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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26 08:10

공주의 남자 "신면의 고뇌와 김승유의 귀환..."

비극은 더욱 깊어지고 한도 또한 깊어진다!

 
사실 신숙주도 사육신으로 죽은 성삼문 박팽년과 둘도 없는 절친이었었다. 처음 계유정난이 있고 집현전에서 수양대군을 지지하는 상소가 나온 것도 결국은 신숙주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지도 그래서 신숙주의 설득에 수양대군에게로 돌아섰다.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은 그래도 믿었다. 어차피 꼬장꼬장한 유학자의 눈에야 김종서나 수양대군이나 왕권을 등에 업고 권세를 휘두르려는 권신인 것은 다르지 않았으니 차라리 왕의 숙부가 되는 수양대군이 그래도 왕을 잘 보필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판단은 수양대군에 의한 찬탈로 돌아오고 말았다.

결국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 이개, 하위지, 이 여섯 사람이 중심이 되어 단종의 복위를 위한 거사를 꾸미다가 사전에 김질의 밀고로 모두 죽임을 당하고 그 일족마저 멸족당하는 지경에 놓이고 말았다.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끌려갔다. 노비로 끌려간 여자들은 겁탈당하거나 첩이 되어 주인에 아부하는 등 그 처지가 비참핬다.

물론 당시 신숙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을 것이다. 유성원의 일족인 유자미가 성삼문의 손녀를 구해 며느리로 삼기는 했지만 서슬이 퍼렇던 시절 신숙주가 어찌 한다고 성삼문이나 박팽년, 한때 친교를 나누던 집현전 학자들의 식솔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신숙주가 죽기 바로 직전 성삼문의 처 차산과 효옥이 잠시 풀려났다가 다시 박종우에게 노비로 끌려가는 상황에 신숙주가 도움을 준 정황은 전혀 없었다. 아마 그 무렵에는 성삼문에 대한 친구로서의 의리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면(송종호 분)의 고뇌를 보면서 자꾸 그의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신면 역시 친구인 김승유(박시후 분)와 정종(이민우 분)을 잃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러나 신숙주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함께 집현전에서 학문을 연구하던 동료 상당수와 척을 지게 되었고, 심지어 그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성삼문, 박팽년 등은 일족이 멸족당하는 지경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친구의 아내와 딸이 노비로 끌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숙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결국 집현전 학자들이 세조의 찬탈에 지속적으로 반발함에 따라 집현전마저 폐지되어 버린다. 세종 이래 지속되어 온 관학의 기풍이 이로써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관학은 이후 성종 때 사림이 진출하면서 비로소 그들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 겨우 자리를 잡는 것은 선조 때가 되겠지만.

과연 신숙주도 당시에는 신면처럼 고민했을까? 친구에 대한 의리와, 그 가족에 대한 연민, 그러나 이미 수양대군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었기에 그를 배반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까지. 하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신숙주에 대해 재능은 뛰어났으나 공정하지는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그다지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작 신숙주 자신도 당시 단종복위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최면의 누이를 노비로 하사받고 있었다.

아무튼 시절이 그랬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로부터 배신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친구 김승유인가? 아니면 아버지 신숙주인가? 친구 정종인가? 아니면 아버지 신숙주와 사랑하는 여인 세령(문채원 분)인가?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고, 이제 정종 마저 죽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 얻은 것도 있지만 이미 가진 것을 지키기에는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것은 수양대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평대군은 어찌되었거나 그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친형제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은 물론 그의 아들 이우직까지 연좌하여 죽이고 그 아내와 딸을 공신인 권람에게 노비로 하사하고 있었다. 제수와 조카를 공신에게 노비로 주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금성대군과 단종도 마찬가지였다. 수양대군도 처음부터 금성대군과 단종을 죽일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발이 너무 거셌다. 수양대군의 찬탈에 대한 반발도 거셌고, 이들을 살려두는 것에 대한 종친부와 공신들의 반발도 거셌다. 김종서를 죽이고 왕위에만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했건만 자신을 지지하리라 생각했던 집현전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고립무원에 세조는 도욱 공신들에게 의존하며 측근정치를 펼치게 된다. 당시 전해지는 민담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세조로부터 민심이 멀어져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양대군으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예 죽어 지낼 것이면 몰라도 일단 김종서를 죽이고 거사를 일으킨 이상 기호지세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김종서를 죽여야 했고, 김종서를 죽였다면 안평대군도, 금성대군도, 단종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왕위에도 올라야 했고 자신을 왕위에 올린 공신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뜻을 들어주어야 했다.

