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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12.07 11:18

미생 16회 "회사는 전장, 회사밖은 지옥, 시련은 셀프!"

오상식의 일갈 '취하지 마라!', 냉혹한 현실을 말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람이 자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수단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용자의 논리일 것이다. 장그래(임시완 분)가 비정규직의 현실을 보여주었듯이, 상당히 과장된 성대리(태인호 분)의 모습을 통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아니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사실 하청공장도 아닌 계열사 공장에 일개 대리가 저리 안하무인일 수는 없다.

10명이 필요한 일이면 만일을 대비해 12명 정도를 고용한다. 100%란 만일의 아주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항상 여유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성대리가 그래도 일은 잘한다는 설정이 바로 여기에서 흔드리고 만다. 아무리 일을 그리 잘 알고 잘 하는 사람이 오더를 내리면서 무리하게 물량과 일정을 잡는가. 항상 혹시 모를 만일을 생각해서 여유를 두고 대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못하겠다고 반발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란 윽박지르는 것밖에 없다.

아무튼 100%라도 문제가 되는 것을 그 이하로 고용하고서 오로지 노동자의 열정과 노력에만 기대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상적인 잔업과 야근, 심지어 휴일근무까지, 그러고도 부족한 인원은 계약직으로 채운다. 장그래는 성대리가 그렇게 강조하는 노후라인과 닮았다. 비상상황이 지나면 바로 멈춰야 하는 한시적인 수단이다.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수단이지만 그러나 불필요한 라인을 굳이 늘리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다. 하청업체와 계약하는 것보다도 한참 싸다. 회사업무가 끝나면 돌아가야 할 노동자 개인의 사정은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각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자신의 삶이 있다.

▲ 미생 포스터 ⓒtvN

회사니까. 천관웅(박해준 분) 과장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째서 장그래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장그래가 그토록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수고와 노력을 바쳐온 시간들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10명 이하라면 모두를 개인으로서 인지하고 대할 수 있겠지만 단위수가 달라지면 그때부터 개인은 단지 숫자가 되어 버린다. 고작 서류 몇 장이 그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 무리한 오더를 맞추느라 노후라인을 돌리다가 손가락을 잃었어도 고작 수백, 수천의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일에 불과하다. 노동력을 잃었으면 그에 맞는 다른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효율까지 고려한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사정이나 이유들까지 모두 살피기에는 거기까지 회사의 눈이 미치지 않는다.

오상식(이성민 분)은 안다. 장그래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하는지. 얼마나 가능성있는 유망한 인재인지. 장백기(강하늘 분)도 동기로서 그런 장그래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질투할 정도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서만 달라져도 장그래란 단지 장그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신입사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진다. 단지 정규직과 계약직 가운데 계약직에 속하는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오상식이 장그래에게 하는 것처럼 전혀 상관도 없는 기획실에서 인정을 베풀고 배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장그래가 아무리 아까워도 계약이 끝나고 회사를 나가면 새로운 계약직을 채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아마 장그래만이 아닌 김동식(김대명 분)도, 천관웅(박해준 분)도, 직접적인 다른 인연이 없는 한 그저 지방대 출신 대리와 경력직 출신의 과장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전무(이경영 분)가 새삼 장그래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비로소 자기가 부탁을 받고 그를 인턴으로 입사시켰음을 떠올린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이야기처럼 수많은 신입사원 가운데, 수많은 계약직 가운데 장그래만이 최전무에게 특별한 이름으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둑두러 가끔 올라오라!"

장그래로 인해 상당한 자기 라인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최전무는 원인터네셔널의 실세 가운데 하나다. 라인이 사라졌으면 새로운 라인으로 채우면 된다. 오상식은 원래 최전무의 사람이었다. 오상식 차장의 사람됨과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장그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검정고시 출신에 계약직이지만 여러가지 일들로 그 능력과 재능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많은 자기 라인이 장그래로 인해 사라졌지만 그것은 곧 장그래의 실력이기도 한 것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필요하면 손잡고, 필요없어지면 단호히 손을 놓아 버린다. 능력이 안된다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대로 맡겨야겠지만 최전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만한 충분한 실력까지 갖춰져 있다. 오상식 차장이 필요하고, 장그래도 한 번 눈여겨 볼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 손을 내민다. 오상식에게도 장그래에게도 이것은 기회다. 원작보다 더 노골적이다. 더 직접적인 동기와 이유를 보여준다. 굳이 최전무가 비협조적인 오상식과 영업 3팀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가 개연성있게 그려지고 있다. 천관웅 과장이 직접 최전무에게 부탁하고, 최전무는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장그래를 눈여겨 살핀다. 바로 오상식에게 부장을 통해 기획서가 내려간다. 역시 원인터네셔널 정도 되는 대기업의 실세라면 그런 정도 배포와 계산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일 게다.

