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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29 09:14

천일의 약속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라."

영원한 멜로드라마의 주제, 강수정의 입을 빌어 말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쩌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박지형(김래원 분)과 이서연(수애 분) 두 사람이지만, 정작 작가가 자신을 이입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박지형의 어머니 강수정(김해숙 분)일 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아마 이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아니 모든 멜로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라.

어쩌면 드라마 가운데서도 드라마가 끝나고 난 이후의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토록 죽고 못 살겠어서 어렵사리 사랑을 이루고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 사랑이 식고 마음이 멀어져 헤어지고 말았다더라. 이서연이 다니는 출판사 직원들의 농담처럼 그렇게 목숨을 건 사랑 끝에 주위의 반대마저 무릎쓰고 결혼까지 했는데 서로가 바람이 나서 안좋게 헤어지고 말았다.

하기는 결혼하기까지는 누구나 진실된 사랑일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과 확신이 있기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렇게 결혼을 하고 모두가 행복한가? 모두가 처음 약속처럼 행복하게 오래도록 함께 사는가? 당장 가정법원에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갈라서는 부부도 그렇게 만나 사랑을 했을 터였다. 법정에서 서로 이혼여부를 두고 다투는 부부에게도 그토록 뜨겁고 다정하던 시절이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까지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설사 이혼하거나 이혼하고 나서가 나오더라도 결국은 그 또한 또다른 영원한 사랑의 시작일 뿐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라. 그렇게 변치 않는 사랑으로 오래도록 행복하라. 옛날이야기의 마지막 귀절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그러한 믿음을 다짐처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멜로인 것이다. 꿈결같은 사랑이 실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서연이 병을 앓는 이유였다. 아니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병이란 멜로의 가장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랑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연인은 죽어가지만 그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또다른 연인은 그마저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러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고통까지도 이겨가며 사람을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리라고 믿고자 한다.

"그렇지만 너 끝까지 최선을 다해. 지금 마음 그대로 변치 말고, 그 아이 슬프게 만들지 마. 담당의사 지시 철저히 따르게 하고, 약 정확한 시간에 먹게 하고, 같이 시간 많이 보내주고, 사랑하고, 사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그 마음이 아니면 너도 그 아이도 힘들어서 안 돼."

한때 멜로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병이다시피 했던 백혈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은 암이라 해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한 순간에 죽음을 맞는 것에 비해 오래도록 그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로 인한 히스테리를 겪어야 하고,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일상의 불편함까지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자식간에도 오랜 병에는 효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지간한 각오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랑을 하고, 죽음을 앞두고 온갖 고통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끝끝내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어떤 장애에도 영원을 향하는 그들의 사랑을 말릴 수 없다.

이서연이 병에 걸리고, 박지형이 그런 이서연과 결혼하려 하고, 그런 박지형과 이지형을 아버지 박창주(임채무 분)과 노향기(정유미 분)의 어머니 오현아(이미숙 분)가 저주하며 막발을 퍼붓는 이유였다. 드라마를 멜로라 부르는 이유다.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믿고 싶은 판타지를 보여주려 한다. 이런 사랑도 있다. 이런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도 있다. 대개는 바보들이다. 미쳤다고 말한다. 정상이 아니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사랑이다. 멜로란 사랑의 판타지이며 동화다.

아무튼 역시 드라마의 내용을 요약하는 한 마디였을 것이다.

"당신은 내가 치매였으면 도망갔을 거야, 아냐? 난 도망 못 갔을 것 같아. 지형이가 날 닮았나 봐."
"그걸 이제 알아?"

박창주가 박지형의 결혼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들 박지형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정하지도 못한다. 박지형만이 아닌 박지형과 결혼하게 될 이서연조차 그저 밉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어째서 하필 자기 자신이 그런 경우인가 불만일 뿐. 여전히 그것이 어리석고 미친 짓에 불과하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박지형이 이제껏 욕을 들어 온 이유였다. 이해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다. 노향기와 노향기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의리로써,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써 이서연이 아닌 그들을 선택하여 노향기와 결혼하려 했다. 하지만 이서연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자 그는 모든 책임을 감수하며 이서연에게로 돌아선다. 노향기와 결혼하려 한 것도, 노향기와 파혼하고 이서연과 결혼하려는 것도 모두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모한 사랑도 어딘가에는 있는 것이었다. 다른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만은 진실하고 싶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결국은 이서연의 웃는 모습일 것이다. 이서연이 행복해 하는 박지형의 비상식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가장 절망해 있던 이가 그로 인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더 이상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기까지 불과 몇 년. 그러나 그 시간이 짧기에 영원처럼 절박한 진심이 있다.

바보같은 드라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이 바보같은 남자다. 바보같은 여자다. 아니 그보다 바보같은 부모일 것이다. 자식으로부터 거부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자식이 오로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니 자기 인생이라며 받아들이고자 한다.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리고 부모로써 한 마디 진실한 조언을 곁들인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라. 이보다 더 갚진 축하의 말이 어디 있겠는가? 절망하여 울고, 안타까워 소리지르면서도, 자식과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 또한 진실하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과 같을 수 있다면.

박지형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다. 역시 박지형의 캐릭터는 이서연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서연의 비극이 멜로를 이끌어가는 핵심이기에 그 비극의 중심에 서 있는 이서연이 박지형의 캐릭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이서연이 고통스러워 할 때는 그녀에게 닥친 재앙의 하나로써, 이서연이 행복해 할 때에는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축복으로서. 다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고난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조금은 두려워진다.

대사의 깊이가 다르다. 물론 박지형을 만나 노향기가 늘어놓는 어미새의 이야기처럼 뜬금없이 장황한 것도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한 마디 한 마디가 핵심을 찌르며 짙은 여운으로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남는다. 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반세기 가까이를 오로지 드라마만을 써 온 원로작가의 연륜을 느끼게 된다. 과연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녀는 김수현이었다.

악역이 필요 없는 드라마다. 이미 알츠하이머라는 병 자체가 악역으로써 충분히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을 비극으로 몰아넣고, 혼란과 갈등과 고통 속에 내몰고 만다. 병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절망으로 인해 드러나게 될 인간의 본성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알츠하이머라고 하는 최악의 병을 앞에 두고서도 인간은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제 결혼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박지형과 노향기의 집안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차례다. 아마 이서연의 고모도 이 사실을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이서연 남매를 저버린 엄마도. 드라마란 사람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란 사람이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재미있다. 흥미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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