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6 08:48

내사랑 내곁에 "악이란 원래 추하고 더러운 것이다."

어머니 배정자를 보던 아들 고석빈의 표정...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악이 악인 이유는 그것이 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악이 아름답고 멋지다면, 그래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그것을 악이라 말하고, 꺼리고 싫어하여 이야기하겠는가?

물론 그럼에도 모든 악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없는 선이 없듯 이유없는 악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시민의 악은 슬픔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양심과 존엄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절박하고 약하여 사람들은 악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지와 가난과 절망과 좌절.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악이라면 결코 아름다울 리 없다. 그래서 악이다. 만일 그것이 아름답고 멋지다면, 화려하기까지 하여 누구나 우러를만한 것이라면 그것은 악이 아니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칫 잊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악에도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에 동화되어 버린다.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를 연민하고 동정하여 나중에는 합리화를 시도한다. 스스로 그에 이입함으로써 악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선의의 피해자를 비웃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을 조롱하며. 위악이다. 그런데 또 이러한 보편의 질서에서 벗어난 위악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혼돈이다.

바로 드라마 <내사랑 내곁에>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분명 <내사랑 내곁에>는 악역일 배정자(이휘향 분)와 고석빈(온주완 분)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음을 연민하여 보여준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게끔 되었는가? 그러나 한 편으로 드라마는 냉정하게 그러한 선택과 행동들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아무런 동정의 여지조차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 제발 그만하자는 아들 고석빈 앞에서 그럴 수 없다며 매달리는 배정자의 모습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가? 한심할 정도로 초라하고 역겨울 정도로 가련하다.

드라마가 막장이라 불리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악이란 그렇게 더러우니까. 악이란 그렇게 추악하니까. 배정자는 그렇게 추악하게 그려진다. 고석빈 또한 그렇게 더럽게 묘사된다. 조금은 멋지게 세련되게 보여주어도 좋으련만. 시청자가 보기에 기분 나쁘지 않게 꾸며 보여주는 것이 보기에도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드라마는 배정자와 고석빈을 악으로 묘사한다. 그에 당하는 주변인물들이 분통이 터지도록 답답해 보일 정도로.

자신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끝내 아이를 유산하고 만 조윤정(전혜빈 분) 앞에서 죽은 아이를 살려내라 악을 쓰고, 다시 죽은 아이를 대신해서 입양을 해서라도 강정혜(정혜선 분)에게 보내자 억지를 쓰고, 과연 배정자에게도 양심이란 있는가? 그래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만, 그야말로 배정자가 보이고 있는 악에 대한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이것이 악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미 그것은 악이다. 응징되어야 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당연하게 그것을 응징한다. 그동안 배정자가 꾸민 일들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것이 드물고 댓가를 치르지 않은 것이 또 적다. 그나마 공씨아줌마와 관련해서 그동안 들키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들통나고, 얕은 꾀로 강정혜에게 양자를 들이려던 것도 고석빈의 무심함으로 인해 무산되어 버리고, 여기에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 강정혜에게 그것마저 들키고 만다. 갈수록 궁지로 몰린다. 마지막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국 자신이 선택한 악에 대한 댓가를 그들은 치르고 말리라. 그 또한 드라마를 통해 기대하는 바다.

아무튼 흥미로운 부분이다. 친아버지인 고석빈을 고집하느라 도미솔과 이소룡(이재윤 분)을 비롯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곤란케 만드는 봉영웅의 철없음과 아들 봉영웅을 만나기 위해 아내인 조윤정(전혜빈 분)의 생일마저 잊고 방치하는 고석빈, 그나마 남편으로서의 자각이 조윤정이 유산을 한 것을 계기로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풀어주고자 한다. 분명 조윤정을 풀어주고자 한 그 순간 그는 잔인하지만 비로소 한 여자의 남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봉영웅처럼 떼를 쓰는 어머니 배정자를 보는 그의 표정도 아들 봉영웅을 바라보는 아버지 고석빈이 되어 있었다.

봉영웅은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일까? 보는 내내 짜증이 났지만 이내 이해하고 말았다. 워낙에 주위에서 그렇게 강요한다. 결손가정이네 뭐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친아버지 친어머니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어린 봉영웅이 과연 그런 가운데 어머니 도미솔과 아버지 고석빈,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이소룡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필 한참 어른인 고석빈과 배정자가 그 행동을 답습한다.

슬슬 끝은 다가오는 것 같은데. 공씨아줌마의 일도 걸렸고, 송씨아저씨의 경우는 그래도 이대로 끝을 낼 수 없는지 어느새 심장마비로 죽었다 하고, 그런데 강정혜에게 양자로 보내려던 아이가 고석빈의 아이가 아니었으며, 유산한 것을 입양해서까지 거짓으로 꾸며 보내려 했다는 사실마저 들키고 만다. 거짓이 드러나고 악이 들추어지고. 이제 남은 것은 응징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도미솔은 또다른 어린 임산부를 위해 애쓰고 있으니 이는 곧 도미솔이 행복해져야 하는 당위 -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미혼모로써 수많은 고난을 겪었던 도미솔이 마침내 또다른 미혼모들을 보살피는 위치에 선다. 악은 악으로써 갚고 선은 선으로써 갚는다.

상당히 전통적이지만 그러나 진부하지 않은 주제이며 구성일 것이다. 미혼모라는 자체가 쉽지 않은 소재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 자체도 그다지 주제에 매몰되지 않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었다. 곳곳에 생명과 모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단서를 흩뿌려놓고서도 그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주제를 드러내 보인다. 다만 워낙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인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비판을 듣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드라마란 원래 그런 것이었을 터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그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이제 끝이 보인다. 여전히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므로. 재미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