그에 비하면 한참 순수한 것일가? 일단 그리 결정한 것임에도 신면은 여전히 생각이 많다. 고민이 많고 갈등도 많다. 여전히 정종은 친구이고, 김승유의 형수와 조카는 그의 친구의 형수이고 조카이다. 세령은 단지 핑계다. 원래 신면이 세령에게 끌리던 것도 그녀의 김승유에 대한 올곧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전히 김승유를 위하는 세령이 사랑스럽지만 끝내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세령이 원망스럽다.

이중적일 것이다. 세령이 더욱 자신을 질책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세령이 자기를 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신면이 끝내 김승유의 가족을 구하려는 세령을 막아서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불어 세령을 위한다는 핑계로 수양대군에게 그 가족을 구명토록 하고 그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보살핀다. 세령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기대가 된다. 세령이 마침내 김승유를 찾아 떠났을 때. 혹은 김승유와 함께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곁에서 그를 질책해주고 지탱해줄 세령이 사라졌을 때 신면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마지막 친구라던 정종이 죽고 나면 그는 여전히 순수를 지키며 자신의 행위를 갈등하고 고뇌할 것인가? 세령이란 어쩌면 그에게 마지막 남은 양심일지도 모른다. 자꾸 이시애의 난 당시 신면이 죽임을 당하는 미래의 일이 머리를 스친다.

조금은 허술했다. 아무리 그래도 절벽 아래 떨어진 김승유의 시체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큰형인 함귀가 죽었는데 그리 비통해 하면서도 정작 김승유의 시체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없다. 최소한 김승유를 죽였다 보고하려면 목이라도 베어 가져다 바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단지 그 말을 믿어버린 수양대군 일파의 허술함도 마찬가지다. 숲속에서 보이던 긴박한 액션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허무한 마무리였다.

결국 김승유는 세령과 함께 있는 신면을 보아 버렸고, 금성대군은 세령과 신면의 혼사일에 수양대군을 제거하려는 거사를 모의하게 된다. 신면으로부터 후행을 부탁받은 정종은 궁궐 앞에서 공주의 행차까지 막아서는 위사들에 분노하게 되고. 정종이 죽을 것이라는 것은 또한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얼마나 비극이 더 교차하려는가.

아직은 세령에게 그다지 비극이 크게 닿아 있지 않다. 어른이 되는가 싶더니만 어쩔 수 없이 당시는 여성이 어른이 될 수 없던 시대다. 여성은 한 사람의 완성된 인격이 아니었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그리고 이제 남자에 의존해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른이 되는 것은 그녀가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비극과 비로소 직접 맞닿는 때일 것이다. 아직은 그녀는 어린아이다. 부모의 힘을 빌려 김종서의 가족을 구하려는 데에서.

무협적인 공간이다. 궁궐과 수양대군을 둘러싼 공간은 역사의 세계에 있다. 그에 비해 김승유가 몸을 숨기고 있는 색주가는 얼핏 중국무협에서 나오는 주루를 닮아 있다. 무언가 음험하고 비밀스럽다. 인물들 역시 조선시대의 인물들이라기에는 지극히 현대스럽다. 역사로부터 벗어나 있는 김승유와 어울리는 공간이다.

재미있어지고 있다. 금성대군의 모의와 그리고 그 순간 한양으로 들어온 김승유. 수양대군의 찬탈모의와 신면과 세령 사이의 갈등. 신면과 세령이 혼사를 치르고 그날 거사가 있으려 한다. 그리고 세령과 신면을 김승유는 본다. 역사와 허구가 교차하고 서사와 멜로가 공존한다. 비극이 깊어지면서 한 또한 깊어진다. 긴장은 고조된다.

벌써 일주일을 기다린다. 다음은? 다음주는? 궁금해 하며 일주일을 기다리고, 그 궁금함을 풀며 이틀을 기뻐한다. 그리고 다시 그 이틀새 새로운 궁금함으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 최고의 드라마일 것이다.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다. 일주일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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