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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9.04 08:16

TOP밴드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꿈이란 희망이기에 더한 절망이기도 하다!

 
어느 기타리스트의 탄식이 떠오른다. 기타리스트이기에 연습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들려줄 무대도 대중도 없다. 그래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 순간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꿈이란 희망이다. 그래서 절망이다. 이루려 하는 것이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 반드시 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현실이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재능이 부족해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도 아니면 다른 어떤 현실적 이유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꿈은 멀기만 하다. 아니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마저 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데 그 바라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절망하며 주저앉고 만다. 좌절하며 포기하고 만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꿈을 꺾고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불행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사람의 삶이란 어쩌면 그같은 절망과 좌절을 딛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마침내 무대 위에서 웃을 수 있었던 이지혜씨의 눈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픈 좌절과 절망을 딛고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시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밝에 웃으며 무대 자체를 감사하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울 수 있게 되었다.

라이밴드가 부른 '거위의 꿈' 그 어떤 노래보다 아프게 필자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던 이유였다. 라이밴드의 <TOP밴드>에서의 마지막 무대에 기타리스트 신수인씨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 MR만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토너먼트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기타리스트가 이탈해 버린 것이다.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 이렇게 해서 네 사람이 라이밴드였다. 이 네 사람이 한 데 모였을 때 라이밴드의 음악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중요한 기타가 빠져 버렸다. 한참 낮던 승산이 이제는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절망스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무대를 즐겼다. 무대에 감사하며 그들이 느끼는 기쁨과 감동을 관객과 시청자와 함께 음악을 꿈꾸는 다른 모든 동지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세상에 진심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같은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무대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끝내 16강에서 떨어지고 말았음에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었다.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아픈 시련을 겪고 작으나마 꿈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기쁘고 그것이 고마워서. 그리고 그런 자신이 대견해서.

이지혜란 진정으로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아픔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마저도 꿈의 일부로써 보듬을 줄 아는. 그리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 할 줄 아는. 꿈을 꾸는 그 자체로써 즐겁고 행복하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얼마의 인고의 세월이 있었을까. 그래서 더욱 그녀의 눈물은 그녀의 웃음만큼이나 빛이 났던 것이었다.

잊지 말라 했는가? 어찌 있겠는가. 그런 무대를 보아 버렸다. 그런 음악을 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그와 같은 진정을 느껴 버렸다. 음악을 듣는 순간 떠오를 것이다. 우연히 이름을 듣게 된다면 무대를 찾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 순간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영원이라는 말은 부질없지만 순간이라는 단어는 무엇보다 값지다.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있던 터다. 누구는 아닐까? 꿈이 그리 아름답던 시절. 꿈이 그토록 간절하기만 하던 무렵이다. 그러나 누구나 좌절을 알게 되고 절망을 겪게 된다. 주저앉고 포기하게 된다. 돌아보느니 그저 아련한 후회와 미련 뿐. 그래도 그 순간을 이겨내고 자기 자신을 대견해할 수 있으니 보고 있는 자신마저 흐뭇해진다. 왜 내게는 저와 같은 의지와 용기가 없었을까. 어쩌면 내게도 저와 같은 즐거운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꿈을 꾸는 이들을 위해서. 하기는 <TOP밴드>에 출전하고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게이트플라워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로큰발렌타인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음악대상을 수상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밴드콘테스트인 아시안비트 그랜드파이널에서 대상을 수상했었다. 사실상 이와 같은 오디션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반칙처럼 여겨지는 검증된 밴드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 냉혹했다. 설 수 있는 무대도 그들의 음악을 들어줄 대중조차 전혀 없었으니. 오히려 아시안비트에서 대상을 받았기에, 대상을 받고서도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현실에 더 절망감을 느꼈다는 브로큰발렌타인 멤버의 어머니의 말씀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밴드를 하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고 하지만 방송에서도 나왔듯 직장일과 밴드를 겸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일이 많으면 일하느라 연습을 빠져야 하고, 회식이라도 있으면 그것 때문에도 연습을 못하게 되고, 어디 멀리 공연을 갈 기회가 있어도 일이 걸려서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그만두면 다른 뾰족한 대책이 있는가. 사실 그래서 많은 밴드들이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음악을 그만두고 해체되고 만다.

차라리 그저 취미로나 즐기고 마는 것이었다면. 그랬다면 그런 현실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들려줄 수조차 없다고 하는 현실은 그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대중 앞에 설 수 있고 사람들에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TOP밴드>란 얼마나 고마운 기회인가 말이다. 자작곡 미션을 기대하며 8강 진출을 소망한다는 블루니어마더의 기타리스트 한준희씨에 대한 아내의 응원은 그같은 간절함을 가진 이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나만의 무대를. 대중들 앞에 설 수 있는.

그래서 이상은이며 송홍섭이며 정원영, 한상원 등 방송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대단한 음악인들이 발벗고 코치로써, 심사위원으로써, 심지어 홍보에까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원래 <TOP밴드>에 대해 이제는 밴드 가지고도 오디션을 하느냐고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신해철이 코치를 맡고 심지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예능출연마저 앞장서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당장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작은 계기는 되어 줄 수 있다. 힘들게 음악을 하고 있는 많은 밴드음악인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이 되어 줄 수 있겠다.

