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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4.10 07:04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14회 "가족의 의미, 김철희 아버지로 돌아오다"

장모란과 떡볶이, 나이를 잊은 사랑스러움에 반하다

▲ '착하지 않은 여자들'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얄궂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남편 김철희(이순재 분)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가족의 정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자리였을 것이다. 큰딸 김현정(도지원 분)의 중학교 졸업식날 함께 먹었던 짜장면의 맛은 기막히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내 강순옥(김혜자 분)과의 추억을 쫓아 함께 찾은 화장품가게에서 김철희가 떠올린 기억들이란 모두 장모란(장미희 분)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을 마치 자신과의 기억인 양 강순옥은 억지로 웃어야 한다.

가족이란 단순히 혈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피가 이어졌으니 가족이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우리는 가족이다. 그보다는 의무다. 도덕적인 강제다. 유전자 검사까지 모두 마쳤다는 말에도 꼼짝않던 김철희가 장모란의 고백과 딸 김현숙(채시라 분)의 눈물에 몸을 일으키고 만다. 김현숙과 김현정의 이름을 부르며. 강순옥과의 관계에서도 김철희가 기억하고 있던 것은 자신이나 아내의 이름이 아닌 '현정이 아빠'라는 호칭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딸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어렵지만 힘을 내보려 한다. 기억이 없어도 아버지이고자 하는 순간 그는 아버지가 된다. 가족이 된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자신을 남편이라 부르는 아내 강순옥에 대한 첫인상부터가 결코 좋은 편이 못되었다. 느닷없이 소금을 맞고, 심지어 발길질까지 당했다. 단지 부부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억도 나지 않는 행위들을 억지로 강요당해야 했다. 첫만남부터 어쩐지 마음이 끌리던 장모란과의 사이에도 자신은 모르는 어떤 사연들이 날카롭게 부딪히고만 있었다. 그런데도 이대로 아무런 정도 기억도 없는 사람들과 가족이라고 함께 지내야 하는가. 이기심이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기 이전에 그냥 자기 편한 곳을 찾는 한 개인이고 인간이었을 뿐이다. 천륜이라는 가족마저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그저 인간으로서 자기 혼자만 편해지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였다. 자신과 눈이 닮았다는 딸이 자신을 닮은 그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서 원망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 매몰차게 말하고 있지만 김현정 역시 못지않게 상처받은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인 자신으로 인해 큰딸 현정과 작은딸 현숙이 모두 크게 상처입고 눈물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더 큰 상처를 입고 현정은 돌아갈 것이고, 현숙은 그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서 상처를 어루만져주지는 못하더라도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과거의 김철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딸의 아버지로서,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부여한 책임과 의무로써 장모란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억지로 다잡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렇다면 과연 고통스러웠을까?

과연 장모란이 강순옥에게 전하고자 쓴 편지에는 어떤 사연들이 적혀 있었을까? 과거 김철희가 실종되던 날 장모란과 김철희가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전의 회상장면에서 김철희는 장모란이 돌아서고 난 뒤 장모란이 미처 보지 못하는 사이 기차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장모란과 몸싸움을 벌이고 난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아니 몸싸움을 벌이기 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자신의 죄인가, 아니면 타인에 대한 연민인가. 혹시라도 강순옥이 듣게 될지 모르는 오해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편지는 박은실(이미도 분)의 손에 들어가 또다른 큰 사건을 예고한다.

박은실이 장모란에 대해 가지게 된 반감의 실체가 뚜렷해진다. 강순옥의 수제자는 자신이다. 장차 강순옥으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도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강순옥의 딸인 김현숙을 수제자로 만들려 한다. 전혀 관심도 없는, 그러나 딸이기에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지금 위치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현숙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장모란에 대해 이미 품게 된 앙심이 사라질 수는 없다. 편지의 내용은 필경 장모란에게 불리한 것이기 쉽다. 그런 박은실이 그렇지 않아도 김현숙과 악연이 깊은 나현애(서이숙 분)와 만나게 된다. 박은실의 욕심과 장모란에 대한 앙심, 그리고 나현애의 김현숙과의 오랜 악연, 여기에 편지가 더해지면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마침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던 두 사람이 나현애의 아들 이루오(송재림 분)의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김현숙이 나현애에게 머리채를 잡힌다.

