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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9 07:53

공주의 남자 "세령, 아버지 수양대군과 맞서다!"

혈육의 정보다 보편의 정의를, 시청자로부터 사랑을 인정받다!

 
바로 그런 것이 권력이라 하는 것일 게다.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하고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스스로 수 백 번 수 천 번을 되물었어요. 어찌 그  자리에 오르고 싶은가? 그 자리의 무엇이 너의 피를 그렇게 들끓게 하는가?"
"답을 얻으셨습니까?"
"답답들 하십니다. 어찌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얻으려 하십니까?"

말한다. 나라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혹은 자기 자신의 뜻과 능력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권력인 때문이다.

마침내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단종으로부터 양위를 받게 되었을 때에도 그래서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린 것이 다름아닌 "부귀영화"였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따위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그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권력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쥐고 싶다. 권력을 손에 쥐고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고 싶다. 그러자면 먼저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신숙주가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아 왕의 자리에 앉은 수양대군에게 왕으로써의 자기 자신을 증명하라 주문하는 것이 그래서다. 먼저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실천과 증명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에 대한 끝없은 의지 앞에 도덕이니 양심이니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단종으로 하여금 양위토록 강요한 수양대군과 특히 신숙주에게 이개(엄효섭 분)가 아무리 준엄한 꾸짖음을 들려주어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자식을 맡기면서는 충의를 가르치라 주문했건만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충의를 저버리고 권력의 편에 섰다. 그러나 전혀 그에 대한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 권력이 그것을 정당화시켜준다.

"세월이 부모간의 정을 되돌려주겠지."

그저 가족에게도 권력을 안겨주면 그것으로 좋아하겠거니. 실제 윤씨부인(김서라 분)이나 둘째딸 세정(서혜진 분)은 그런 수양대군의 의도대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일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권력으로 누르고 그래도 안되면 배제하면 그 뿐.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권력을 탐하는 것이다. 권력이야 말로 도덕이고 양심이고 정의일 것이므로. 아니더라독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왕위에 오르기 전 수양대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무수한 죽음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죽었고 자신은 왕위에 올랐다. 그들을 죽임으로써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배덕의 짜릿함일까? 권력의 달콤함을 비로소 확인하고 만다.

세령(문채원 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수양대군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박히는 이유인 것이다. 그같은 어쩌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낙천에 균열을 일으키는 때문이다. 환영받지 못한다.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어쩌면 틀렸을 수 있다. 그다지 돌아보지 않던 양심이라는 것이 아끼는 가족으로 인해 어느새 표면으로 드러나고 만다. 가족으로부터 비난을 들으며 그는 상처입은 짐승이 되고 만다. 여전히 그의 에고는 자신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대립이었다. 세령과 마주하는 세 남자, 수양대군과 도원군 숭(권현상 분)과 신면(송종호 분). 권력과 권력을 쫓는 자기 자신에 취해 버린 수양대군과,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아버지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동생 숭이, 그리고 운명이라 여기며 자신에 주어진 선택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신면. 신면은 외친다.

"아무리 달아나려 한들 아가씨는 공주가 되고 난 부마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면 자신에 대한 외침이기도 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한들 신숙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수양대군은 야심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테고, 신숙주는 이미 수양대군의 편에 서 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실패한다면 자신 역시 그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가문을 위해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세령을 얻기 위해서도. 그래서 어차피 달아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려 든다. 자기는 단지 피해자일 뿐이라고.

신면이 세령에게 분노하는 이유다. 세령은 그가 가지 못한 또다른 길이다. 어쩌면 그의 앞에 놓여 있었을 다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양심과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고 세령은 그러려 하고 있다. 신면이 어느 때보다 상처입은 얼굴로 세령 앞에서 먼저 몸을 돌리고 마는 것은 그런 세령의 당당함을 통해 어느새 애써 달래고 묻어두었던 자신의 죄가 깨어나는 것을 느낀 때문이었다. 욱신거리며 참을 수 없이 화가나며 아프다.

