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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3.27 12:02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10회 "빛나기 시작한 나날들, 행복해지기 위해"

김현숙이 가진 가능성,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분노와 희망

▲ '착하지 않은 여자들' ⓒIOK미디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쩌면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혀 근심없이 화내고, 아무 거리낌없이 탓하며, 아무렇지 않게 원망마저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이내 없었던 일처럼 털어버리고는 다시 웃고 다시 어울린다. 친엄마가 아니라니. 다른 여자의 딸이라니. 유전자 검사마저 하겠다 말한다. 그러나 엄마가 아프다 하니 바로 딸로 돌아가서는 언니와 유치한 신경전을 벌인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렇게 철없이 아이처럼 보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현정(도지원 분)은 언니다. 그리고 김현숙(채시라 분)은 그런 언니에게 의지하는 말괄량이 동생이다. 김현정이 얼마나 언니로서 김현숙을 사랑하고 그동안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는지 그 한 장면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도 전혀 거리없이 대할 수 있었다. 언니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에도 그 원망마저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아무리 겉으로 차가운 척 매몰차게 대하는 듯 보여도 결국 입을 옷이 없다며 무작정 찾아가 옷장을 뒤질 수 있는 것이 언니 김현정이었던 것이다.

하기는 그러니까 아직까지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아줌마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묵묵히 지켜봐주는 엄마가 있었다. 때로 채찍질도 하며 든든히 지켜주는 언니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도 생겼다. 딸도 태어났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오랜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나서서 싸워 줄 수 있었다. 자기만 모른다. 자기가 얼마나 축복받은 경우인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마치 공기처럼, 마치 물처럼,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것들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그 과정일까?

성공한 제자들에 둘러싸인 나말년, 아니 나현애(서이숙 분)와 친구 안종미(김혜은 분)와 단 둘이던 김현숙, 둘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누가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았을까? 자랑스런 제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나현애는 다른 더 큰 성공을 거둔 제자들의 이름을 빌린다. 나현애가 살고 있는 세계다. 모든 관계는 거래다.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말도 행동도 모두 달라진다. 더 크고 더 가치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의 위에서 그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성공한 제자들이야 말로 교사로서 그녀의 성공한 삶이고 그 증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있는 그녀 자신의 재산이었다. 그것을 훼손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그마저도 그녀는 거래를 통해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껏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라는 기존의 권위보다 더 큰 권위가 그녀의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고 위로해주기까지 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라면, 더구나 아직 16살밖에 안 된 나이에는 부모와 담임선생님이란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아직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었다.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란 비교도 할 수 없이 좁고 한정적이었다. 그 세계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모이고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훌륭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무려 외국에서 상까지 받았다는 이름있는 작가가, 자신을 대신해 나말년의 교육방식을 비판하고 그녀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나말년에게 직접 사과를 받지 않더라도 앞으로 다시 부딪힐 일만 없으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위로와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만 과연 이것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끝난 것일까? 그렇게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겠다며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일까? 하필 나현애의 의붓아들인 이두진이 김현숙(이하나 분)의 딸과 열심히 로맨스를 찍고 있는 검도관 사범 이루오(송재림 분)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루오는 그런 이두진을 '형'이라 외쳐부르고 있었다. 이루오는 정마리보다 2살이 어리다.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김현숙을 위한 것이 아닌 나현애 자신을 위한 것일 터다. 나현애가 아닌 나말년을 위해서. 그녀가 떠나갔던 사랑이 다시 김현숙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또 한 번의 파란을 예감케 한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아니면 과거 사랑했던 기억에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황혼의 사랑이 귀여울 정도로 순진하다. 단지 닮은 사람을 보았다는 말에 과거 남편을 기다리며 입었던 그대로 차려임고 추운 거리로 나가 무작정 기다린다. 그때도 강순옥(김혜자 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과격했다. 한창 가족과 윷놀이를 하던 도중 장모란(장미희 분)의 전화를 받는 모습에 그대로 윷가락을 집어던지고 만다. 그마저도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기껏 생겨난 기대가 더 큰 실망으로, 서러운 울음으로 바뀌고 만다. 이렇게도 아직까지 남편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것을 일깨우고 만 장모란이 원망스럽다.

장모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들은 체도 않았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다니. 하지만 장모란의 말이기에 믿음이 간다.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다.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따라가려 했던 여자였다. 그런 장모란이 착각할 정도로 닮은 사람을 보았다 말했다. 굳이 장모란과 함께 그 닮은 사람을 보았다던 장소에 나와 기다리며, 서로의 옷차림을 트집잡는다. 그냥 집에서 입던 옷이고, 옷이라고는 이런 것밖에 없다. 미묘한 동질감은 그녀들이 여자라는 것이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일 터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강순옥의 기다림만큼이나 운명이란 얄궂기도 하다. 과거 김철희(이순재 분) 자신이 한 행동과 그대로 닮았다. 기대하게 한다.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는 희롱하듯 엇갈리게 만든다. 남편을 사랑했지만 그것은 짝사랑이었다. 남편이 진짜 사랑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아내인 그녀의 존재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장모란을 먼저 만나고 그녀가 자신의 아내일 것이라 기억이 없는 와중에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아직 만날 때가 아니라기에는 김현정이 아직 양미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아버지 김철희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김현정이 간직해 온 기억들이 비로소 세상으로 비집고 흘러나온다. 그녀는 과연 죽은 줄 알았던, 이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나타난 자신의 아버지를 어떤 얼굴로 대하게 될까?

김현숙의 감춰진 장점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동네 헬스클럽에서는 회비까지 면제해주며 붙잡고 싶은 탁월한 분위기메이커다. 안종미의 가게에서 마네킹에 입혀 진열할 제품을 고르는 것도 김현숙의 감각이었다.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도 김현숙에게 옷을 골라달라 말한다. 심지어 감기로 누운 엄마를 위해 만든 죽이 유명한 요리선생님인 엄마 강순옥마저 맛으로 감탄케 만들고 있었다. 진짜 강순옥의 요리수제자는 박은실(이미도 분)이 아닌 김현숙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주눅든 채 과거에 얾애여 살고 있다. 기대하게 만든다. 김현숙이라고 하는 꽃이 이제서야 피고 늦게서야 열매를 맺게 된다. 그 과정은 물론 험난하다. 공부는 여전히 재주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세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그저 암울한 처지라고만 여겨왔었다. 우울할 정도로 한심하고 비참할 정도로 처량하다고. 밝아지고 있다. 그와 함께 빛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분노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빛날 수 있었던 그녀가 30년도 전 10대의 어린 나이에 어른의 오만과 편견에 의해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딸에게서 벗어나 비로소 남편과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봄이 다가온다. 햇살은 따갑다.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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