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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29 08:00

공주의 남자 "이어질 듯 이어질 듯 끝내 이어지지 않는 세령과 승유의 사랑"

마침내 수양대군도 비극의 한가운데 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어질 듯 이어질 듯 도무지 이어지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을 겨우 다시 만나게 되니 한 사람은 화살을 맞고, 이제 겨우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니까 서로의 사정이 두 사람의 사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도 함께 있으려 하니 운명의 엇갈림은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이제 겨우 함께 계속 있으려 하는데 그조차 용납지 않는다.

하기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정혼자인 줄 알았고, 공주라고만 생각했다. 정혼이 취소된 것을 알고 나서도 신분을 속여가며 만났고 그것이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한 사람이 하마트면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거니. 그래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정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끔했다. 그래서 겨우 서로의 진심이 통하게 된 그 날 두 사람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으려는 그 일이 일어난다. 운명은 더욱 가혹하게 흐르고...

그래서 재미있는 것 아니던가. 처음에는 김종서(이순재 분)와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정치적 대립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만큼 실제의 역사를 그대로 압축해 옮겨 놓은 장면은 이순재와 김영철이라는 베테랑들의 탁월한 연기력에 힘입어 시청자를 그대로 TV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비운의 공주 경혜공주(홍수현 분)와 그녀의 남편 영양위 정종(이민우 분)의 비극적인 사랑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제 명실상부 드라마의 주인공은 김승유(박시후 분)와 세령(문채원 분)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앞에 놓인 운명은 가혹하고, 그 운명을 이겨내려는 두 사람의 의지는 비장하며, 그럼에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그 진심은 가련하기만 하다. 무려 21화씩이나 지나서야 겨우 하게 되는 입맞춤이 어찌 이리도 아름답다거나 선정적이기보다는 애처럽고 간절하기만 한가.

드라마란 그래서 결국 비극이라는 것이다. 김종서의 비극적 운명을 안다. 단종의 비극적인 최후를 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마침내 맞이할 비극적인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김종서의 오롯한 왕에 대한 충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연민케 만든다. 단종을 동정하고, 그래서 경혜공주와 정종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안타까워하고 애처로워하고, 사람이란 그렇게 어원래 슬픔 동물인 때문이다. 그리 억울한 일도 많고 분통한 일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다. 기쁜 일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슬픔이 사람의 기억을 사로잡는다.

<공주의 남자>가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모든 비극의 원흉이랄 수 있는 수양대군마저 한없는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마니. 비록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댓가라고는 하지만, 그는 끝내 자기가 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하던 자식으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그 자식을 비천한 노비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고 만다. 한때 고락을 같이 하던 집현전 학자들은 끝까지 그를 거부하고, 자식은 자신을 죽이려던 그들의 모의를 묵인 한 채 자신의 행위를 비난하며 바로 앞에서 머리를 끊고 부녀간의 관계를 끊겠다 선언한다. 마치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고립감이었을 것이다. 그의 잔인함과 탐욕에 치를 떨다가도 문득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독을 곱씹고 있을 때면 불현듯 그를 연민하는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이제 세자로 삼은 큰아들 의경세자마저 죽음을 맞으려 하고. 그래서 그는 왕이 되어 행복했는가?

맥베드의 비극일 것이다. 처음 시작은 마녀의 예언으로부터였다. 하나하나 맞아떨어져가는 마녀의 예언은 고결하고 명예로운 맥베드에게 탐욕과 야심이라는 균열을 만들고, 점차 그를 타락이라는 나락으로 밀어넣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맥베드는 자신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막다른 길을 내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수양대군은 고뇌하게 된다. 과연 자신의 선택을 옳았는가? 자신이 내린 결정은 한 점 부끄럼 없이 타당했는가? 그러나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이제는 그대로 내달릴 수밖에 없다.

솔직히 필자로서는 세조가 말년에 자기가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 후회하며 괴로워했다고 하는 속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비슷한 예가 고려 전기에도 있었다. 외가인 충주 유씨의 세력과 서경의 왕식렴 등과 결탁하여 이복형인 혜종과 그를 따르던 박술희, 왕규 외 3천 여 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고려의 3대 임금 정종이 그 주인공이었다. 아직 왕궁이 도읍인 개경에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개경세력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정종은 불사를 일으키고, 여러 차례 직접 불공을 들이는 등 그들의 환심을 사려 정지적인 쇼를 벌이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정종은 께름칙한 개경을 떠나 그의 지지세력이 있는 서경으로 천도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정종이 일찍 죽으면서 그 짐까지 함께 가지고간 탓에 광종은 한결 홀가분하게 고려의 기틀을 다지는 개혁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세조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이미 말년의 세조는 병이 들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세조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저질렀던 행위들은 성리학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의 건국이념에 비추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사사로이는 숙부가 되어 조카를 내쫓아 죽인 것이 되고, 공적으로는 신하로써 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어린 왕을 살해한 것이 된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만도 계모인 혜빈 양씨와 그녀의 아들인 서형제 영풍군과 한남군, 여기에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친형제 양평대군과 금성대군에, 심지어 조카사위인 영양위 정종은 거열형이라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을 당하고 있었다. 금성대군이 주도한 2차단종복위운동에서는 순흥부의 백성들마저 모의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수 천에 달하는 목숨을 학살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세조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뒤를 잇는 왕들에게도 정치적인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조선의 여론은 불의한 방법으로 부당하게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그의 지지세력들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제스처가 필요했다.

