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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05 08:20

위대한 탄생 - 잊지 못할 마지막 콘서트 !

꾸며지지 않은 리얼한 감동의 드라마 !

 
이 순간 만큼은 단연 '회상3'가 아닌 '마지막 콘서트'였다.

"무대에 두 사람이 올라간다. 올라가는 두 사람이 위대한 탄생의 마지막 무대야!"

이미 무대 위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있다. 양정모와 손진영. 김태원 멘토스쿨의 첫탈락자들이다. 박완규와 부활 멤버들 앞에서의 마지막 심사 결과 두 사람의 탈락이 결정되었다.

 

 
노래가 준비되는 사이 이미 가장 나이가 어린 이태권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소녀는 울음 참지 못해"

노래 가사처럼 노래가 시작되자 손진영 역시 북받치는 눈물에 울음을 터뜨리고, 양정모마저 우느라 노래를 잇지 못한다. 무대 아래에서는 이태권과 더불어 합격이 결정난 백청강이 함께 눈물을 흘리고, 멘토 김태원마저, 드럼을 치고 있던 채제민마저 내려와 이들을 보듬어 안는다.

 
"울지마! 울지마!"

부활의 콘서트를 즐기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응원의 함성.

사람들이 굳이 리얼리티를 찾는 것은 그 안에서 드라마를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허구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 실재하는 드라마다. 굳이 동의의 절차가 필요없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일어나는 실제 사건으로서의 드라마다.

물론 반전은 없었다. 붙을 사람이 붙었고 떨어질 사람이 떨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양정모와 손진영은 김태원 멘토스쿨 - 일명 김태원과 외인부대에 속한 네 명의 멘티 가운데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이태권과 백청강은 확실히 이들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보다 위로 올라갈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외모 만큼이나 사연이 있는 출연자들이기에. 외모로 인해 서른이 다 될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오디션을 보지 못했다는 양정모나, 연극을 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음악에 눈을 뜨고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손진영이나, 더구나 둘 다 위대한 캠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멘토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김태원의 선택에 의해 구제되어 20인의 멘티에까지 오르게 되었던 처지였다. 겨우 끝자락이나마 잡을 수 있게 된 꿈 앞에서 마침내 좌절하고 마는 그 마음이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진영이가 왜 처절함부터 배우게 됐는가 그것이 너무나 아쉽다."

아마 대부분 비슷한 심정 아니었을까? 동정일수도 있다. 아니면 그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입한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아쉬움이 비극이 되고 안타까움이 여운이 된다. 비극은 심화되고 감동은 중첩된다.

그것도 하필 무대 위다. 그토록 서고 싶었던 가수로서의 무대 위다. 부활의 콘서트 무대다. 멘토인 김태원과 부활과 나란히 섰을 때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무대가 된다. 살아남은 이태권 백청강이 아닌 양정모 손진영을 위한 마지막 무대다. 과연 이태권과 백청강이 무대에 올랐어도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졌을까? '마지막 콘서트'라는 노래제목과 가사가 이렇게 잘 어울려 맞아 떨어질 수 없다. 그만큼 손진영의 비장함마저 마지막 무대 위에서 감동으로 허용된다.

그것은 김태원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만나기"

그는 시작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1등을 하느냐보다 위대한 탄생이 끝나고 나서의 너희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
"너희들이 영원히 나처럼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을 바란다."

<위대한 탄생>에서 떨어졌다고 그것이 음악인생이 그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무대에 세우려 양정모와 손진영을 부르는 김태원의 목소리는 아무일 없는 양 여상하기만 하다. 어떤 슬픔도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당연히 서야 하는 무대에 서는 양. 그저 게스트 불러다 놓고 막간에 무대 세우려 올려보내는 것처럼.

"이제 너희들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가지만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 무대가 아님을 너희의 진짜 무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진짜 드라마는 그래서 바로 이 부분부터다. 이미 떨어졌다. 꿈에서 미끄러졌다. 실망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그들을 보듬어주는 멘토 김태원이 있고, 채제민이 있고, 그들을 위해 함께 울어주며 그들 몫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이태권, 백청강 두 동생이 있다. 그들을 응원해주는 관객이 있다. 지금 다시 방송을 보면서 그들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이 있다. 위대한 탄생에서는 마지막 무대이겠지만 현실의 무대에서는 이것이 단지 시작일 수 있다. 그 희망과 따뜻함이야 말로 이 드라마에 있어 가장 큰 반전일 것이다.

슬픔이 있다. 좌절이 있다. 절망이 있다. 그러나 슬픈 가운데서도 묘한 따뜻함이 있다. 비극의 와중에도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밝음이 있다. 침잠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관조하며 이겨내는 힘이 있다. 아마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다. 사랑이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김태원이 쓰고 연출한 드라마답게 드라마는 흡사 부활의 음악과 닮아 있었다.

