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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0.05 06:22

계백 "무왕과 의자, 그리고 왕의 자격, 계백 함정에 빠지다!"

의자왕의 음모와 계백과 은고의 균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차라리 무왕(최종환 분)이 주인공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 역시 왕좌지재는 되지 못하는구나. 어째서 성충과 흥수가 의자왕에 의해 숙청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왕이란 일반 개인과는 다르다. 왕이 인정을 베풀어 권력을 나누면 그 권력이 결국 나라를 혼란케 만든다. 왕이 배려하여 권력을 더불어 누리려 한다면 반드시 그로 인해 나라에 폐단이 나타나게 된다. 왕이 왕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때도 나라에는 혼란이 찾아오게 된다.

당장 KBS에서 방송되고 있는 <공주의 남자>의 배경이 되는 세조의 찬탈만 해도 그렇다. 단종이 왕위를 지키지 못한 결과 도대체 얼마의 사람이 죽어나갔는가. 황보인과 김종서를 필두로 한 당상관 이상 전문관료와 성삼문등의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 그리고 이징옥과 이시애의 반란으로 말미암아 변경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나마 세조가 즉위하여 반대파를 모조리 몰살시키고 왕위를 지키려 했기에 이후의 혼란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다. 만일 세조가 인정을 베풀어 단종 이하 금성대군과 사육신 등 반대파를 고스란히 살려두었으면 이후의 조정은 어떻게 돌아갔겠는가?

명과 후금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려던 광해군의 의도는 분명 훌륭했다. 그러나 미숙한 정치력으로 대북 이외의 모든 정파를 적으로 돌린 결과, 그러면서도 잔인하지도 단호하지도 못했던 탓에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대신 인조가 즉위하여 서인의 입장에서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후금을 상대하는데 가장 중요한 서북면의 전력이 사라져 버린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더 강한 권력을 쥐기 위해 측근을 이용한다. 그래서 후한은 환관들에 의해 멸망했다. 명 역시 환관이란 황제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친위세력이었다. 황제는 바로 이 환관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했고, 그 결과 환관은 황제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다 나라를 망쳐 버리고 말았다. 가장 총애받는 신하가 항상 가장 크게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가 된다. 세조 역시 왕위에 오르고서 공신들을 통제하지 못한 탓에 그들의 부패와 탐학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었고, 정조의 신임을 받아 순조의 장인으로써 그의 후견인이 되었던 김조순은 조선후기 조선을 식물상태로 만드는 세도정치를 여는 주역이 되고 있었다. 정조가 홍국영을 죽인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숙종 역시 자신이 의도하여 권력을 쥐어준 남인의 영수 허적이었건만 그의 전횡을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째서 태종이 지금 와서 높은 평가를 듣는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쥐었지만, 그러나 태종은 건국에 관여했거나 자신의 즉위에 관여한 인사 가운데 하륜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았었다. 심지어 처가인 민씨와 사돈이며 세종의 처가가 되는 심온의 일가마저 몰살시키고 있었으니, 그래서 세종은 외척이나 공신의 눈치를 보거나 할 일 없이 마음껏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대신 세종이 남겨 놓은 종친과 관료들은 결국 문종이 일찍 돌아가고 난 뒤 단종대에 찬탈이 일어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한 폐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왕이 왕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결국 왕조가 몰락하고, 그래서 왕조가 바뀌는 사이 도대체 얼마의 혼란이 있을 것인가? 그로 인해 재산과 목숨을 잃고 안전을 위협받을 백성은 도대체 얼마인가? 그나마 가장 평화적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던 고려와 조선의 왕조교체마저 고려말기의 극심한 혼란과 피폐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더 이상 고려가 고려 자신을 지킬 힘이 없을 때, 그리고 그것은 왕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권문세족으로 인한 폐단의 결과가 가장 컸다.

이대로 형제라고 계백(이서진 분)을 놓아둘 것인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해서 계백이 멋대로 왕명을 어기고 왕보다 더 높은 명성을 얻는 것을 두고만 보고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계백이 전횡을 벌인다면? 혹은 아버지 무진의 일로 무왕과 의자에게 원망을 품고 배반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왕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나라의 문제가 된다. 왕이 오롯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위험요소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신뢰하는 신하도 항상 의심하며 경계하라. 가장 신임하고 있기에 오히려 더욱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당장 은고(송지효 분)만 하더라도 의자의 총애를 받으니 주위에 사람이 꼬이고 그것이 은고로 하여금 왕의 뜻을 거역하게 만드는 빌미가 되고 있지 않던가. 심지어 의자조차 은고가 꾸미는 바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반역을 꾀하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사 반역을 꾸미지 않더라도 그렇게 무리를 지어 왕권마저 넘보려 하는 것이 왕이나 나라에 있어 좋을 까닭이 없다.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다만 은고는 여성이니 온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 방법이 있다.

그런 처지였으니까. 왕이 왕이 아닐 때 생겨날 모든 일들을 겪었던 무왕이었다. 따라서 그는 왕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왕이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하려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기적이어야 한다.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냉혹하고 잔인해야 한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고 버릴 수 있으면 버려야 한다. 그것이 왕이 된 의무다. 괜한 마음 속의 작은 걸림돌로 인해 정치를 망치기보다 오히려 더 탐욕스럽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왕은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다.