아마 그 일만 아니었어도 신면은 김승유(박시후 분)의 생존을 보다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전부터도 신면은 어렴풋이 김승유의 생존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납치를 당한 세령이 정작 납치범을 감싸려 들 때. 그리고 더욱 강경해진 세령의 태도에서. 더구나 죽은 온녕군의 시신 위에 피로 쓰여진 대호(大虎)라는 글자는 김승유의 아버지인 김종서의 아호였다. 그래서 신면도 김승유가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을 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뛰어가 막아선 것이 아니던가. 단지 무의식 가운데 무언가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 양심이라기보다는 어느새 깨닫고 만 자신의 죄를 마주하기가 두려운 비겁함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에 어쩌면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수양대군과 아들이기에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는 도원군 숭, 그리고 자신의 죄마저 애써 묻어둔 채 운명이라는 이름 뒤에 도망쳐 숨으려 드는 신면. 하기는 수양대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김승유 또한 그 복수라고 하는 당위 뒤에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감추려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아버지와 형이 그렇게 비명에 갔어도.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가족은 모조리 뿔뿔이 흩어지거나 죽임을 당했어도. 그러나 살아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복수를 마치더라도 그가 이미 풍비박산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나 죽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그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김종서의 이름을 후대에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그의 의무다.

그런데 그는 죽음을 생각한다. 복수를 다짐하면서도 그 끝에 죽음을 생각한다. 무엇때문일까? 그로 하여금 사는 것을 거부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로 하여금 삶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은? 조석주(김뢰하 분)가 세령을 납치해 멀리 가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라 했을 때 김승유가 지어 보인 번뇌어린 아련한 표정은 바로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절대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도저히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을 그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도망치려는 것이다. 더 잔혹한 복수로써 자신을 다그치며.

그래서 참으로 9월 8일 <공주의 남자> 16화의 엔딩이 얄궂었다. 그렇게 복수를 다짐하며 칼을 벼리고 있는데 어느새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세령의 모습이라니. 신면이 그를 보려는 순간 문득 튀어나온 세령의 손이 신면의 눈으로부터 그를 감추어 준다. 그토록 자신을 다그치도록 만든 세령의 앞에서 김승유는 다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아무튼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함에 따라 드라마에도 일대 전환점이 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수양대군은 세령의 아버지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죽이려는 김승유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실제 아버지 김승유를 죽이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위협하는 김승유를 심지어 돕기까지 하려는 것은 자칫 패륜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아무리 비련의 사랑이라도 그것이 패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 세령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두 사람의 사랑에 비장함을 더해야 하는데, 바로 수양대군의 찬탈이 그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딸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천륜일 것이다. 그러나 신하로써 왕을 위협하고, 숙부로써 조카의 왕위를 빼앗으며, 권력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명 - 즉 보편적인 정의에 위배되는 행위일 것이다. 천륜을 쫓을 것인가. 천명을 쫓을 것인가. 동생 숭은 인정에 이끌리기에 천륜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숭이 동경해마지 않는 우이 세령은 천명을 선택했다. 세령의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아버지를 죽이려는 김승유에 대한 사랑은 그로써 정당성을 얻는다. 수양대군이 악이 됨으로써 수양대군을 죽이려는 김승유와 그를 도우려는 세령의 감정은 비극으로써 비장함을 더하며, 또한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역사에서보다 수양대군이 더 강하고 더 악하게 묘사된 이유일 것이다. 그래야 세령이 수양대군을 거역하려는 의도가 정당화될 수 있을 테니. 수양대군이 더 비정하고 잔인해질수록 김승유의 수양대군에 대한 적의는 당연한 것이 되고, 그런 김승유를 도우려는 세령의 행동 또한 부모자식의 정마저 돌아보지 않는 의로운 선택일 수 있다. 명분이 주어진다. 명백한 악에 대항하는 불운한 두 남녀에 대해 더욱 시청자들은 자신을 이입하며 그 비극을 체화하게 될 것이다. 비극이 심화된다.

불의한 일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해 당당히 거역하며 맞서는 세령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 곱고 여기기만 한 아가씨이지만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단호하다. 당당하며 솔직하다. 한 나라의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을 앞두고도 그녀는 굽힘없이 아버지 수양대군과 맞선다. 동생 도원군 숭을 다그치고 신면을 질타한다. 그야말로 이번 회차의 주인공이라 할 것이다.

혈육의 정과 보편적 정의와. 옳지 않더라도 혈연을 쫓을 것인가. 혈연은 저버리더라도 옳음을 쫓을 것인가. 물론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정 또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하필 신면 옆에서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무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공칠구도. 그 순간 신면의 표정이 불편해 보인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수양대군이 즉위하는 순간 공칠구 밑에 있던 부하들은 인망을 쫓아 조석주에게로 돌아오고, 공칠구는 신면과 더불어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던 조석주를 공격한다. 그리고 세령은 그러한 신면으로부터 마침내 김승유를 구해내어 다시 얼굴을 마주한다.

이개의 말이 곧 이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어른들이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수양대군의 야심이 아니었다면. 그 야심을 제대로 제어할 수만 있었다면.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배운다. 부쩍 어른이 되어 간다. 당당하게 홀로 서려는 세령이 그래서 아름답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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