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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1.28 09:05

펀치 13회 "이호성의 선택, 무엇이 젊은 그들을 타락케 하는가"

한 번의 선택,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딘가를 위해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신을 처음 사면 그리 아껴 신는다. 혹시라도 먼지가 묻을까, 자칫 때라도 타지 않을까, 그러다가 조금씩 먼지가 묻고 때가 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함부로 굴리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주름 생기는 것도 안쓰럽다가 아예 꺾어 신고는 아무렇게나 던지고 밟는다.

양심이라는 것이 꼭 그와 같다. 구겨질까, 늘어날까,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옷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 구겨지고 늘어지고 나면 더 이상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오히려 구겨지고 늘어난 것이 몸에 맞아 더 편하기까지 하다. 더러운 것이 있으면 걸레삼아 닦기도 하다가 아예 나중에는 걸레로 만들고 만다. 양심을 잊게 된다.

▲ SBS 월화드라마 '펀치' ⓒHB엔터테인먼트
처음 한 번이 어렵다. 어려운 만큼 스스로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고치려 노력한다면 어쩌면 그 한 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황과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명이라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그만큼 단단하게 조여졌던 양심의 한계가 느슨해지고 넓어진다. 더 이상 양심의 경고가 들리지 않게 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오히려 양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더 편해지게 된다.

아이들은 처음 자기가 받게 될 벌에 대한 공포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짓말의 결과 돌아오는 벌이 없을 때 그 달콤함에 취하게 된다. 거짓말인 것이 밝혀질 때까지. 혹은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런 순간에조차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쓴다. 혹시라도 자기의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을까. 끝까지 자기는 잘못한 적이 없으며 거짓말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자신마저 속이려 한다. 그렇게 스스로 믿어 버리고 만다.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 그쪽이 덜 아프고, 덜 힘들고, 덜 괴롭다. 편한 곳을 따라가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결국 처음 한 번이었을 것이다. 이태준(조재현 분) 역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떠올리는 순간이 있었다. 댐이 건설되고 고향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부모의 묘를 이장하라고 나온 보상금을 자기 학비로 썼었다. 형 이태섭(이기영 분)이 이태준을 위해 스스로 물로 뛰어들면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것도 물에 잠겨 있는 부모의 무덤이었다. 그렇게 때문에라도 그들 형제들은 성공해야만 했었다. 부모의 무덤을 물에 잠기도록 내버려 둔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성공해야만 했었다. 그것이 그렇게 가슴에 사무치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을 게다. 지금 이태준의 등을 떠미는 것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형 이태섭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다. 여기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7년 전 자신의 아들이 병역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지금껏 자신이 지켜온 소신대로 법과 원칙을 지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최소한 방관했다면 윤지숙(최명길 분)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잠시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조금은 멀리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조차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굳이 타협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굽히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내내 이태준에게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는 박정환의 일격에 허무하게 쓰러지고 마는 허술함을 낳았다. 차라리 아예 그런 자신의 약점조차 무시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독해지거나 혹은 강해지던가. 이태준은 그보다 더 독하고 강했다.

이호성(온주완 분)이 윤지숙의 뒤를 따른다. 상징적이다. 박정환(김래원 분)이 딸을 위한다며 저지른 사소한 부정이 결국 예린(지영 분)마저 추악한 싸움의 한복판에 내던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윤지숙이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앞세워 저지른 잘못된 선택들이 검찰의 개혁만을 바라고 그녀를 돕던 이호성의 젊은 신념과 양심마저 더럽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윤지숙을 따라 조금씩 허용의 한계를 넓혀가는 사이 어느 순간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막다른 절망이 다시 범해서는 안 되는 금기마저 범하도록 만든다. 친구였던 이의 딸을 제물로 새로운 미래를 얻으려 한다. 아마 그 순간에도 그는 끊임없이 그를 위한 변명을 궁리하고 있었으리라.

윤지숙의 잘못된 선택이 박정환으로 하여금 이태준이라고 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검찰 내 권력과 손잡도록 만들었다. 지금의 박정환을 만든 것도 윤지숙으로부터 버림받은 그의 손을 잡아주었던 이태준이었을 것이다. 선배들의 잘못으로 인해 후배들마저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정의와 신념을 위해서. 뒷사람은 앞사람의 뒤를 보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젊은 신진들에게 선배들이란 곧 그들이 살아가야 할 현실이며 미래일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최연진(서지혜 분)을 보는 박정환의 눈이 애처롭다. 그녀만은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차라리 딸이나 여동생을 보는 눈빛에 가깝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들밖에 없다.

개인으로 보자면 이태준은 참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특히 자기의 주위에 무척이나 헌신적이다. 아직 박정환이 그의 곁에 있을 때도, 자기를 배신하고 감옥에 가 있는 조강재(박혁권 분)에 대해서조차. 형과 형의 가족들을 대할 때도 그리 끔찍했었다. 박정환이 자기를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번은 만나서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 같은 개인의 인정이나 선이 검찰총장이라는 공직과 만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자기 자신과 주위에 대한 이익과 배려를 위해서. 차라리 그런 점에서 윤지숙은 주위와의 관계가 깨끗했었다. 딱 하나 끊지 못할 천륜이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딸을 위한 사랑이 부정으로 이어지고 마는 박정환의 모습은 어떤가.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다. 그런데 그 일그러진 모습이 한 편으로 그들 사이에서는 정상이다. 인간의 악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무엇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가. 악으로 이끌고 마는가. 선한 사람은 선해서,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로워서, 정이 많은 사람은 또 정이 넘치기도 해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일희일비하는 대중이 있다. 그런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도하는 언론이 있다.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 관심이 없기에 박정환은 단호하다. 역설일 것이다. 진실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막다른 궁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호성의 한 방에 꼼짝없이 외통수에 걸리고 만다. 딸마저 제물이 되고 있다. 그동안 조용하던 신하경(김아중 분)이 나선다. 다시 상황을 뒤집으려 한다. 어떻게 그들은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해낼까? 아직 남은 횟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윤지숙은 끝났고 이태준은 조강재까지 다시 돌려받았다. 아직 최연진이 이태준의 곁에 남아 있다. 아직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큰 후회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박정환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남긴다. 피냄새보다는 기름 냄새를 맡겠다. 희망이었을 것이다.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서. 믿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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