사실 한비자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전제왕조에 있어 그것은 거의 정답에 가까웠을 것이다. 왕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왕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왕이 흐트러지면 나라도 역시 혼란스러워진다. 왕이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자체이며, 따라서 왕에게는 개인이 아닌 다른 덕목이 요구되는 것이다.

개인이라면 나라가 위험할 때 기꺼이 죽음을 무릎쓰고 성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이 그렇게 자리를 지키다가 적에게 잡히면 나라는 망하고 만다. 의자왕이 무사히 몸을 피해 부흥군을 이끌었다면 백제는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했을까? 보장왕이 평양성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피해 고구려군을 이끌었다면 고구려의 멸망은 조금 더 늦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고려가 40년 넘게 몽골과 맞서 항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왕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여전히 병력이 남아 있었음에도 조선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임진왜란 당시 전국토가 유린되다시피 했으면서도 끝내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의 차이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선조는 도망쳤고, 인조는 도망치지 못했다. 나라를 지키려다 옥쇄하는 것이 왕의 덕목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조가 의주에서 왕으로써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에 전국의 조선의 장수와 병사들, 의병들조차 의주의 조정을 바라보고 싸울 수 있었다.

성충과 흥수가 진정 충신이었다면 의자(조재현 분)에게 그것을 권했어야 했을 텐데. 하기는 성충이나 흥수나 의자의 신하라기보다는 다른 생각을 가진 동업자에 불과하다. 왕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은고 오래도록 고락을 같이 해 왔지만 역시 온전한 자기 사람이 아니다. 의자가 은고를 탐하는 것이 단순히 여성으로서만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온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당연한 왕으로서의 욕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계백은 어쩔 수 없이 의자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현명한 신하들은 적당히 자신의 권력이나 명성이 왕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뒤로 물러나 왕의 시기와 질투를 피했다. 괜히 자리를 지키려다가는 자기와 일족의 피를 보게 되거나, 아니면 왕의 피를 보아야만 한다. 순진한 것도 그래서 꽤나 성가신 것이다. 그래서 의자가 그렇게 술에 취한 척 물러나 달라 권유한 것이건만. 왕이 스스로 신하를 견제하는데 신하가 남아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충신이 되어 목숨을 내어주거나, 역적이 되어 왕을 죽이는 것 뿐이다.

민주화된 현대의 사고와는 전혀 다르다 할 수 있다. 물론 유교에서 추구하던 왕도정치와도 차이가 있었다. 왕도정치란 사대부의 합의에 의한 정치다. 왕조의 전제적 권력이란 사대부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하고, 사대부의 합의에 의해 최소한 지배층 내부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따른 정치를 펼친다. 지금에 이르러 주권은 사대부 - 즉 시민, 혹은 젠트리로, 다시 모든 국민들에게로 옮겨지며 국가수반은 단지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순간 국가의 운용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에 여전히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일반 개인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왕이 곧 국가이던 전제왕조였다.

과연 작가가 그것을 알고서 무왕을 그렇게 묘사한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래서 차라리 무왕이 주인공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무왕의 무른 모습을 보고 각성하여 의자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면? 하지만 그랬다면 제목이 <의자왕>이 되었을 것이다. 계백이 겪는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의자의 타락과 변절을 보여주기 위해서. 차라리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으로 묘사했다면. 그것이 왕도라며 의자의 가까이에서 조언해주는 신하 하나 쯤은 있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간만에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명쾌하게 왕에 대해 선언하는 드라마를 그다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웠던 것이 올초 KBS에서 방영했던 <프레지던트>였는데, 거기에서 성충이 계백에게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말을 하게 된다. '네가 가희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네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이 있어야 좋은 뜻도 펼칠 수 있다.' 그것은 고스란히 의자에게도 적용된다. 왕이 왕이기 위해서는 친형제라 할지라도 단지 군신으로서만 대해야 한다. 누구도 왕과 같은 위치에 놓일 수는 없다. 우연이든 의도한 것이든 그것이 좋았다.

결국 의자의 계략에 의해 계백은 은고의 숙부 목한덕을 체포하게 되고, 계백을 구하기 위해 정사암회의의 결과를 바꾸려 그리 했던 것이었는데 은고는 계백이 자신을 의심하여 변한 것 같다는 말까지 듣게 된다. 그리고 의자가 은밀히 사람을 시켜 투서를 넣은 것처럼 계백이 발견한 치부책을 조정에 전하자 그것은 다시 은고를 위기로 몰아 넣는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되 신뢰는 깨지고, 다가오는 위기는 은고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차라리 다른 부분을 조금 더 간략하게 처리하고 이 부분에 집중했다면 이것을 영웅의 아이러니에 따른 비극적 상황으로 살려볼 수 있을 텐데. 역시 잡스러운 사족들이 너무 많다.

항상 문제다. 핵심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무엇을 들려주려 하는가? 무엇을 인정받으려 하는가? 이것저것 벌려 놓으면 그 결과 주제가 희석되기 쉽다. 계백을 살리려 했지만 그로 인해 도리어 계백과 이별하게 된다. 자신을 살리려 한 은고를 스스로 의심하여 멀어지게 만듦으로써 계백은 은고를 떠나보내게 된다. 조금 더 명쾌하게 꾸며 볼 수는 없었을까? 그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드라마의 한계일 것이다.

역시 생각하는 것이다. 무왕이 주인공이었다면? 의자가 무왕이었다면? 그리고 조금 더 성충이나 흥수나 은고나 정치적이었다면?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부분에서 개인의 감정과 음모가 우선해 버린다.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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