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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6 09:21

계백 "시나리오에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 급하다!"

개연성따위 신경쓰지 않는 그 대범함에 감탄한다.

 

조금은 신선했다. 순간 풍등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풍등과 연이라. 그런 식으로도 사실을 알려 여론을 만들 수 있겠구나. 그런데 과연 누가 그것을 읽을까? 백제의 백성 가운데 그 내용을 읽고 알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이며 그들은 얼마나 명백한 반역을 저지른 죄인들을 구하는 힘이 되겠는가.

하기는 실제로도 백성들이 나서서 무어라도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소요를 일으켰을 뿐이고 그것이 무왕(최종환 분)이나 사택왕후(오연수 분)에게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무왕은 여전히 반역을 일으킨 생구들을 죽이려 하고 있었고, 사택왕후 역시 그것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나서서 백성들 앞에 모든 사정을 설명하려 드는 대좌평은 어찌할 것인가.

결국은 너무 성급하게 쓰는 까닭이다. 일단 생구들이 난을 일으켰다. 그것을 과연 어떤 식으로 수습할 것인가. 그런데 시간의 여유가 없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기계로 만든 신에 의존하듯 백성들의 여론이라는 상투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굳이 무왕이 그것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천단향(이태경 분)이라는 예언자가 등장해 무왕을 압박한다.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되는 허점들을 어거지로 끼워맞추려는 것과 같다.

당장 성충(전노민 분)과 계백(이서진 분)을 탈출시키기 위해 흥수(김유석 분)이 즉석에서 꾸민 계략이라고 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작해야 말을 타고 날뛰는 것이다. 그것도 몇 마리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지휘자가 있다면 가장 먼저 날뛰는 말부터 죽이거나 해서 제압했을 것이다. 더더구나 그 자리는 최고의 권세를 누리는 대좌평 사택적덕(김병기 분)이 함께 있는 자리였다. 대좌평이 위험할 수 있는데 그저 우왕좌왕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백제가 망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 마디로 알아서 당해준다.

즉 일을 벌리고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때면 결국 해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굳이 인위적으로 만들려 들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억지가 발생하고, 다시 억지에서 무리수가 나타난다. 개연성이란 없이 단지 작가가 목적하는 의도만이 드러나는 셈이다. 마치 작가에게 이해를 강요당하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었다. 어떻게? 그냥 알아서. 없다.

그같은 시나리오의 허술함은 무왕의 캐릭터에서도 드러난다. 극에서 인물의 성격이라는 것은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하는 것이다. 설명하여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써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캐릭터와 관계와 사건은 함께 간다. 주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말로만 비정하다 할 것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동안 무왕은 아들 의자를 죽일 만큼 냉혹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가.

하기는 그러한 냉혹한 권력자의 모습마저 무왕은 얼마 유지하지 못한다. 신녀 천단향(이태경 분)이 찾아와 동성왕이 백가에게 죽은 것을 들어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그대로 허물어지고 마니. 오히려 이쪽이 무왕의 캐릭터에 어울린다. 무언가 대단하게 일을 꾸미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자기에게 위험이 돌아올 것 같으면 바로 발을 빼고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마니. 그러고서는 그 모든 책임은 사택왕후와 사택씨에게 돌리려 하고. 자기는 그저 선의의 피해자라는 듯. 그것도 정치력이라면 정치력일까?

아들 교기(진태현 분)가 오히려 부여씨가 아닌 사택씨인 것처럼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사택왕후만을 따르려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성충의 말처럼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서 자기세력 하나 없이 사택씨와 맞서 왕위를 지켜 온 것이 아니라, 정작 자기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바로 숙이고 타협할 줄 아는 영리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충도 그다지 대단한 인물은 못 된다고나 할까? 나중에 결국 의자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에 대해 무왕의 됨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복선이 될 수도 있겠다. 무왕은 오히려 자기에게 불리해질 것 같으면 얼마든지 발을 빼고 양보하여 타협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이 사건을 해결했다.

하나같이 유기적으로 촘촘히 짜여진 개연성의 얼개란 찾아볼 수조차 없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나열한 다음 나머지를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전혀 설득력 없는 무리한 설정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도저히 드라마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조금만 집중을 해서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따라가려 해도 어느새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이니 말이다. 길은 끊기고, 혹은 막다른 골목이거나, 전혀 생뚱맞은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거나. 지금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 그런데도 드라마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해야 하는 것인지.

캐릭터들은 평면적이고 그래서 과장되어 있다. 극중의 캐릭터가 과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가 과장되어 있다. 배우들의 열연에는 그래서 무어라 하지 못하겠다. 그같은 허술한 대본에서도 그렇게까지 캐릭터를 드러내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무어라 하겠는가. 아마 배우들 자신도 자신들이 연기해야 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을 것이다. 보고 있는 필자가 다 민망했다.

그리고 하나 사족을 붙이자면 사택적덕이 내신좌평 기미(김중기 분)로부터 뇌물을 받는 장면에서. 그러나 뇌물이라는 자체가 결국 관료사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귀족이라면 토지와 인신 등 생산수단을 독점하여 지배하고 있던 이들을 일컫는다. 소소하게 국가의 재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뇌물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점유하고 있는 토지와 인신을 통해 그 생산물을 수취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며 그를 기반으로 권세를 누리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대좌평이라는 벼슬은 따라서 그러한 대귀족에게 있어 명예직에 불과했다. 관료제도가 완벽하게 정착되지 않은 사회에서 귀족들이나 누릴 수 있었던 좌평이라는 관직이 그렇게 뇌물을 상납할 정도로 대단한 자리였는가. 그보다는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택적덕이 말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풀어야 하는 재물이 더 많았을 것이다. 막말로 뇌물을 받아 쓰는 사택적덕에 대해 오히려 재물을 쥐어주는 연문진(임현식 분)이라 한다면 누구의 편을 들어주겠는가.

오히려 계백으로 하여금 사택씨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백제의 모순을 깨닫도록 하고자 했다면 중앙의 명령조차 거부하며 그들이 독점하고 있던 대토지의 현실을 보여주는 편이 좋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큰 문제인가. 당장 가잠성 공략에서도 도리어 사택씨의 사택왕후와 교기는 앞장서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결국 신라와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동원하는 병력이란 사택씨와 같은 대귀족의 사병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그들의 부야 말로 백제를 지탱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고대사회란 바로 그러한 중앙정부와 귀족과의 결탁을 통해 유지된다. 바로 봉건사회와 관료사회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역시 묘사가 허술하다.

항상 보면서 느낀다. 아마 작가가 무능해서는 아닐 것이다. 무능한 사람이 이와 같은 대작 드라마의 대본을 맡는다는 것은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사 자체의 문제다. 그보다는 너무 여유가 없지 않은가. 충분한 여유를 두고 대본을 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해 보고 싶어진다. 큰 기둥줄거리만 잡고 몇 개의 팀이 번갈아 대본을 쓰면 어떨까. 마치 모듈처럼 각각의 파트가 독립된 이야기로 존재하면서 그것을 큰 기둥줄거리가 하나로 꿰어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하긴 그것도 기획의 영역이기는 하다. 지금으로서는 힘들다.

아무튼 어렵다. 이렇게 몰입이 안 되는 드라마도 오랜만이다. 이런 종류의 무협스러운 분위기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 경우도 드물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차라리 아직까지 보고 있는 필자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많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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