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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29 17:13

남자의 자격 "그들이 농촌으로 간 까닭은...?"

"남자의 자격"이 "무한도전"과 다른 이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는 이경규의 모습은 무척이나 정감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툇마루에 누워 둥귀는 이경규의 모습은 부럽도록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과연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남자의 자격>이 추구하는 진짜 모습이었을까?

하기는 귀농이라는 자체가 그렇다. 농촌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어디서? 최소한 농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농촌이 아닌 그곳에 지금의 삶의 터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농촌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뜻일까? 아니면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난 농촌의 모습을 '즐기고' 싶은 것일까?

실제 농사꾼이 되어 농사를 지으려 한다면 지금처럼 마냥 웃으며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몸이 힘든 것이 아니다. 지금 짓는 농사로 한 해 수입이 결정되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 걱정에, 기껏 키워서는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 근 심에, 땀이 한 말이면 걱정과 근심은 두 가마니 세 가마니를 넘는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시장에 거둔 것을 내다 팔고, 수박을 거두어서는 동네 주민과 나누어 먹고. 그것은 농사꾼의 모습이 아니다.

몸이 힘들다고 다 같은 노동이 아니다. 항상 앉아서만 일을 하던 사람이라면 일어나서 걷는 것이 휴식이 될 수 있다. 늘 계산만 하던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운동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근대 들어 생겨났다. 목적을 가지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노동이라면 몸을 움직이는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운동이다. 운동이란 휴식이며 유희이 개념이다. 몸을 쉬는 운동만이 아닌 머리를 쉬고 가슴을 쉬는 운동도 그래서 존재한다.

평소의 지겹기까지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해본다. 농촌이란 사람들에게 어떤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일 것이다. 잿빛 도시를 벗어나 너른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뙤약볕 아래 밭을 갈고 작물을 거둔다.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작물들과 그것을 즉석에서 거두어 차리는 풍성한 밥상. 툇마루에 앉아서 보는 농촌의 모습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평소 안 쓰던 감성을 일깨우며 전혀 다른 체험 속에 일상의 활력을 얻는다. 농촌이 의미가 있는 것은 평소 농촌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농촌이 아닌 다른 공간이 휴식이 된다.

태권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 태권도를 배워 현실에서 써먹을 일이 무에 그리 많겠는가? 그보다는 역시 하나하나 성취해 가는 맛 아니겠는가? 안 쓰던 몸을 쓰고, 안 하던 동작을 취하고,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며 단계를 밟아 나간다. 노란띠를 따고, 빨간띠를 따고, 그리고 마지막 검은띠가 남았다. 땀을 흘리니 좋고, 몸을 움직이니 좋고, 성취해 나갈 수 있으니 좋다.

탭댄스는 아닐까? 제빵사 자격증 역시 이경규가 굳이 제빵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려는 것인 아닐 것이다. 처음 이경규가 제빵사 자격증을 딴다고 했을 때도 단지 나이를 먹어 손주들이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가 만든 빵이라며 만들어 내놓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때문이었다. 필기시험에 떨어지기까지 실기를 실습할 때는 그래서 이경규도 활력이 넘쳤었다. 이제는 시험 자체가 부담이 되었지만.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나이 먹어서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험도 습관이다. 그리고 요령이다. 기억력도 전만 같지 않고, 집중력 역시 체력과 함께 저하되는데, 그렇다고 마냥 제빵사 자격증만 준비하고 있을 수도 없다. 이경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예능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직 젊은 30대의 전현무와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도전이 즐겁겠지.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그래서 마침내 필기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알공예자격증을 준비하는 김태원이었다. 방송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하기로 한 것이니 하는 것이지만 김태원은 완벽하게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때로는 시답잖은 농담도 하며, 실수를 하고서도 여유를 부리면서, 검은 백조는 없는가? 백조를 만들라니까 알에다 검은 칠을 하고 있었다. 그의 본업이야 어디까지나 음악일 테고, 부업이야 당연히 예능일 테지만, 그러나 알공예를 하는 그 순간의 색다른 경험이야 말로 또한 일상의 다른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아마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같은 미션형 리얼버라이어티로써의 결정적인 차이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독특한 점일 것이다. <무한도전>은 전문 예능인의 프로그램이다. 전문예능인으로써 눈앞에 놓인 미션 자체에 충실한다. 반면 <남자의 자격>은 생활인으로써 일상의 일부로써 미션을 대한다. 얼마나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는가 하는 것보다 그로 인한 일상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농촌에 가서 농사를 잘 지었는가가 아니다. 농촌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그 자체를 휴식으로 여길 수 있는 그것이 <남자의 자격>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 한가로움으로 힘든 밭일조차 즐길 수 있는 그것이 <남자의 자격>이 추구하는 바인 것이다. 얼마나 태권도를 잘하는가보다 그 상처투성이 발이 더 의미가 있고, 얼마나 탭댄스를 잘하는가보다 탭댄스에 열심인 그 모습들이 의미가 있다. 바쁜 일상을 쪼개 즐기는 일상의 활력들. 무엇을 이루려 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그래서 가끔은 편집에서 그런 부분에 보다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때로 착각한다.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니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으니 태권도 선수가 되어야 한다. 탭댄스는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한다. 자격증시험을 치르는데 떨어진다는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굳이 그렇게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즐겁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에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윤석을 주인공으로 "남자의 바쁜 일상"을 사이드스토리처럼 보여주면 어떨까? 오늘은 귀농을, 내일은 태권도를, 모레는 탭댄스를, 그리고 기본으로 합창을 한다. 본업은 대학교수다. 시간을 쪼개 가며 새로운 체험에 도전하고, 그에 자기를 던지며, 마침내 작은 성취를 얻게 된다. <남자의 자격> 촬영 때문만이 아닌 단순히 그러한 새로운 체험들이 즐거워서 설레어하고 기다리고 하는 이윤석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로부터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현재 가장 <남자의 자격>에 충실하며 가장 큰 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이윤석일 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항상 이전과는 다른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의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이윤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윤석은 <남자의 자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것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자격증미션으로 도매기능사 자격증을 딸 때도, 아마추어밴드를 하면서 드럼을 배우면서도, 그리고 이번 상처투성이 발로 마음처럼 안 따라주는 몸을 움직여 마침내 빨간띠를 따내는 모습에서도. 그가 얼마나 몸을 움직이는 일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하고 불리한가를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당당히 윤형빈과 함께 태권도 빨간띠를 따고 있는 것은 이윤석 자신이 아니던가. 단순히 그것이 일이고 촬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로부터 얻어지는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에 이윤석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의 자격>의 미션들이 추구하는 주제와도 닿아 있다.