희망을 본다. 밴드와는 전혀 친하지 않던 사람들이 <TOP밴드>를 통해 밴드의 이름을 알아가게 되었을 때. 한동안 밴드와 멀어졌던 사람들마저 다시금 밴드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시청율은 여전히 낮지만 그것을 단지 시청율로만은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같은 더 많은 순수한 음악인의 열정과 대중이 만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오죽하면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던 프로그램 도중의 간접광고에 대해서조차 시즌2를 위해 소중한 스폰서라며 시청자 자신이 고마워하고 반가워할 정도다. 그만큼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아무튼 무대 자체로만 본다면 기타리스트라고 하는 중요한 전력이 빠진 라이밴드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한계를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드럼과 베이스의 앙상블은 훌륭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제까지의 무대에서 라이밴드가 보여준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멋지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려는 색다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고 했던가? 심사위원 이상은의 평가처럼 이지혜의 목소리는 '거위의 꿈'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노래 속에 하나의 대하드라마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그 짧은 노래 속에 들어 있던 이야기였다.

완성도는 POE가 단연 뛰어났다. 비틀스의 원곡 'Hey Jude'가 점잖게 아이를 타이르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면, POE의 리메이크는 마치 조카 앞에서 애인에 차이고 푸념을 늘어놓는 나이 차 나지 않는 아직 어린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인생은 어차피 이런 것이라.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냉소적이고 체념적이면서도 얼핏 장난기가 느껴진다. 원래 애들 앞에 두고 괜히 염세주의를 읊고 하는 것도 어른이 갖는 특권이기도 하다. 기타리스트가 없다고 하지만 밴드 안에서 기타리스트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김윤기의 플레이가 유독 돋보였다.

다만 WMA와 블루니어마더의 경우는 욕심이 지나쳤는지 조금 산만한 감이 보였다. WMA는 짧은 무대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우겨넣으려 한 듯한 느낌이었고, 블루니어마더는 지나치게 원숙한 것이 단점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한 마디로 WMA는 산만했고 블루니어마더는 평이했다. 특히 블루니어마더의 경우 '그때 그사람'은 원래 셔플리듬의 바운스감이 생명인 노래였다. 멜로디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특유의 통통 튀는 셔플의 바운스감이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을 편곡하는 과정에서 죽여버림으로써 후반에 가면 멜로디 자체가 매우 밋밋해진다. 음향의 문제인지 베이스가 두드러지며 기타의 플레이를 막아버렸고. 더구나 보컬 문지성씨의 가끔 발음을 얼버무린다던가 하는 문제가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게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WMA의 경우는 연주 자체는 미숙했지만 보컬 손승연이 누나로써 훌륭하게 밴드를 이끌고 순항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여튼 가장 나이 많은 멤버라고 해봐야 고등학교 3학년, 그러나 음악계의 대선배를 앞에 두고도 할 말은 일단 다 하고 본다.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 것 같고, 한참 어리고, 그래서 한참 미숙하고 서툴지만, 그러나 자신들의 음악에 책임을 지고 무대에 서야 하는 그들 또한 음악인이므로. 16강 최연소밴드인 WMA와 코치 한상원의 갈등이다. 지난주에는 신해철과 번아웃하우스가 그리 싸우더니만. 정원영과 시크, 노브레인과 아이씨사이다.

<TOP밴드>만의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어쩌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가장 독할 것이다. 코치와 밴드가 싸우고, 다시 코치는 코치끼리 밴드는 밴드끼리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고. 그러나 끝나면 서로 얼싸안을 수 있는 그런 신뢰가 그같은 짓궂은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토너먼트에서 지고서 처음 져주겠다 말한 것을 떠올리며 약속을 지켰다 한 블루니어마더의 한준희씨의 말에 WMA의 손승연도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드디어 다음주면 최악의 대진이라 일컬어지는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의 대결이 펼쳐진다. <TOP밴드>에서 게이트플라워즈, POE와 더불어 4강으로 꼽히던 나머지 두 팀이 16강에서 맞붙는 것이다. 예고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과연 그들은 어떤 무대로써 그 이름값이 어울리는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까.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16강에서 떨어진 번아웃하우스, 시크, 라이밴드, 블루니어마더, 24강에서 떨어진 진수성찬, 이븐더스트, 블루오션, 업댓브라운, 비스, BBA, 리카밴드, 파티메이커, 그리고 그 밖에 많은 밴드들을. 밴드의 멤버들을. 때로 TV란 전혀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채로도 친구로 만들어준다. 음악이 있고 같이 했던 시간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들로 인해 행복했다.

토요일에는 드라마보다 탑밴드를! 음악이 좋아 보기 시작해서 사람이 좋아 중독된다. 서바이벌이 갖는 장점일까? 음악을 소재로 사람을 주제로 삼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만큼 가장 소중하고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만남을 소중하게. 그 즐거움을 기쁘게. 토요일 가장 즐거운 이벤트일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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