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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2.20 07:21

'하이드 지킬, 나' 10회 "한계, 맥락없는 고백과 장황한 변명"

홀로 남겨진 윤태주의 질투와 분노, 구서진 한 발 내딛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그러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뜬금없고 맥락없다. 아무런 단서도 조짐도 없이 장하나에 대한 감정을, 그것도 말로 고백하는 윤태주(성준 분)라니. 물론 윤태주 자신도 그런 자신의 감정을 몰랐었다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조차 모르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나 있어야 했었다.

윤태주가 이수현이었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을 때에도 구서진(현빈 분)과 고의든 우연이든 만나게 함으로써 최소한의 암시는 해주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윤태주와 구서진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어야 윤태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충격이라도 받는다. 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무였다고 해야 충격을 받는 것이지,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느닷없이 나무라고 강조해봐야 그러려니 할 뿐이다. 이제는 아예 연출과 연기로써 보여주었어야 했을 내용들을 윤태주 자신의 입으로 일일이 설명하려 하고 있다. 그 뻔하고 지루한 대사를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배우 성준에게 감탄할 따름이다.

▲ SBS 드라마스페셜 '하이드 지킬, 나' ⓒSBS

그래도 구서진 역시 함께일 것이라 여겨왔을 것이다. 자신을 배신했고, 자신은 배신당하고 버려졌지만, 그러나 그 순간에조차 구서진과 자신은 함께였었다. 같은 것들을 보았고, 같은 것들을 들었으며, 같은 것들을 경험했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구서진만은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다. 자신의 상처도, 자신의 아픔도, 일그러진 지금 자신의 모습도. 그런데 그 구서진이 자신의 기억과 전혀 다른 기억을 주위에 말하고 그것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배신당한 것 같다. 하물며 구서진 자신이 그 기억을 잊고 있다면?

윤태주가 분노하는 것은 그때 구서진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이 괴로운 만큼 구서진도 괴로워해야 한다. 자신이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만큼 구서진 역시 가해자로서 양심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 혼자만 남겨졌다. 다시 한 번 구서진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래서 기억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다시 한 번 그때로 돌아가서 자신이 기억하는 그것을 구서진 역시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다. 구서진은 그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만 살고자 장하나(한지민 분)를 버리고 혼자서 도망칠 것이다. 복수란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곳에서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구서진을 보고 만다. 하필 장하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까지 깨닫게 된 그 순간에. 그는 진짜 혼자가 되어 버린다.

구서진과 장하나를 폐공장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온 윤태주가 바로 강희애의 식사를 준비해 그녀를 마주하고 앉는 이유일 것이다. 강희애에게 건낸 쟁반 위에는 윤태주 자신 몫의 커피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 편으로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 그래서 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강희애는 구서진 대신이었지만 구서진이 될 수는 없었다. 윤태주의 장하나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장하나를 향한 감정보다 구서진을 향한 감정이 더 강하고 더 진실하다. 차라리 장하나가 방해가 된다.

윤태주, 아니 당시의 이수현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돕지 못했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혐오이고 경멸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버겁다. 아버지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필사적이어야 한다. 남겨진 마음이 그의 다른 인격이 되어 버린다. 지금의 자신도 간절한 바람으로부터 만들어졌다면, 로빈 역시 자신의 간절한 바람으로부터 태어났다. 결국 지금의 구서진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남겨진 마음의 한 조각은 로빈을 향하고 있다. 현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로빈이라는 꿈 뒤에 숨는다. 꿈이다. 자신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이 지워진 그야말로 꿈. 그래서 로빈은 구서진이 잠들 때에야 나타난다.

때로는 단지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이루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선한 것이 아니다. 선하려 하는 것이다. 용감한 것이 아니다. 용감해지려 하는 것이다. 알기 위해 노력하고, 지혜롭기 위해 궁리한다. 로빈이란 구서진의 후회이며 반성이다. 그때 그래서는 안되었다.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비로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오랜 바람을 행동으로 옮긴다. 장하나를 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로빈의 존재를 위해 자신마저 양보한다. 조금은 달라졌을까?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난 구서진의 모습이 사뭇 이전과 달라 보인다. 더욱 과거에 집착하는 윤태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두 사람은 다시 어디까지 엇갈리게 될까?

류승연(한상진 분)의 말이나 행동들은 드라마에서 전혀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의미없는 것들이었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저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재미는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심심하거나 밋밋하지 말라고 뿌리는 양념이나 고명 이상은 아니다. 기대한 것처럼 구서진과 대립하며 중요한 사건을 만드는 악역으로서가 아닌, 그냥 있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섣불렀다. 역시 드라마를 정신없게 만드는 이유다. 그런 것치고 너무 앞에 나와 있다. 헷갈리게 한다.

앞과 뒤를 늘리고 중간을 생략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최악의 구성이다. 도입부에서 이후의 내용에 대한 기대나 단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배반당한다. 눈치채지 못한 것을 탓하게 되는 반전이 아닌, 전혀 없던 내용들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한다. 비로소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되는가 싶더나 이번에는 대사로 나머지를 대신해 버린다. 사실상 드라마로서 보여지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랑이나 할까? 말들만 많아진다. 설명할 것도 많은데 보여줄 것은 없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빈과 한지민의 매력이 아깝다.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당황하고 실망하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와 제작진의 지나치게 큰 기대를 현실이 못 쫓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와 제작진이 추구하는 바가 필자가 기대하는 것과 너무 큰 괴리를 이룬다. 섣부른 판단이었고 잘못된 기대였다. 이제 여기서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처음의 한가로움이 차라리 아쉽기만 하다.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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