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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11.25 08:56

오만과 편견 8회 "사건과 일상의 경계에서, 지금 여기의 이야기"

여유속에 힘을 비축하는 어색한 치열함과 긴장의 재미속에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오래된 서부영화를 보면 최고의 총잡이들은 항상 총을 뽑는 그 순간까지 일부러 농담까지 하며 여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무협영화에서도 가장 뛰어난 고수는 마지막까지 그 정체를 감추며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기 일쑤다. 이제는 하나의 클리셰다. 누가 가장 강한가. 가장 강해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굳이 총도 뽑기 전에 긴장하느라 기운 뺄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심각하다. 아니 처절하다. 13년 전 어린 동생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화목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이 찢기고 부서진 채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 현장을 목격했다. 아이가 납치되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보고서도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차마 잊을 수 없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만났다. 이해할 수 없는 헤어짐 끝에 다시 서로의 상처를 헤집으며 멈췄던 시간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벌써 5년 전에 자식을 잃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 무엇보다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지나온 시간들이 있었다. 놓아버린 시간들이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그들 사이를 맴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동생이 죽임을 당했는지 진실을 밝히고서야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어쩌면 사소하면서도 가볍다.

▲ 오만과 편견 포스터 ⓒMBC

마약상을 체포하려던 작전이 송아름(곽지민 분)에 의한 과거 연쇄살인범 판다의 살인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로부터 주윤창(진선규 분)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다. 느닷없이 차장 오도정(김여진 분)은 문희만(최민수 분)를 불러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과 술자리를 갖고, 그곳에서 문희만에게 누군가 종이상자를 건네준다. 이장원(최우식 분)에게 문희만이 직접 건넨 취업비리 사건의 관계자 가운데 주윤창과 혈연관계로 여겨지는 주상훈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주윤창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 김재학의 후원자 명단에 주상훈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채용과 관련한 부정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수출입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산자위 소속의 국회의원이었다.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이장원은 헐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구동치(최진혁 분)는 그나마 한열무(백진희 분)의 마음을 돌리는데만 열심이다. 그깟 사건들따위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문희만 자신이 그렇다. 더 이상 송아름과 관련해서 수사를 중단하도록 지시를 내리고서도 정작 구동치와 한열무가 송아름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알아도 모른 척 눈감아준다. 이장원에게는 송아름에게서 나온 이름 가운데 하나인 주윤창과 관계된 것으로 여겨지는 주상훈의 이름이 언급된 취업비리 사건을 맡기고, 그런 한 편으로 오도정의 초대를 받아들여 의도를 알 수 없는 상자까지 받아 챙긴다. 굳이 바로 거절하지 않는다. 자신은 이번 사건에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럴 의도도 의지도 없다. '고'인지 '스톱'인지를 묻는 구동치에게도 스톱임을 강조하며 찌를 것 아니면 칼을 빼지 말라 압력을 가한다. 확실하게 찌를 자신이 없으면 칼을 빼지 말고, 칼을 빼지 않을 것이면 칼에 손을 가져가지도 말라. 자신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스톱'이다. 이전의 사건들도 그렇게 해결했었다.

아직 혐의사실도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는데 지레 힘뺄 필요는 없다. 혐의가 드러나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것이 자기를 해쳐가면서 수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찌르는 순간만 날카로우면 된다. 베는 순간에만 힘이 들어가 있으면 된다. 검사의 칼끝은 범죄자를 향해야지 검사 자신을 겨누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검사도 자기파멸형 검사는 이제 인기가 없다. 클럽도 가고, 연애도 하고, 시시껍적한 잡담이나 나누면서도, 그러나 범죄를 쫓는 눈만큼은 언제나 목표를 쫓고 있어야 한다. 한가로운 가운데 미묘하게 느껴지는 압박감과 긴장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다. 구동치가 한열무에게 작업걸고 그녀에게 고백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여전히 13년 전과 지금의 범죄를 치열하게 쫓고 있다. 일상이 한가로울 뿐.

결국은 문희만일 것이다. 확실히 잡을 수 있을 때 힘을 집중한다. 불필요한 곳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야생의 포식자처럼. 아무래도 잡기 힘들 것 같으면 포기도 빠르다. 그냥 놓아주는 포기가 아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잠시의 숨 고르기다. 스스로 지치지 않으려는 휴식과 잠시의 여유다. 눈은 사냥감을 쫓는다. 쫓지 않는 척 사시로 사냥감을 노려본다. 사바나는 한가롭다. 당장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고 포식자가 그 피로 배를 채우는 동안에도 바람은 살랑이며 초식동물들은 풀을 뜯는다. 여유롭게 늘어진다.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기분좋은 위화감일 것이다. 긴장되는데 소소하고, 늘어지는데 압박감을 느낀다. 더구나 그것들이 마치 하나처럼 촘촘이 유기적으로 서로 섞이고 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하다. 버리는 군더더기 없이 여백처럼 여유롭다. 지치지 않고 재미있다. 얼마나 공을 들이면 이렇게 짜여질 수 있을까?

어쩌면 13년 전 구동치가 구하려 했던 것은 한열무의 동생 한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13년 전 그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한결의 죽음은 그렇게 급하게, 더구나 담당 검사조차 모르게 빠르게 정리되고 잊혀질 수 있었던 것인지. 기록마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구동치가 미리 복사해 놓은 것이 남은 전부다. 강수(이태환 분)는 물에 빠지는 꿈을 강박적으로 반복해서 꾸고 있다. 강수의 과거가 그곳에 숨겨 있다. 정창기(손창민 분)가 유독 강수에게 약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문희만 역시 강수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밝혀지는 과정 중이다. 어느 세월에 연애할것 다 하고 그 모든 진실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

소소해서 재미있다. 사건이 더욱 커지면서 긴장감 역시 강하게 조여든다. 충분히 오해하게 만들고 이제는 하나씩 궁금할 정도로만 풀어 놓는다. 송아름의 입에서 나온 위험한 이름들과 그리고 구동치와 한열무가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13년 전 사건의 진실, 하지만 역시 그들이 살아가는 것은 현재다. 바로 지금 여기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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