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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25 09:29

뿌리깊은 나무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세상, 정기준과 밀본의 우려..."

과연 세종의 한글은 조선과 조선사회, 조선의 백성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확실히 드라마가 세종(한석규 분)과 한글을 위한 드라마라는 것을 알겠다. 정기준(윤제문 분)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현실이 아니다. 성리학은 모든 백성이 성리학의 가치를 배우고 몸에 익혀 실천하는 것을 그 이상으로 삼고 있다. 어째서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무려 2만 개가 넘는 서당을 만들고 농민의 자식들을 가르치려 했을까?

과연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다고 백성들은 사대부로부터 독립해 홀로 설 수 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을 생산하는 사대부에 더욱 종속될 것인가? 오히려 조선 전기에 비해 백성들이 더욱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조선후기 조선의 신분질서는 완고하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대부의 예법이 점차 백성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백성들 스스로 스스로의 신분을 깨닫고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분수와 주제를 스스로 알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거의 사대부에 의해 의병이 조직되고 있었다. 대부분 의병에 참가한 이들도 토호인 사대부를 따라나선 이들이거나, 원래 관군이었다가 패퇴하면서 흩어졌던 이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상민 출신으로 의병을 일으킨 경우는 따로 도적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왕명도 따르지 않고 오로지 자기 고을만을 지키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에 비해 조선후기 일본의 침략에 대항해 일어난 의병 가운데서는 상민과 심지어 천민까지 적잖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과 기존 질서에 대한 복종을 점체 백성 스스로 체화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조선을 건국한 이념인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백성이 글을 읽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째서 조선조정은 삼강행실도를 펴내 글도 모르는 백성들에게 읽히려 하고 있었겠는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은 위험하다. 당장 똘복 강채윤(장혁 분)이 그러하지 않던가? 그나마 글을 읽고 쓸 줄 알면서 사리니 도리니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종이 하는 일을 두고 비판하고 경계하면서도 그 옳은 것을 알고 굽히고 복종할 줄 안다. 그러나 아직 글을 배우기 전의 똘복은 단지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하는 짐승에 불과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천하제일검 무휼(조진웅 분)을 긴장시키는 사나운 짐승이었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그래서 농민의 반란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당장은 눈앞의 폭력이 두려우니 복종한다. 그러나 또다른 폭력이 있다면 백성들은 당연히 그 폭력에 복종하려 들 것이다.

"그게 아랫것들 삶이니까. 윗것들에 따라 달라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몽골이 쳐들어오면 몽골에 복종하고, 일본이 쳐들어오면 일본에 복종하고, 혹시 도적이 인근에 날뛰면 그 도적에 복종하고, 그러다가 틈을 보이게 되면 어느새 이를 드러내고 물기 위해 달려든다. 왕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품고 그 복수를 하고자 십수년의 시간을 수라장을 헤치며 살아온 그 집요함. 모든 백성이 그런 식으로 왕에게 원한을 품고 왕을 죽이려 한다면 왕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사대부 역시 그런 식으로 모든 백성이 사대부를 죽이려 한다면 그 씨가 마를 것이다.

그래서 길들이려 한다. 착한 백성으로. 말 잘 듣는 백성으로.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으며, 친구 사이에 우애가 있고, 스스로 삼가고 분수와 주제를 알아 맞게 행동한다면 설사 왕이 죽이려 해도 기꺼이 목을 내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국시대 일본이었다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선조에게 이순신은 어쩌면 반란을 일으켜 저항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임금에 대한 충성을 어려서부터 교육받아온 이순신이었기에 차라리 죽을지언정, 심지어 그토록 심한 고초를 겪고서도 여전히 임금과 나라에 대한 충성 뿐이었다. 조선후기 민란이 빈발할 때조차도 백성들은 지방관을 포박하여 고이 고을 밖으로 내보내며 왕에게 다른 마음이 없음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스스로를 근왕군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것이 똘복과 강채윤인 것이다. 왕에게 감히 '지랄'이라 말할 수 있는 무엄한 똘복과 그 왕을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밀본을 잡으려 노심초사하는 강채윤. 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강채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글을 가르쳐 왕이 하는 말을 백성이 들을 수 있도록 한다. 글을 배우도록 함으로써 사대부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기꺼이 따르도록 만든다.