전문인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프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완성도나 완벽함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즐기는 것이다. 멤버들 자신이. 시청자와도 함께.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전혀 진지하지도 심각하지도 않게. 물론 진지하고 심각해야 할 때는 그리 한다. 그러나 한 꺼풀의 여유를 둔다. 그 여유가 바로 <남자의 자격>이 머무는 자리다.

전현무의 캐스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남자의 자격>에서 밉상이라면 이경규밖에 없었다. 이전의 욱사마 캐릭터를 이용하여 이경규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이경규를 멤버들이 공격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했었다. 그러나 이경규는 너무 나이가 많다. 최연장자로써 지나친 이경규에 대한 공격은 출연자 자신도 부담스럽고 프로그램 자체로도 마냥 좋은 카드만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전현무는 만만하다. 비호감 이미지에 하는 짓도 고분한 것이 없이 밉상이다. 그냥 대놓고 공격해도 멤버들에게 부담이 없다. 심지어 착한 막내 윤형빈조차 같은 막내그룹으로써 기존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마음 놓고 공격해 볼 수 있다. 같은 착한 캐릭터였던 이정진에 비해 윤형빈에게 전현무는 무언가 만들어 보기 좋은 대상일 수 있다. 전현무의 영입은 그래서 윤형빈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단지 수박에 새겨진 이름을 도려내려 하는 모습만으로도. 전현무의 수박이라며 전현무의 이름 '현'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니까 김국진은 주저없이 칼로 그것을 도려내려 한다. 상당히 심한 장면인데 그런데 왜 그리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전현무 혼자 일을 시키고 나머지는 놀고 있으면 그것도 얌체스러워야 하는데 전현무니까 어쩐지 용서가 된다. 이제까지 <남자의 자격>에 없던 캐릭터다. 이경규보다 더한 공공의 적. 이경규도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밉상. 자연히 전현무만 함께 있어도 분량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무튼 정신없지만 그러나 무척 한가로운 회차였을 것이다. 치열한 열정도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비장하지만은 않았다. <남자의 자격>인 것이다. 일주일을 마치고 월요일을 준비하는 일요일 저녁 휴식처럼 즐기기에 좋은 프로그램일 것이다. 가끔 일상에 지쳐 무료할 때 아무 생각없이 사무실을 나와 거니는 근처 작은 공원처럼. 듬성하고 앙상한 나무들이지만 녹색이 활력을 더한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떨어져도 상관없는. 단지 남들 보기 부끄러울 뿐이다. 절박함이란 없다. 진짜 제빵사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리 여유로울 수 없음에도. 수박을 전부 나누어 주고도 즐겁다. 이윤석이 태권도를 배우는 이유는 단지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눈 앞에 그것들이 있고 그것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땀조차 좌절조차 즐겁다.

아등바등 매일이 분주한 내게 있어서도 그것은 하나의 작은 휴식이었을 것이다. 조금은 힘을 빼고 더 여유로울 수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한가롭게 즐길 수 있어도 좋을 것이다. 문득 좁은 녹지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처럼. 그것을 기대하며 보았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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