아쉽다면 한 시간이라는 분량의 한계상 한 달이라는 기간동안 양정모, 손진영, 이태권, 백청강 이 네 사람이 노력하고 성장해가는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서로를 위해 흘린 눈물 만큼이나 진한 정이 있었을 텐데도 그것조차 제대로 보여지지 못했다. 그런 것들까지 더해졌다면 감동은 더 배가되고 비극은 더 심화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들이 노력한 성과를 보여주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으니.

손진영의 발전은 괄목상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모두가 의구심을 가지고 심지어 김태원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까지 보냈던 손진영이었는데 부활의 히트곡 "론리나잇"을 부르는 동안에는 과연 왜 김태원이 그를 선택했는가를 한 순간에 납득시키고 말았다. 박칼린마저도 손진영의 노래하는 모습에서 김태원이 왜 그를 선택했는가를 납득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지고 조금만 더 노력이 더해졌다면 과연 어땠을까?

백청강의 발전도 놀랍다. 항상 지적받던 콧소리인데 그 콧소리가 많이 사라지고 나니 목소리가 한결 매력있고 호소력있다. 순수해 보이는 눈빛과 애교섞인 표정이며 몸짓들이 왜 백청강이 <위대한 탄생>최대 팬덤을 가진 주인공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이 있다. 하물며 노래까지 이렇게 잘 하고 나서야. 그에 비하면 양정모며 이태권이며 이전의 폭발적인 모습은 보이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그래도 여전히 두 사람 다 훌륭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뜻밖에 네 사람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조언하고 격려해주는 박칼린과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강한 독설로 네 사람의 자만을 부숴버리는 박완규. 아마 박칼린에게는 가능성이 보였을 테고, 박완규에게는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이 먼저 눈에 띄었을 테고. 정말 가차없다. 박완규는 충분히 그래도 좋을,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훌륭한 보컬일 것이다.

"1절과 2절이 없이 후렴만 있다. 후렴은 누구보다 아름답다."
"항상 40년쯤 지나서 부르는 것처럼 부른다. 2, 3년 지나 앙금이 남았을 때처럼 부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90년대 스타일의 컬러다. 색깔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목소리에 두께를 더할 수 있으면 더 훌륭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전한 마치 시어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김태원의 어록들 역시. 독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가운데서도 촌철살인이라는 말 그대로 적확하게 사실을 끄집어내며 그것을 바로잡아주고 있다. 물론 바로잡는 것은 자기 몫이겠지만 시청자들마저 무릎을 탁 치고 말 정도로 그 내용이 무척 정확하다.

특히 손진영에 대해서 1질과 2절 없이 후렴만 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노래만이 아닌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관조이며 직관이 아니겠는가. 노래는 버스에서 브릿지로 그리고 사비로 점차 긴장을 높여가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1절과 2절이라면 아직 처절해지거나 비장해지기 전의 여상한 도입부일 것이다. 너무 일상에 심각해지거나 하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즐기라. 일상이 아닌 음악에서도. 역시.

"긴장하는 사람은 지고 설레이는 사람은 이긴다."

막 마지막 오디션을 보려는 자리에서 김태원이 한 말도 그래서 의미가 깊다. 부자연스러운 사람은 지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사람은 이기는 것이다. 무대를 두려워하여 그에 눌리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라. 무대에 겁먹으면 위축되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무대를 즐기는 사람은 평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조언이 어디 있을까. 적절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짧고 단순한 어휘가 그래서 때로 두렵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멘토 김태원의, 김태원을 위한, 김태원에 의한 드라마였을 것이다. 김태원이라는 인간의 향기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이 그들에 붙여준 별명 그대로 김태원과 외인부대 그들이었기에 가능했던 드라마였다. 아마 김태원을 캐스팅할 것을 주장한 제작진이 있다면 보너스를 듬뿍 안겨주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멘토 김태원의 역량과 경륜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만 과연 시작을 이렇게 멋지게 끊어 놓았는데 다음 멘토들은 과연 어쩌려는가. 물론 각자 멘토마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기는 하겠지만 벌써부터 불안해진다. 그만큼 김태원과 외인부대의 임팩트가 컸다. 오디션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의 극치였다. 생방송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러면. 덕분에 온통 온인터넷에 <위대한 탄생> 이야기 뿐이다. 단 한 사람의 멘토만 출연했을 뿐인데도.

 
근래 최고의 예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탄생>의, 멘토 시스템의 가치와 의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김태원과 외인부대, 그 결코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그들을 지지해주고픈 이유일 것이다. 존재 그 자체가 드라마이고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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