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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10 09:44

로열패밀리, "점입가경, 갈수록 재미있다"

눈을 떼지 못하는 흡입력이 놀랍다.

 

드라마 <로열패밀리>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점입가경' 이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끝을 모르겠다. 그야말로 1940년대 필름느와르의 정석을 보는 듯한 끝없는 긴장과 의혹과 음모의 불길한 향기가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든다.

드라마는 일단 전형적인 '박해받는 선인'의 코드를 취한다. 선량하지만 약자인 주인공이 악의를 가진 압도적인 힘 앞에 고통받다가 마침내 그가 베푼 선행의 결과로 악의를 물리치고 구원을 받는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어 온 인류 보편의 권선징악의 이야기구조다.

가진 것 없이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JK패밀리로부터 멸시와 학대를 받는 김인숙(염정아 분)과, 그녀의 출신과 가장 아끼던 아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녀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감추지 않는 JK의 총수 공순호(김영애 분)의 갈등구조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구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살인누명까지 쓴 고아 한지훈(지성 분)을 끝까지 믿고 후원하여 검사까지 만든 '천사'라고까지 불리운 김인숙의 선행에 어느샌가 사람들은 그녀를 동정하며 응원하게 만든다. 대조적으로 탐욕과 오만으로 묘사되는 JK패밀리는 그녀가 극복해야 할 악의이며 폭력일 것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드라마는 대중적으로 상당한 흥미를 자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반복되어 쓰여져 온 소재이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입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선량하면서 나약한 - 그러나 끝내 승리하는 주인공에 열광해왔던 것이다. JK라고 하는 거대한 부와 권력은 김인숙의 선량함과 미약함과 어우러지며 더욱 대중의 성취동기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녀의 성공에 보다 자기를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같은 유사한 스타일로써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 최근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같은 전형적인 구도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뒤에 있을 반전을 위한 기만에 불과했다. 시청자들이 재벌가의 학대받는 평범하지만 선량한 주인공 김인숙을 동정하며 빠져드는 사이 드라마는 다시 한 번의 준비된 반란을 시작한다.

'박해받는 선인'의 가면에 가리워진 음울한 비밀과 음모의 주재자로서의 악녀 - 팜므파탈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팜므파탈에 의해 타락하고 재앙으로 내몰리는 것은 그녀로부터 구원받았던 한지훈의 존재 아닐까?

한지훈은 그래서 드라마에서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박해받는 선인 김인숙의 선행의 결과로써 그녀를 그녀가 놓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주는 선행의 증거의 역할이다. 그리고 하나는 필름 느와르의 많은 남자주인공들이 그러했듯 김인숙 비밀스런 의도에 의해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역할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끝까지 김인숙의 선의를 믿고 자신이 그녀를 돕고 있다고 여긴다. 김인숙에게서 모성을 느끼는 그의 행동은 짐짓 맹목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김인숙과 한지훈이 만나는 그녀의 작은 기도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십자가는 속죄를, 마리아는 모성을 뜻한다. 음모를 꾸미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엄기도(전노민 분)를 돌아보지 않는다. 한지훈과 만나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등을 돌린 채 십자가와 마리아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어둠과 혼란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자궁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한지훈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그녀의 자궁 속에서 찾는다. 마치 아이가 어미를 찾듯.

그리고 이것은 <로열패밀리>의 김인숙이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의 팜므파탈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김인숙은 한지훈의 생모로 여겨지는 자신이 '언니'라 부르는 여성 앞에서 무릎꿇고 용서를 빈다.

"미안해 언니, 지훈이만은 끌어들이지 않으려 했는데... 나 살아야겠어. 이게 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아저씨라 부르는 총집사 엄기도(전노민 분) 앞에서 무섭도록 냉정해지는 얼굴이 한지훈 앞에서는 마치 누이인 듯 엄마인 듯 해맑게 풀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중성을 보여준다. 분명 그녀가 한지훈을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러나 진심은 어떤 숨겨진 의도 앞에서 어느샌가 목적으로 수단으로 바뀌고 만다.

"지훈이는 저한테 짐이자 날개에요."

아마 그것은 '박해받는 선인'과 '팜므파탈'이라는 서로 상이한 두 가지 코드가 만나는 절묘한 절충점일 것이다. 그녀는 선인도 아니지만 악인도 아니다. 빛과 어둠 가운데 끝없이 혼란스러운 잿빛 그림자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그녀에 대한 신비감과 궁금함을 더한다. 아직도 가장 중요한 김인숙 자신부터가 온갖 비밀과 의혹 투성이다. 차라리 악인이었다면 단번에 명쾌하게 판단을 끝냈을 것을.

아무튼 이번회차에서도 유력대통령후보의 아내로써 JK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진숙향과 김인숙을 이어준 것은 역시나 사회봉사활동을 함께 하며 쌓은 관계였다. 김인숙 그녀의 선행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움직인 것은 김인숙의 의도. 확실히 과거의 전형적인 박해받는 선인과는 다른 부분이라 하겠다. 한 편에서는 김인숙이 투서를 넣어가며 판을 짜고, 다른 한 편에서는 또 다른 김인숙의 선행의 증거인 한지훈이 움직이며 조현진(차예련 분)을 끌어들이고.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사람이지. 이제야 처음으로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밟으면 꿈틀거려주는 게 예의인 거야." 

매우 이중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김인숙은 박해받고 있고 약자다. 그리고 그녀를 떠받치고 그녀를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것은 그녀의 선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은밀하게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 한지훈처럼 선의 그 자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김인숙의 숨겨진 어떤 의도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JK라고 하는 실체화된 거대한 부와 권력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 그 자체일 것이다. 김인숙을 동정하는 것과 함께 JK에 대한 JK패밀리의 탐욕에도 공감해 버리는 것이다. 김인숙은 그로부터 결코 비껴나 있지 않다.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어쩌면 단순히 JK를 둘러싼 집안싸움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이미 김인숙이라는 확실하게 이입할 수 있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김인숙에 이입함으로써 JK와 공순호라고 하는 강대한 힘은 현실이 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당면한 문제가 된다. 보다 깊이 이입함으로써 그 과정에 대한,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커지게 된다. 특히 이입의 대상인 김인숙에 대해서, 더구나 여전히 드러난 것 없이 두커운 비밀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기에 궁금증을 더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지훈의 생모로 여겨지는 여성이 등장했다. 김인숙은 그 여성을 '언니'라 부르고 있다. 김인숙과 한지훈과의 진짜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드라마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한지훈과 김인숙의 관계를 눈치챈 조현진의 반응은 바로 다음 이야기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다음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 끝에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지만. 그러나 가장 원초적인 물음이기에. 

간만에 또 한 편의 명품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탄탄한 스토리와 갈수록 긴박감이 넘치는 구성과 연출, 무엇보다 그렇지 않아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매력적인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더욱 힘을 갖는다. 이대로 끝까지 끌고 갈수만 있다면 기대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 정말 멋진 드라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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