구일본제국이 과연 식민지조선의 백성들이 가엾어서 각지에 학교를 세우고 했던 것이었을까? 학교를 세우고, 근대화된 교육을 시켜주고, 오히려 일본인이 세운 학교에 들어가 공부함으로써 그들은 충실히 구일본제국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길러지고 있었다. 어쩌면 대한민국보다 더 철두철미하게 국민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북한에서 과연 교육이 북한 주민의 자유와 권리 그 어떤 것에 봉사하고 있는가 말이다. 그것을 세뇌라 부른다.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다고 갑자기 백성들의 머리가 틔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이 뜻하는 바가 그러하다면 한글은 미완성의 글자라 할 수 있었다. 읽고 쓸 줄만 알면 무엇하는가? 무어라 하는지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였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쓰는가? 스스로 읽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자기가 쓰는 것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백성은 글을 알게 됨으로써 스스로 강해진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세종은 무엇을 했는가?

그것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문맹률이라고 하는 허구성과도 맞닿는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고 해서 문맹이 아니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읽기는 읽는다. 쓰기는 쓴다. 그러나 정확히 자기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를 모른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도 모른다. 말에도 훈련이 필요하듯 글에도 훈련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생략되어 정작 글을 읽으면서도 그 글의 내용을 모르고,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모른다. 그것을 과연 글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소리나는대로 쓰는 것은 좋지만 같은 '맛있다'를 두고서도 누군가는 '마디따'라고 쓰고, 누군가는 '마시따'라고 쓴다. 과연 같은 말인가? 그래서 한글에 있어 세종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한국근대사의 주시경선생일 것이다. 비로소 통일된 표기법을 정하고 현대의 모든 한글표기의 규칙을 확립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누가 쓰더라도 당연히 아무라도 그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러한 영향이 크다. 그에 비하면 세종의 훈민정음이란 아직 말을 할 수 있게 되기 전, 겨우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상태와 다르지 않다 할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을 읽고 쓸 것인가? 정기준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어야 했다. 과연 백성들은 한글로 무엇을 읽고 쓰게 될 것인가? 과연 한글이라는 글자가 올바로 백성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근세 이전 유럽의 가톨릭이 성경을 함부로 읽거나 그것을 번역하려는 것을 금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충분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이 성경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자칫 라틴어로 되어 있는 성경을 자국으로 잘못 번역할 경우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 수 있다.

사대부들이 한글창제에 반대하는 한 이유일 것이다. 롱펠로우의 시는 영어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이백의 시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은 그 시의 멋을 해치는 것이다. 칸트의 철학은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되어 있는 책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우며, 가능하다면 독일어로 읽는 쪽이 그 핵심을 이해하는데 더 유리하다. 원래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의 구절은 밧줄을 뜻하는 아랍어 gamta를 번역자가 낙타를 뜻하는 비슷한 말 gamla로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도 말한다. 번역을 읽는다는 것은 번역자의 오류까지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칫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전문가 수준으로 읽고 쓸 수 있게 되더라도 지식인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일 게다. 지식인이란 바로 그러한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오류를 찾아내 바로잡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쫓는 것만이 그들이 하는 전부일 것이다. 먹고 살기에 바쁜 일반인들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전문영역이다. 과연 백성이 모두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사대부의 가치는 떨어질 것인가?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사이비들이 멋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이유로 거짓된 지식을 퍼뜨리려 할 경우다. 그에 사람들이 현혹되는 경우일 것이다. 유가의 경전을 번역해 읽히는데 전혀 엉뚱한 뜻으로 읽어 잘못 이해하고 실천한다. 어떠하겠는가?

한글은 완전무결한 글자가 아니다. 더구나 처음 창제될 당시는 더욱 그랬다. 한글을 알게 되니 세상이 바뀐다. 한글만이 아니라 한자마저 많은 백성들이 읽고 쓸 줄 알게 된 조선후기에조차 조선사회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사대부에 의해 생산된 지식을 글로써 접하게 된 백성들은 더욱 사대부가 만들어낸 가치에 오염되어 길들여져가고 있었다. 지나치게 지금의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아니 그보다는 결국 드라마는 세종과 한글의 드라마라는 것일 게다. 그래서 이해한다. 필자 역시 세종 임금을 존경하고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이므로. 그러나 정기준의 걱정은 상당부분 현실과 동떨어진 바가 있다.

아무튼 참으로 애닲은 말일 것이다.

"그게 아랫것들의 삶이니까."

지난번 말한 그대로다. 오히려 자신의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밀본을 쫓을 때보다 세종에게 복종하여 그를 위해 밀본을 쫓을 때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가운데 가장 상위는 자아다. 하지만 자아란 잘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을 추구한다. 자존이란 내가 보고 남이 보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것. 명예스러운 것.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와 맞아 떨어지는 더욱 대단한 일이다. 더구나 왕의 일이다. 자신을 위한 복수란 자신의 가치 만큼이나 하잘 것 없을 수 있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라는 것도 대단한 당위성을 갖지만, 그러나 왕이라는 고귀한 자리와 그가 이루고자 하는 크나큰 대의와 같을 수는 없다. 세종이 하는 일이 그래서 자신의 일이 된다. 세종이 훌륭하고 그 하는 일이 대단할수록 세종과 강채윤 자신이 동일시되는 것이다. 투사라 말한다. 동화다.

