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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1.29 04:31

미생 13회 "서로 다른 그라운드에서, 탯줄을 끊지 못하다"

서로 다른 조건, 다른 환경, 다른 현실에 적응하며, 아직은 서로 동기로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모두가 같은 출발선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는 자신의 재능과 실력과 노력에 의해 승부는 결정지어질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떤 부서에 배치되고, 어떤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그래서 어떤 일을 하게 되고, 결국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이다. 장그래(임시완 분)는 영업 3팀에 배치되었고, 장백기(강하늘 분)는 철강팀에 배치되었다. 안영이(강소라 분)는 하필 자원팀이다.

어떤 집안,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 어디에서 어떤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는가. 어떤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에게 어떤 친구들과 어떤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는가. 형제는 몇이고 누구이며, 친척과 친구들은 어떠한가. 어쩔 수 없이 대학진학에 있어서도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 혹은 사는 지역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재능 같은 노력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엘리트가 되고 누군가는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많은 것도 아니다. 아주 작은 차이 하나로도 평생이 결정되기도 한다. 인간은 평등한가.

▲ tvN '미생' 웹툰과 드라마 이미지 ⓒtvN

만일 장그래가 바둑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남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진학해서 스펙을 쌓았다면. 물론 모르는 일이다. 굳이 바둑이 아니더라도 다른 일로 중간에 남들과 엇갈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 굴지의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벌써부터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충분히 그런 상상들을 해 볼 수 있게끔 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특출나다. 다른 동기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할 만큼. 그러나 만일 장그래가 아닌 장백기가 영업 3팀에 들어갔다면?

이미 인턴시절부터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장그래에게는 일이 주어지고 있었다. 일 말고 다른 것은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으려는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의 성향도 크게 작용했다. 일만 장하면 고졸이든 계약직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당장 요르단 중고차 수출건만 하더라도 장그래의 제안에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와 천관웅(박해준 분) 과장은 처음부터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모한 제안을 했다며 몇 차례 드러내놓고 질책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단지 타당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그래의 제안을 밀어붙인 것이 오상식 차장의 의지였다. 장그래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장그래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밀어붙인, 그것을 실제 사업으로 구체화시킨 오상식 차장과 영업 3팀이 대단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 하긴 그 정도 혜택은 있어야 고졸학력에 계약직이라는 신분으로 장백기 등 다른 입사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업 3팀과 철강팀은 하는 일이 다르다. 각자 팀원에게 요구하는 자격이나 요건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영업 3팀과 자원팀 역시 인적 구성이 전혀 다르다. 영업 3팀에서 하던 것처럼 자원팀에서 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강해준(오민석 분) 대리와 성대리가 서로 다른 상사인 것처럼 결국 자신의 상사에 맞춰가야 한다. 신입의 서러움이다. 일방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룰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주제들인 것이다. 아직 철강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이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신입사원들인 탓이다. 서로가 다른 그라운드 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무작정 경쟁하려 한다. 어렸을 적 아직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놓인 조건이 다르고 가진 재능이 다름에도 무조건 등수로만 서로의 위치를 가늠하려 했었다.

햇병아리 신입사원들이 조금씩 자신이 속한 부서에 녹아들며 서로의 다른 처지와 입장을 드러낸다. 장그래는 영업 3팀이고, 장백기는 철강팀이고, 안영이는 자원팀이고, 한석률은 섬유 1팀이다. 서로 다른 그라운드에서 자신들만의 게임을 시작한다. 아직 신입사원이라는 탯줄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힘들 것이다. 장그래가 속해 있는 영업 3팀은 현실에 거의 없는 단지 판타지에 불과하다. 아니 장백기의 상사인 강해준 대리만 하더라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일 것이다. 동기의 위로는 때로 자신이 회사에 완전히 적응하고 녹아드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위로받는다는 것은 아직은 자신을 고집해도 좋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백기도 위로가 아닌 상의가 필요할 때는 상사인 강해준 대리를 찾는다. 자기에게 필요한 지혜를 빌려줄 사람은 동기가 아닌 팀의 상사인 강해준 대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댈 곳이 있고 위로받을 곳이 있으니 아직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장그래의 현실적 고민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차라리 일을 못했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아직 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팀이나 회사에 대한 어떤 애착도 기대도 생겨나지 않았더라면.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고 말았다. 그래봐야 2년 짜리.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나마 회사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오상식 차장의 위로가 힘이 되어 준다. 그래도 인정받고 있다. 팀의 일원으로 존중받고 있다.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은 멀기만 하다.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의미없는 2년은 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장백기는 엘리트다. 항상 경쟁에서 승리해왔다. 최고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저 밑에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라는. 그것은 자기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예민해져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아무에게도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비교가 되도록 조건이 다른 장그래였기에. 안영이였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장그래는 알지 못한다. 묘하게 디테일한 현실의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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