정희왕후가 굳이 단종의 미망인인 정순왕후나 동생과 남편을 잃은 경혜공주를 보살피는 제스쳐를 취한 것도 바로 그러한 연장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여론이 정순왕후와 경혜공주를 동정하고 있기에 그들을 보살피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써 등을 돌린 여론을 달래보려 시도한 것이었다. 더구나 왕은 병이 들었고 병으로 신음하면서도 유학자들과 싸우며 불사를 일으키고 불공을 들이며 죄를 씻으려 하고 있으니. 결국 세조의 죽음이 그가 저지른 죄로 인한 것이라고 하는 세간의 인식은 그러한 세도의 의도가 어느 정도 사람들 사이에 먹혀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조가 자기가 지은 죄를 모조리 짊어지고 벌을 받아 세상을 떠났으니 그를 뒤어 왕위에 오르는 예종은 한결 그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야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드라마답게 드라마는 철저히 속설대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고뇌하는 세조의 모습을 그려내려는 모양이다. 실제 금계필담에서 세조가 자신의 딸과 만나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미 병이 들어 몸이 쇠약해 있고, 그래서 지난 날의 죄를 참회하며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 불공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하여 자식까지 두고 있는 자신의 딸을 마주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드라마의 마지막 역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세조의 병든 말년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김승유로 끝나지 않을까. 과연 장인이기도 한 세조를 김승유가 용서할 것인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기는 비극의 주인공이라 한다면 신면(송종호 분)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두고 자신의 아버지 수양대군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세령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그 역시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말미암아 원하지 않은 죄를 짊어지게 된 존재였을 것이다. 후회란 허락되지 않는다. 수양대군이 그러했듯 더 이성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으로 달려가는 것 뿐. 차라리 김승유를 원망하고 그를 증오하여 죽이려는 것으로 그는 자신에게 씌어진 가혹한 죄의 굴레를 잊으려 한다. 자신은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친구인 김승유를 배반한 것도, 그의 가족을 죽인 것도, 심지어 스승인 이개와 정종마저 죽이려 하는 것도. 이제는 과연 세령을 사랑하여 집착하는지, 아니면 세령을 통해 다른 무엇을 증명하고자 하는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의 눈빛은 항상 난폭하고 잔인하면서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다고 다른 선택을 했을 리 없다는 것이 신면의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진정 비극일 것인다.

하여튼 수양대군마저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며 드라마는 차극치근 대미를 향해 나아간다. 애초의 의도와는 많이 틀어졌지만 수양대군을 향한 김승유의 마지막 반격을 위해, 그러면서 역사에 기록된 대로 그것을 실패로 이끌기 위해, 그러나 과연 김승유와 세령의 사이는 비극일 것인가? 그나마 희망이 남아 있을 것인가? 전라와 경상의 지방관들이 동참하고, 총통위의 옛 김종서의 부하들마저 호응하며, 오히려 이제까지 없었던 스케일의 싸움이 준비된다. 그리고 애절한 입맞춤과 간절하면서도 달콤한 고백 끝에 또 한 번의 이별이 예고된다. 그렇게 김승유와 세령의 입맞춤은 길고도 진했고, 세령을 안으며 안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는 김승유의 고백은 사랑스럽기만 했다. 이대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면 그 원망을 어찌 감당하려는지. 역사를 비틀어 다시 한 번 시청자를 놀라게 하려는 그 의도를 기대해 본다. 단종의 죽음은 역사에서처럼 무기력하게 목이 졸려 죽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과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인가?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자존심인가? 그것은 빙옥관의 주인 초희(추소영 분)에게 있어 너무나도 잔인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님 조석주(김뢰하 분)를 살리려 그가 지키고자 하는 바를 누설한다면 그는 평생 자신을 원망할 것이고, 그렇다고 그가 지키고자 하는 바를 함께 지키려 한다면 조석주를 영영 잃게 될 것이다. 원망하더라도 살아있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사랑받는 채로 죽기를 바랄 것인가. 끝내 조석주를 살리고 조롱섞인 신면의 말에 눈물을 보이고 마는 초희나, 그런 초희를 원망하면서도 혀를 차고 마는 조석주나, 그러나 사랑이란 이기적인 것이기에. 상대를 위한다 하지만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이기는 이타가 되고 이타가 이기가 된다. 조석주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리고 그런 조석주를 지켜보는 초희의 운명은?

숨가쁘게 흘러간다. 사실은 김승유와 세령을 위해 조금은 느슨하게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경혜공주마저 임신을 하고 있으니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여유로 부리고, 작은 성취감에도 젖어 보고. 우정과 사랑에도 취해보고. 그러나 그럼에도 드라마는 대미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간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이제 오늘 정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신면에게 잡힌 세령은 어찌 될 것인가? 그리고 김승유와 그가 꾸미고 있던 거사에 대해서는? 항상 기대하며 기다리며 보게 된다. 운명의 잔혹함이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과 열정에 더욱 이끌리게 만든다. 항상 행복했으면. 드라마라는 것을 잠시 잊는다. 그 마음졸임이 즐겁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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