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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07 07:58

뱀파이어 검사 "하나의 죽음과 허무한 진실, 허위와 허세의 거짓된 명예를 비웃다!"

7년 전 살인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거꾸로 풀면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 때문이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 때문이다. 사냥꾼은 가죽을 얻으려 호랑이를 사냥하고, 사람은 이름을 얻으로 타인을 죽이고 자기를 죽인다.

실제 중국의 무술계에 전해지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한 고수가 두 사람의 무술가를 상대해서 한 번의 공격으로 한 사람은 어깨를 무너뜨리고, 다른 한 사람은 목이 몸 안으로 파고들게끔 만들었다. 당연히 둘 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달리 전하는 이야기로,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단지 후자의 경우는 너무 충격이 커서 눈이 튀어나오고 목이 내려앉는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두 사람 모두 멀쩡히 살아 있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중국이나 일본이나 무술고수들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를 모두 믿을 것 같으면, 어쩐지 현대의 보통의 사람들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손짓 한 번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칼질 한 번에 무수한 적이 흩어진다. 담을 타고 하늘을 날고, 손 하나로 나는 새도 가둔다. 가능한 일일까?

하필 현피에 참가한 격투기동호회 파이트클럽의 멤버 가운데 특공무술을 익힌 장맹배가 포함된 것은 그래서 매우 시사적이다. 인턴요원 동만(김주영 분)이 취조하는데 있지도 않은 월남전 참전경험이 술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실제 특공대에서 복무했는가의 여부는 극중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 하지만 원래 군대 갔다온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말까지 있겠는가? "군대뻥"이라고.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곳에 갔다왔는가?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그러면서 또한 나는 얼마나 그것을 영웅적으로 잘 극복해냈는가? 적이 강하면 설사 지더라도 내가 약해서 진 것이 아니다. 적이 강하면 만일 이겼을 경우 내가 그보다 더 강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전쟁기록에서 적의 규모는 아군보다 항상 크다. 정치적인 다른 이유만 없다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적이기 때문에 졌거나, 혹은 그럼에도 이겼다.

명예다. 존중받고 싶은 것이다. 존경받고 싶은 것이다. 모두로부터 우러름을 받고 싶다. 경멸받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악행을 저질러 배척받더라도 두려움의 대상이기를 바란다.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본능이기도 할 것이다. 존엄에 대한 것이다. 자존이며 긍지다. 존재이고 의미다. 때로 사람은 그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거기에서 꼬인 것이다. 다른 별다른 것은 없었다. 피해자인 장명진이 인터넷카페인 파이트클럽의 현피모임을 계획하며 평소 알고 지내던 하동훈과 모의를 하는 과정에서 O-157균에 감염된 육회를 먹었고, 그것이 사흘의 잠복기간을 거쳐 발작하려는데 장맹배와 사재성, 이윤소등과 겨루다가 타격을 입고 그때마다 죽음과 관계된 흔적을 남겼다.

최초는 사재성과 싸우면서 조각상에 부딪혀 입은 후두부의 타박상, 그리고 그 전에는 이윤소와 싸우며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손상시켰다. 그리고 그 직전 장맹배와의 싸움에서 못에 찔리며 다시 상처가 남았다. 처음에는 후두부 충격에 의한 쇼크사가 아닌가?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폐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고 복어독인 테트로도톡신이 몸에서 검출되었다. 결국은 모든 원인은 치명적인 식중독균인 O-157이었다.

단계를 밟아나가며 그때마다 마치 감추어져 있던 중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듯 그 과정이 자못 은밀하기까지 하다. 어떤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트릭이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장명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거스르는데 그것이 또 상당히 극적이다. 이미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사재성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이윤소와는 모래를 눈에 뿌리며 온갖 비겁한 수를 동원해 치열하게 다투었고, 장맹배와의 싸움도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그 어디엔가 살의가 숨어 있거나, 의도하지 않은 살기가 감추어져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용의자인 네 사람의 증언을 듣는 동안은 그렇다.

그러나 정작 밝혀진 사실은 어떠한가?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직설적이고 더 희극적이다. 처음부터 그래서 과장되게 파이트클럽의 모임을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지해서 오히려 더 우스꽝스럽다. 심각한데 그것이 어쩐지 현실과 거리가 느껴지는 위화감이 있다. 그리고 그대로. 이 모든 것이 모두의 어처구니 없는 명예욕에서 나온 한바탕의 헤프닝이었다. 증언만 제대로 했어도 헷갈릴 일은 없었다.