이미 소이(신세경 분)가 그랬었다. 꺽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종수(한상진 분)가 밀본의 본원을 쫓는 마음이 그것이다. 윤평(이수혁 분)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스스로 의금부로 자수하러 찾아간 이유이기도 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을, 나아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러한 확신을 준다. 그렇게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그것, 자신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그것에 내맡긴다. 말한 카리스마다. 세상에는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그 규칙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아랫것이란, 아마도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어진 규칙을 따라간다. 카리스마를 찾고 그에 기대려 한다.

왕이 왕인 이유다. 백성이 백성인 이유다. 사대부가 신하가 아닌 이유다. 사대부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에 충실한 이들이다. 그것은 성리학이라고 하는 이념에서 비롯된다. 성리학적 가치야 말로 왕보다 그 무엇보다 그들이 쫓아야 할 가장 고귀한 어떤 것인 터다. 신하는 그러한 누군가를 쫓는다. 왕을 쫓고, 밀본을 쫓고, 본원을 쫓는다. 밀본을 쫓는 이신적(안석환 분)을 쫓기도 한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항상 찾고, 눈으로 쫓고, 그리고 의지하고. 그에게 기대며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한다. 종교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정치란 그래서 미디어와 결합하며 종교를 닮아가고 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세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양의 백성들조차 세종의 카리스마를 접할 기회는 없었다. 더욱 그때보다 많은 대중이 자신의 카리스마를 찾아, 윗거을 찾아 헤매게 된다.

대표적인 한글창제반대파였던 최만리(권태원 분)를 위해 변명을 하자면, 정작 그렇게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를 반대했던 최만리지만 정작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자모의 이름 '기역, 니은, 디귿'을 만들어낸 이도 다름아닌 최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오로지 최만리만이 아직 한글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정확히 한글의 성격에 대해 예견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만큼 한글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같은 반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인데 과연 그 정도 반대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는 그야말로 기습적인 파천황의 혁명이었다.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그를 위한 절차가 필요했다. 토론이란 그를 위한 기회였다. 어째서 현대사회에서도 국회에서 표결이 있기 전 먼저 토론부터 하도록 되어 있는가? 그 토론은 단순히 국회의원 자신이 납득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그 과정을 통해 국민들 역시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절차를 통해 의식을 치르는 것이었다. 이러이러한 장점과 단점이 있고, 그것을 정해진 절차를 통해 토론하고 검증하여 결정했다. 아무리 세종이 옳다고 그같은 과정조차 없이 모든 일이 추진되었을 때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파천황은 그래서 파천황이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이런 것이야 말로 조선만의 멋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동시대 이와 같은 나라가 없었다. 왕이 관리들과 다투고, 관리들은 또 선비들과 싸우고, 언로야 말로 유교사회에서 정치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제아무리 유능한 군주라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독단을 행한다면 결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뛰어난 천재가 아닌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둔재를 유교는 더 사랑했다. 덕분에 큰 혁신은 없었지만 크게 시행착오도 없었다. 그야말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처럼 몇 차례의 큰 전란 말고는 굴곡없이 이어진 역사였다. 조선의 힘이었달까? 제아무리 시골 구석의 이름없는 선비라도 상소를 통해 조정에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관철시킬 수 있었다.

세종이라고 하는 천재보다 오히려 그와 같은 보통사람을 위한 시스템에 더 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필자 역시 보통사람일 터이므로. 다만 사대부란 결코 보통사람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유학을 배우고 익혀 실천할 줄 아는 지식인들이었다. 그것이 조선사회의 한계였지만, 초인적인 군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선진적인 체계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흥미롭다. 과연 세종이 만든 한글이 조선의 역사를 바꾸었는가? 세종이 만든 한글로 인해 조선의 사회가 크게 바뀌고 있었는가? 하지만 과연 그 정도였을까? 지금도 정작 한글을 읽고 쓰면서도 그 뜻을 모르고 쓰는 사람들이 많다. 위대하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

표음문자니 표의문자니 하는 표현들이 눈에 거슬린다. 꺽쇠에게 거짓말을 하는 소이의 연기도 너무 훌륭했다. 사소한 옥의 티들이다. 가끔 시대를 뛰어넘고 TV속 공간을 넘어서려 한다. 사소한 부분에서 섬세함이 부족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정도가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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