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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14 07:29

계백 "사택왕후의 치밀한 음모, 그러나 너무나 허술한 뒷처리..."

이번에도 긴장과 재미는 의자왕과 함께 여유롭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예상한대로 그 모든 것은 사택왕후(오연수 분)의 계략이었다. 사택왕후와 사택적덕(김병기 분), 기미(김중기 분)가 짜고 연문진(임현식 분)과 내부의 불순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을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문제였다.

물론 사택왕후의 힘은 연문진과 그와 결탁한 귀족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사택왕후와 사택적덕이 바로 앞에 나타났는데 사택왕후가 동원한 군사력 앞에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투항하고 만다. 문제는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스토리가 표류하고 있는 이유다. 모든 힘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없던 힘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의자(조재현 분)가 성충(전노민 분), 흥수(김유석 분), 계백(이서진 분)과 의형제를 맺는 과정이 그렇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의자는 성충과 흥수, 계백과 의형제를 맺었고 그들이 이끄는 까막재 마을을 숨겨진 힘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사택왕후는?

그게 없으니까 의자를 비롯 그나마 머리 좀 쓴다는 성충과 흥수마저 아무런 대책없이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왕(최종환 분)은 현명하다. 도대체 사택왕후가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을 알 수 없으니 조용히 죽어 지낸다. 그 힘만 알 수 있다면. 그에 비하면 사택왕후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덤벼들었던 연문진은 어리석다 할 밖에. 사택왕후의 힘이 따로 있는데 표면만 건드려서 과연 그녀를 죽일 수 있겠는가.

사택왕후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고 있을까? 일단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귀족으로써 점유하고 있던 대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일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따로 사병도 길렀을 것이고, 귀족이며 관료, 군부 가운데 매수하여 세력도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택적덕이 기미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조차 계략의 시작이라 할 정도로 그들의 경제력은 왕실의 재정을 위협하는 수준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어떻게 꺾는가? 연문진이 생각이 있었다면 그 부가 사택씨의 세력에게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했을 것이건만. 그래도 사택적덕에 충성하던 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 그가 죽은 이유일 것이다. 품은 뜻과는 달리 너무 아무런 준비 없이 성급하게 달려들었다.

어쨌거나 문제다. 대좌평까지 지냈던 웅진귀족의 수장 연문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택시의 힘에 대해 과연 성충과 흥수는 어떻게 알아내고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오랜 시간 사택왕후의 측근에서 신임을 얻고 있던 은고(송지효 분)마저 알아내지 못한 사택왕후의 힘이다. 그것을 모른다면 불의의 기습으로 사택왕후와 사택적덕, 교기를 죽이는 것이 최우선인데. 200명 남짓의 까막재 마을로 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전부다. 그래서 은고와 계백은 사택왕후의 측근에 숨어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아무튼 참으로 공교롭게도 사택왕후가 파놓은 함정에 의자가 제 발로 장인 연문진과 함께 들어가려던 순간 계백이 그것을 듣고 만다. 그런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경비 하나 세우지 않은 것도 웃기는 것이고, 계백이 들어왔다가 나간 사실을 끝가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더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닥친 최악의 위기에서 의자는 별 위험 없이 몸을 빼내고 만다. 계백이나 은고 역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죽은 것은 연문진 뿐. 참 세상살이가 쉽다.

그러니까 말하는 것이다. 도무지 긴장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졸이며 혹은 욕하고 혹은 안타까워하며 안달하는 그런 맛이 없다. 뜨뜻미지근하게 연문진의 거사에 동참할 것인가를 두고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거사에 동참하려는가 싶더니 사택왕후의 음모가 드러나는 순간 다시 바로 미리 알고 발을 빼고. 차라리 거기서 거사에 동참했다가 의자 또한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압도적인 힘 앞에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저항하는 가운데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몸을 빼 절로 숨는다. 자발적으로 연태연(한지우 분)을 살리기 위해 출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가한다. 보다 더 절박하게. 더 처절하게. 더 비참하게. 그래서 사택왕후에 대한 적의를 드높일 수 있도록.