최초의 후두부 타박상은 이미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제대로 싸움도 못해보고 뒤로 쓰러져 넘어지다가 지레 부딪혀 난 상처였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은 모래로 눈이 가려진 사이 당한 폭행에 대한 보복으로 이윤소가 벽돌을 들고 내리찍은 것이었다. 어깨의 못자국은 처음부터 장맹배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치졸한 싸움 끝에 사용한 흉기였다. 특공무술과는 거리가 먼 허세어린 막싸움이 장맹배의 진짜 실력이었다. 그러고 보면 용의자 네 사람 가운데 O-157에 감염된 육회를 함께 먹은 하동훈을 제외허고 이윤소만이 장명진의 죽음에 실제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벽돌로 찍어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폐를 손상시켰다.

하지만 드라마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므로. 비웃고 싶은 것이다.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허튼 명예욕에 대해. 허튼 명예욕에 사로잡혀 늘러놓는 허세들에 대해. 그리고 하필 그것은 9시로 예정된 수사팀 회식과 맞물리며 더욱 하찮게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어쩌면 인터넷 카페라는 것도 하나의 단서가 될런지 모르겠다. 장맹배의 막싸움처럼. 장명진과 하동훈의 뒷거래처럼. 그리고 사람이 죽어나간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돋보이려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들을 통해서. 그러나 마침내 밝혀진 모든 진실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태연히 늘어놓는 허세와 거짓말들, 그래서 그 허세와 거짓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온라인에서의 암투들, 그로 인해 희생자가 생긴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마저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멈추지 못한다. 알량한 명예 때문이다.

그 알량한 이름값 때문에 그들은 많은 것을 내놓고, 많은 것을 희생시킨다. 자기만이 아니라 주위마저 그에 휩쓸린다. 그래서 '현피'였던 것이다. 온라인에서의 갈등이 오프라인을 통해 실질저인 물리력으로 구현되는 것. 그리고 그조차 치졸하고 비열한 막싸움이다. 한심하고 허세와 거짓 투성이인 짓거리에 불과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9시 회식시간만도 가치가 없다.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물론 추리물에서 아무런 범인도 사건도 없이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내는 것은 반칙에 해당하는 것이다. 잔뜩 범죄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기대하며 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배신이다.

하지만 그래서 모두는 하나의 팀이 되었으니까. 검사인 민태연(연정훈 분)과 그의 친구이기도 한 형사 황순범(이원종 분), 신임검사 유정인(이영아 분), 여기에 항상 정규직을 꿈꾸던 동만 역시 팀의 일원으로 취조에 참여한다. 과연 정규직도 아닌 인턴에게 용의자를 심문할 권한이 주어지는가는 차지하더라도 여유로운 회식분위기 가운데 별 것 아닌 사건은 수사팀을 더욱 현실과 밀착시키게 된다. 시청자와 밀착시킨다. 마치 장기시리즈를 준비하는 것 같다. 수사팀의 일상이 보여지는 것 같다.

더구나 그러한 쉬어가는 과정을 통해 제작진은 민태연과 관련한 7년전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친절과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보다는 틈을 노린 것이다. 장명진이 죽은 원인으로 간호사 출신인 사재성이 가져온 주사기에 혐의가 돌려지는 가운데 장명진의 간호사 전력이 밝혀지고, 장면진과 얽힌 7년 전 병원에서 쫓겨난 사연이 드러난다. 그것이 민태연이 그토록 쫓고 있는 뱀파이어 사건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민태연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심지어 그 죽음의 과정까지 디테일하게 드러난다.

민태연의 여동생이 죽고, 장명진이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해고되었고, 그리고 민태연이 형이라 부르는 뱀파이어 동료도 그곳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단서는 모두 주어졌다. 여기에서 다시 반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거나 억지성이 강한 것일 게다. 항상 범인은 가장 가까이에서 당사자에게는 충분히 의심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의심하기에 딱 좋은 모습으로 함께 있다. 과연...

처음에는 웃고 넘어가자는 에피소드인 줄 알았다. 그렇게 파이트클럽의 멤버들끼리 모여 나누는 이야기들이 한심할 정도로 희극적이었다. 모임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함께 얼거가는 모습마저 위화감이 들 정도로 폼을 잡고 있다. 그리고 살인.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신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놀라운 부분이다. 이것이 한국의 본격 추리드라마다.

진심으로 장기시리즈를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설정은 물론 캐릭터까지 모두 매력있다. 무엇보다 쓰는 내용이 신랄하면서도 탄탄하다. 근래 보는 드라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드라마일 것이다. 이영아와 특히 섹시한 소박사로 출연중인 김예진이 매력적이다.

재미있었다. 그런 한 편으로 통쾌하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의 당연한 허위라고 하는 본능에 대해서. 가장 솔직한 것은 굶주림으로 인해 가장 본능에 충실할 수 있었던 하동훈이다. 범인은 없다. 그러나 진실은 있다. 추리물의 기본이다. 진실. 그것을 본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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