 신세를 지고. 김상철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쫓기고 있는 것이다. 강박이 그의 원칙을 저버리게 만든다. 복수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강훈에게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결국 지치고 지친 이강훈이 쉴 곳으로 윤지혜라고 하는 여주인공이 준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상처투성이가 된 이강훈이 돌아가 기댈 곳은 어쩌면 철없이 보이기까지 하는 순수한 윤지혜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그야말로 의학드라마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려는 분위기다. 점차 인격이 바뀌어가는 김상철과 반비례해서 계속해서 궁지로 내몰리는 고재학, 그리고 김상철에게 복수하려 고재학에게 접근하려는 이강훈, 병원 밖에서 이강훈은 끊임없이 김상철을 자극하며 그와 맞서려 든다. 긴장감이 고조되는데, 그러나 과연 의학드라마로서였을까?

어쩔 수 없는 한국드라마의 특징일 것이다. 의사도 정치를 해야 한다. 경찰도 정치를 하고, 가수도 정치를 하고, 회사원도 정치를 한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정치다. 아니 사랑조차 남녀간에 서로에 대한 호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정치다. 아무래도 인물이나 사건에 비해 관계에 더 집착하다 보니 당연할 것이다. 정치란 바로 그러한 인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물론 잘 만들면 재미있다. 그리고 잘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강훈의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이강훈을 중심으로 한 주위의 관계는 흥미롭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집중케 하는 힘이 있다. 잘 만든 드라마다. 그래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다. 어쩐지 드라마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된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여기까지 방향을 틀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개연성은 충분하다. 주인공 이강훈이 곧 개연성이다. 이강훈의 드라마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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