그런 점에서 한 가지 부분은 좋았다. 연태연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그것을 사택왕후에 들키지 않기 위해 의자가 노심초사하는 부분이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사택왕후의 눈을 피하려는 노력과 책략이 더해졌다면 한결 재미있었을 테지만 과연 연태연의 아이가 사택왕후의 눈에 뜨일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다만 그 아이가 부여효인가? 부여융인가? 부여융이라기에는 너무 이르고, 부여효라기에는 연태연이 부여융의 어머니로 설정되어 있었다. 아니면 아예 갓태어난 아이를 사택왕후에 의해 잃고 마는 것일까? 그 부분이 어떻게 묘사되는가도 지켜볼만 하겠다.

하여튼 이 역시 드라마의 허술한 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의자가 출가해 있는데 의자와 연태연을 감시할 사람 하나 붙이지 않는가? 하긴 사택왕후는 그리 의자를 죽이려 하면서도 정작 의자가 자주 찾는 까막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계백은 귀운(안길강 분)의 뒤를 밟아 위제단의 본거지를 알아냈는데, 사택왕후는 의자의 뒤를 밟을 생각조차 않고 있다.

은고나 계백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은고는 의자매로 삼을 정도로 신임하니 그렇다 하더라도 계백은 도대체 어떻게 주위에 감시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인가? 자기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기 전에 먼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믿을만한 존재인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사택왕후의 명령에 따라 연문진을 죽이려 할 때도 너무 오랜 간격이 있었는데 사택왕후는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은고에 대해서도 아무리 의자매로 삼을 정도로 신임한다지만 그같은 급박한 상황에 종적조차 알 수 없었는데 그녀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은 어째서 없었던 것일까?

하긴 그래서 계백이 미리 계획을 알아내고 의자를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동안은 은고가 그렇게 의자를 살렸다. 사택왕후는 바보같이 매번 당하기만 하고. 다른 면밀한 계략이나 준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치트처럼 사택왕후의 가까이에 계백과 은고가 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러니 사택왕후는 계백과 은고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기왕에 연문진을 죽이는 것 굳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사적으로 계백을 시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공주의 남자>를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의자가 사택왕후에게 일격을 가하는 방식은 수양대군의 그것을 닮아 있을 테지만, 연문진 이하 자신에 반항하는 세력들을 숙청하는 방식 역시 계유정난으로 반대파를 씨몰살한 수양대군을 닮았으면 어땠을까? 비참한 몰골로 백성들 앞에 짐승처럼 끌려나와 처참하게 수많은 일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그러한 잔혹함이야 말로 연태연이 구사일생하는 의미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가? 의자왕이 겨우 살아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뜨뜻미지근. 뭔가 화끈하게 달려드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비장하게 원통해 하는 것도 없다. 가끔은 졸린다.

영웅이 영웅인 것은 그에게 시련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주인공인 이유는 그의 앞에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고 고난을 이겨내며 성공을 이룰 때 시청자도 함께 기뻐하며 희열을 느끼게 된다. 시련이 클 수록, 고난이 깊을수록, 그래서 시청자는 더욱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에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계백>은 어떠한가? 하기는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조차 손도 닿지 않는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여유롭다.

다음주쯤 계백이 마침내 사택왕후에게 그 정체를 들키고, 은고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계백을 공격하는 장면을 기대해 본다. 까막재 마을은 불타고, 성충과 흥수는 뿔뿔이 흩어진다. 무왕마저 사실상 감금된 상태에서 의자에게 허락된 것은 절망 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택왕후의 뜻대로 돌아가려는 듯 모두가 비참해 있을 때 한 방의 큰 반전이 일어난다. 사소한 계기로 다시 모인 의자와 성충, 흥수, 계백이 마지막 죽을 각오로 사택왕후를 공격하여 마침내 사택씨를 제거하게 된다. 조금은 급박하게 진행되어도 좋지 않을까?

힘이 빠졌다. 역시나 사택왕후의 계략이었구나. 이만하면 주인공들에게도 시련이 되겠다. 그러나 어느새 미리 알고 빠져나가는데는 이게 대체 뭐하는 것인가. 역시 너무 급하게 대본을 쓰는 까닭일까? 그나마 기대했던 이상의 실망이었다. 아쉬움조차도 없었다. 결국 이것이 <계백>이로구나.

보다 더 타이트하게 조일 필요가 있다. 악박하여 쥐어짤 필요가 있다. 시청자를 쥐어짜야 한다. 화나도록. 안타깝도록. 원통하도록. 그래서 원망하고 증오하도록. 악역이 욕을 먹어야 드라마가 산다. 아직은 너무 약하다. 너무 착하고 너무 허술하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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