과연 장백기는 엘리트다. 장백기가 자기가 가진 스펙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정당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노력했다.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며 노력해 왔다. 그래서 그만한 스펙을 가지고 마침내 원인터네셔널이라는 대기업에까지 입사할 수 있었다. 장그래보다 자기가 더 낫다고,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결국 공정한 경쟁에 의해 그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계약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한 노력들을 부정당한다. 단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들을 양보해야 한다. 분노할 줄 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정의롭지도 않다. 비로소 장그래를 인정한다. 단지 지금까지 다른 룰로 경쟁해 왔을 뿐이다. 바른 사람이다. 그리고 아직 많이 순진하고 순수하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이 정의되고 결정된다. 아직 미약하다. 그래서 한석률(변요한 분)은 말을 잃어버린다. 말은 정의다. 질서이며 규범이다. 말이 의미가 없다. 문득 말을 한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안영이(강소라 분) 역시 한동안 말을 잊는다. 사실을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한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부조리가 합리가 된다. 아직 그들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석률은 과장에게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기회가 주어진다.

시련은 셀프다. 대부분의 시련은 자기의 지금 위치, 지금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시련이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로 무언가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짓인가.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간다. 상대에 맞춰서 그나마 안영이는 운이 좋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동료들이 있다. 과장 역시 안영이에게 핑계를 만들어준다. 마부장의 강요가 아닌 같은 팀 과장의 부탁이다. 물론 그래도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동료를 핑계삼는다. 마부장에게 처음으로 저항한 정과장(정희태 분)의 주위로 자원 1팀이 모인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회사의 일이란 연속성이 중요하다. 이번 일만 하고 말 것이 아니다. 거래처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회사의 일이란 회사에 속한 직원들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앞으로를 생각한다. 불과 몇 개월 뒤면 계약이 끝나 회사를 떠난 계약직보다는 앞으로도 계속 남아 회사를 위할 정사원들을 고려해야 한다. 몇 개월 뒤면 장그래는 남이다. 그것이 계약직이다.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는 단지 우리를 위한 한시적 '수단'. 쓰임이 당하고, 계약이 끝나면 그들은 남이 된다. 그 경계가 너무 서럽다. 차라리 원작과는 달리 스스로 기획안까지 통과시켰기에 그 서러움은 더 커진다. 그것이 현실이다.

회사는 전장이지만 회사밖은 지옥이다. 대기업은 울타리다. 대기업은 대자본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스스로를 지킬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업이 자신을 지키면 기업에 속한 직원들 역시 기업에 의해 지켜지게 된다.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다. 골목상권에까지 대기업이 진출한다. 자본을 앞세운 무한경쟁 앞에 소자본의 자영업자들은 무기력하다. 비로소 대기업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가를 깨닫는다. 대기업의 자본과 맞설 수 있는 것은 대기업밖에 없다. 대형마트에서 동네 치킨집, 피자집보다 더 싸게 치킨과 피자, 심지어 순대까지 판다. 자본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 더 이상 기업에 남아있을 수 없어서, 혹은 기업이 자신을 채용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자영업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내려진 또 하나의 시련이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 절절하다. 원작을 읽으며 가장 가슴을 울렸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취하지 마라. 그것은 기대에 대한 말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자기를 믿는다. 자기를 평가하고 자기를 판단하고 그리고 믿어 버린다. 믿음에서 기대가 생긴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기대를 배반한다. 매번 기대하고 배반당하다가는 견딜 수 없다. 하물며 항상 기대를 배반당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면. 한석률처럼. 안영이처럼. 더구나 장그래처럼. 아픈 이야기다. 울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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