역시 드라마란 이런 긴장감이다. 비틀리고 일그러진 인간과 관계에 대한 긴박감이다. 그동안 애써 감춰왔던 박은실의 악의가 마침내 장모란과 김현숙을 정면으로 겨냥하게 된다. 나현애에게는 김현숙과 새로게 김현정이라는 동기가 있다. 나현애가 그 재산을 노리고 있는 막내시숙 이문학(손창민 분)과 김현정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장모란의 편지에 쓰인 그날의 이야기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온통 혼란스러운 것들을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린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김철희와 강순옥의 관계에도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마침내 스스로 걸음을 떼놓기 시작한 김현숙에게도 확실한 동기가 되어 줄 것이다. 강순옥과 장모란, 김철희와 장모란, 김현숙과 나현애, 정마리(이하나 분)와 이도진, 이루오. 정구민(박혁권 분). 그 치유되어야 할 상처와 아픔들이 곧 드라마다. 박은실에게도 치유되어야 할 상처가 있다.

그 드라마가 다가온다. 박은실이 장모란의 편지를 손에 넣고, 박은실과 나현애가 다시 만나고, 박은실의 장모란을 향한 악의가 구체화되고, 나현애와 김현숙의 악의가 더욱 깊어지고,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김현숙과 행복을 알아가는 김현정의 모습이 그 간극을 준비한다. 아버지를 찾았고, 그 아버지와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조금씩 잃었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있다. 이루오와 정마리도 한창 분위기가 좋다. 원래 작가란 사람이 좋기만 해서는 버티기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얼마나 등장인물들을 괴롭히고 곤란에 빠뜨리는가. 그동안 너무 평이하기도 했었다. 작가가 준비한 함정이 무엇인지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바로 이런 것이 긍정이다. 증오가 아닌 분노다. 미워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원망이라는 자체도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사과받으려 했었다. 다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나현애로부터 어떤 사과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김현숙은 오히려 더 후련했는지 모른다.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 역시 현실적으로 큰 기대를 갖기 어려웠다. 다른 방법을 찾는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억울함을,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마침내 그 방법을 찾았다. 딸이 아닌 자신이 직접 선생님이 되어 자신과 같이 상처입은 아이들을 위해 상담도 하고 조언도 해준다. 아버지 김철희가, 그리고 당시 체육선생님이던 한충길(최정우 분)이 보았던 김현숙의 장점과 가능성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항상 앞을 보고 나아간다. 조금 늦고 멀리 돌아왔지만.

어쩌면 이것도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복선일 것이다. 다시는 먹지 않으리라던 수제비를 굳이 동생을 시켜 끓여 내오게 한다. 과거 자신이 저버렸던 한충길의 소식을 동생을 통해 알아오게 한다. 아마 이 또한 김현숙과 다시 만난 영향일 것이다. 하필 김현숙과 다시 만나고 손까지 다친 날 동생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오게 시킨다. 친아들 이루오와 함께 있을 때 나현애는 가장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루오가 정마리를 사랑한다. 이루오와도 맞서야 한다.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장모란이 아무도 없는 좁은 방에 홀로 앉아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 장면에서 나이를 잊은 귀여움마저 느껴 버린다. 여성이란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여배우의 관록을 새삼 확인한다. 강순옥과는 그토록 철없는 소녀들마냥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떡볶이 좋아하지? 좋아해요! 그런데 전혀 불평없이 오히려 아주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있다. 무겁지만 비장하지 않다. 천진할 정도로 낙천적이다. 삶과 인간을 긍정한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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