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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구지원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23 15:00

김영희 PD 퇴출은 상수(上手)는 아니다

 
김영희 PD 퇴출은 상수(上手)는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만들어낸 김영희 PD가 결국 물러나게 되었다. 문제의 시작은 첫번째 경연에서 7등-꼴찌가 된 김건모가 퇴출되지 않고 계속 경연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롯되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몇몇 무리수가 보였는데, 김영희 PD가 현장에서 즉시 룰(rule)을 고쳐가면서까지 김건모를 구제해준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이 때문에 ‘나는 가수다’는 ‘나는 선배다’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었다. 또한 이 문제를 처음 만들어낸 김제동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는 아부성 발언과 이소라의 ‘어우, 나 지금 방송 못 하는데 왜 방송 진행하고 난리야’라는 개인적인 감정이 폭발한 발언도 큰 이슈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현장에서 유일하게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그러나 원래 성격이 그 모양인 박명수가 “만약에 건모형이 그 때 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가장 칭찬을 받게 되었다. 

차근차근 짚어보면 이런 상황은 한국어 문화권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상사중의 하나다. 우선, 룰을 고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화 촬영현장에서 감독들이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흔히 있다. 그 때문에 촬영일수(數)가 기약 없이 늘어나곤 한다. 그럼에도 그 점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하는 기자나 언론인, 평론가를 본 적이 없다. 한국 드라마도 그 때 그 때 시청자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대본을 쓰지 않는가. 즉, 이런 식의 무원칙적인 행위는 그렇게 드물지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김영희 PD의 인간적인 측면이다. 이 사람은 냉정하거나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최소한 박명수만큼은 아니다.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이 가장 놀랐던 것은, 김영희 PD가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에 대해 가진 거부감이었다. 김영희 PD는 오락적인 측면을 위해서 ‘오디션’과 ‘개그맨’을 투입시켜 놓았지만, 실은 그 포맷 자체에 신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수들이 ‘김건모 탈락’이라는 현실에 당황해하자, 자신이 앞장 서 (죄책감에 빠진) 가수들을 구제해줬던 것이다. 세번째로 고려해야할 측면은, 경연에 참가한 가수들 모두 누군가는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윤도현의 말대로 ‘처음 그런 일이 벌어지자’ 모두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들 ‘김건모 구제’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김건모가 아니라 정엽이나 박정현이었어도 다른 가수들이 그렇게 나왔겠느냐’는 세간(世間)의 비난도 일리는 있다. 

둘째, 김제동과 이소라의 발언에 대한 시청자의 격렬한 분노가 있다. 이 점은, (대중의 시선과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둘의 발언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 두 사람의 반응을 담아낸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특성상 옳은 편집이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시청자들에게 그런 감정을 이끌어낸 것도 프로그램의 이슈화를 위해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두 사람이 김건모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가까운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의 그런 반응 또한 이해가 가고, 시청자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시청자들은 그렇게 보아넘길만큼 너그럽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셋째, 김건모가 노래 끝난 후 립스틱을 바르는 퍼포먼스-프로그램에서는 ‘이벤트’라고 불렀다-에 대한 논란이 있다. 김건모 자신은 심각한 사람이 아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만약 이 퍼포먼스가 공연이나 그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에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거부감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결국 T.P.O. management에 실패했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유머감각이 떨어져서 실패한 퍼포먼스라고 보여진다. 만약 영어권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보였다면, 결코 이런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 김영희 PD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현실이 있다. 이것은 MBC의 실책으로 보인다. 김영희 PD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인데, 그를 뿌리채 뽑아내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김영희 PD가 나름대로 잘 정리해서 시즌 1을 마무리지을수 있게 해주는게 도리였다. 지금 김영희 PD를 낚아채어 버리면, 현장에 있는 7명의 가수들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김영희 PD는 사과에 치중하지 못한 인터뷰를 여러 번 함으로써 이슈를 계속 불타오르게 했고, MBC는 김영희 PD를 솎아냄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불타고 있는 이슈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었다. 김영희 PD는 지금까지 이루어낸 것에 비해, 이번 한 번의 실수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제대로 굴러가는 회사라면 단죄나 응징보다는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MBC는 오늘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녹화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출연진과 제작진이 합의해서 규칙을 변경했다고 하더라도, ‘7위 득표자 탈락’은 시청자와의 약속이었다.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물어 김 PD를 교체한다. 한 번의 예외는 두 번, 세 번의 예외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인기 있는 드라마는 원래보다 늘리고, 인기 없는 드라마는 원래 방영분의 반도 방영이 안 되도 끝내왔던 방송국이 (능력 있는) 자기 직원은 여론을 앞세워 이렇게 쉽게 잘라낼 수 있는 것인가. MBC의 처신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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