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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13 07:34

뿌리깊은 나무 "조선은 왕의 나라인가? 사대부의 나라인가?"

조선사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실 왕권과 신권으로 나누는 자체가 왕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런 것이다. 사대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왕이란 단지 사대부를 대표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바로 그러한 가치가 결정적으로 충돌한 것이 조선 현종연간 있었던 예송논쟁이었다.

이미 소현세자의 때에 자의대비가 장자에 대한 예로써 3년상을 입은 적이 있으니 단지 효종의 경우는 차자로써 기년상을 치를 것인가? 아니면 차자라 할지라도 왕위에 올라 종통을 이었으니 자의대비 또한 공적으로는 효종의 신하가 되므로 신하의 예로써 3년 상을 입을 것인가? 한 마디로 왕이라 하더라도 사대부의 예로써 주자가례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왕이기에 왕만의 특별한 예법을 쫓을 것인가? 왕이란 단지 사대부인가? 아니면 전제적인 특별한 존재인가?

이는 이후 정조 연간 노론의 당인인 윤구종이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혜릉 앞을 지나가며 "노론은 경종에게 신하로써의 의리가 없다."고 한 것과도 이어진다. 왕이란 사대부라 하여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쳐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대부와의 쌍무적 관계를 통해 인정되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소론의 편을 들어 신임사화를 일으킨 경종은 노론의 입장에서 왕으로써 인정되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이해하자면 사대부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사대부란 지주였다. 그리고 지식인이었다. 중앙의 권력과 대립하여 지켜야 할 경제적 이익이 있었고, 더불어 국정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사대부는 중앙권력으로부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했고, 또한 지식인으로써 국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유럽의 역사에 이와 비슷한 존재가 나온다. 바로 영국의 젠트리, 혹은 독일의 융커다. 토지에 기반하여 생산수단을 소유하였으며 지식인으로써 교양과 식견을 갖추고 그것으로써 국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려 했다. 주로 도시의 상공인이었다는 점에서 시민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근본 역시 비슷하다.

즉 성리학이라는 저체가 중앙의 전제적인 권력에 대항하여 지역의 유지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 했던 사대부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나타난 논리였던 셈이다. 중앙권력은 최대한 사대부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대부는 중앙권력에 협력하여 나라를 운용한다. 더 이상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닌 사대부 또한 나라의 주체로써 동반자 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사대부가 있고 그 사대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 대표자인 왕이 있다. 그것이 삼봉 정도전을 비롯한 고려말의 신진사대부들이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출범시킨 이유였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 등이 군신의 의리로써 고려왕조를 지키려 했다면, 삼봉 정도전 등은 나라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바로 자신들 사대부의 입장을 대변할 존재로써 새로운 왕조인 조선왕조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삼봉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이 충돌하는 이유가 되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묘사되고 있듯 태종 이방원에게 있어서 조선이란 이씨왕가의 조선이다. 그러나 삼봉 정도전의 입장에서 조선이란 사대부에 의해 세워졌고 단지 조선의 왕가란 사대부 자신들에 의해 추대된 입장이었다. 나라의 실체는 다름아닌 사대부이며 왕은 단지 그들을 대표하여 상징적인 존재로써 군림하는 역할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왕의 나라인가? 사대부의 나라인가? 태종은 오로지 왕의 나라이기만을 원했고 세종 역시 그를 계승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세조의 찬탈 이후 세종에 의해 양성된 관학파가 무너지면서 사림이 대거 조정으로 진출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성리학의 이념에 충실한 원리주의자들이었다.

즉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는 달리 사실 세종 역시 왕권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대부란 곧 신하였다. 실무관료들도, 집현전의 학자들도, 그래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수양대군과 양평대군 등 왕자들을 정무에 직접 참여시켜 왕을 보위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준 것이었다. 다만 차이라면 태종에게 왕이란 자기 자신을 일컫는 것이었고, 세종에게 왕이란 합리적인 관료조직과 참모를 포함한 신하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세종에게 있어서도 관료란 조선중기 이후의 사대부와는 다른 전적으로 왕의 뜻을 따르는 신하에 불과했다. 왕을 보좌하는 존재이지 왕권을 넘어서는 존재는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태종이 절대왕정을 추구했다면 세종은 계몽군주를 추구했다고나 할까? 결국은 그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 더 강한 왕권과 그를 위한 더 강력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배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니다. 서슴없이 아버지 태종(백윤식 분)에게 무릎을 꿇고, 그러면서도 철저히 정치인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 아니 정적인 태종에게 관철하려 한다. 태종이 어떤 의미에서 찬합을 보냈듯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다름아닌 세종(송중기 분) 자신이다. 이 또한 패도일 것이다. 패도가 없는 왕도란 의미가 없다. 왕이 왕으로써 자신의 나라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데 어찌 왕도가 있을 수 있을까? 세종의 입장에서도 조선의 왕은 오로지 세종 자신 뿐이었고,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 또한 오로지 세종 자신만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태종은 아버지이기 이전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정치적 경쟁자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우 강하고 거추장스러운. 곱상한 얼굴로 매우 강단있고 패기있다.

아무튼 흥미롭다. 정도전이 만들었다는 비밀결사 밀본과 그를 둘러싼 세종과 태종의 갈등. 태종은 정도광(전노민 분)과 정기준을 죽여 정도전의 조선을 부정하려 하고, 세종은 정기준을 살려 자신의 조선을 만드는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물론 말했듯 두 사람의 입장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둘 다 패도이며 또한 왕도를 추구한다. 차이라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인정하려는 태종에 비해, 세종은 타인을 인정하되 그 정점에 서고 싶어 한다. 태종에게는 정점에 서려 해도 다른 이의 존재가 없지만, 세종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있기에 왕으로써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다.

과연 정기준은 장차 이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밀본이 하게 될 역할에 대해서는? 하지만 태종이 직접 친견하는 과장에서 태종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을 답이라고 내놓고 대책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그다지 크게 기대가 생기지는 않는다. 어린 나이였다고는 하지만 쓸데없이 말만 많고 객기가 넘친다. 그로 인해 죽은 사람이 도대체 몇인가? 하물며 왕자를 앞에 두고서도 그를 자극하는 말을 서슴지 않다니. 똘복이(채상우 분)도 그렇고 어째 드라마의 아역들이 하나같이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하여튼 민폐다. 그나마 똘복이가 있었으니 조말생(이재용 분)의 습격으로부터 정도광도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어찌하고, 또 그나마 정도광의 말을 빼앗아 달아나느라 잃어버린 밀본지서는 어찌하는가? 그래놓고는 다시 아무 대책없이 칼 한 자루 빼들고 주머니를 찾겠다 나서고 있다. 아역이라면 귀여운 맛이 있어야 하는데. 독기로 똘똘 뭉쳐 악만 써대는 것이 아무리 해도 어떤 연민도 호감도 생기지 않는다.

아직은 시작일 것이다. 왕에 대해.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 매우 중요한 화두들일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일 것이다. 이후에 대한 복선들이기도 할까? 흥미롭게 보고 있다. 집중해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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