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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25 09:08

공주의 남자 "한국형 사극액션의 진수를 보다!"

달달한 로맨스와 잔혹한 액션, 기대가 높아진다!

 
필자가 동아시아 세 나라 가운데 대한민국 - 즉 우리나라의 액션스타일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싸움을 참 더럽게 한다. 그런데 멋지다.

현재 방영중인 다른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공주의 남자>에서는 싸우면서 괜히 멋지게 폼을 잡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칼을 들었으면 적을 벤다. 적을 만났으면 오로지 적만을 벤다. 계유정난을 묘사할 때도 그래서 액션은 매우 간결하고 치명적이었다. 불필요하게 칼을 부딪히며 거창한 액션을 취하는 것 없이 칼을 휘두르고 베이고 죽는 모습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노가 되어 강화도로 가는 장면에서 수양대군의 지시를 받은 함귀 일당이 배를 침몰시키려 했을 때 배 안에서의 싸움이란 가관도 아니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죽이는 것이었다. 열쇠를 손에 넣어 족쇄를 풀고 침몰하려는 배를 빠져나가기 그 한 가지만을 위해서. 과연 김승유(박시후 분)가 이름 모를 죄수를 칼을 쥐고 직접 찔러 죽였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물 위에 떠 있으면 화살을 쏘아 죽이고, 배 위로 기어 올라오려 하면 칼로 베어 죽이고, 섬으로 상륙해서는 토끼몰이 사냥을 한다. 무기가 없는 죄수들이 무기를 든 함귀 무리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참하게 사냥을 당해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 조석주(김뢰하 분)와 김승유가 주도한 반격은 어두운 숲에서 기습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도망치고 멈춰 숨었다가 적이 나타나면 급습해 죽이고 다시 도망친다. 김승유가 함귀를 죽일 때에도 공수입백인으로 칼날을 잡아 다시 반격해 죽이는 묘기 대신 진흙탕을 뒹굴며 싸우는 추잡함의 끝을 보여주었다면 더 극적이었을 텐데.

근래 보았던 액션 가운데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최고였다. 목적이 분명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동선은 그 목적에 충실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절박함이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내게 죽느냐? 아니면 네가 죽느냐? 굳이 많은 인력에 대단한 특수효과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액션은 멋질 수 있다. 추노의 제작진이라는 점에서도 장차 김승유가 수양대군 일파에 복수하는 과정에 대해 더욱 기대치가 높아지는 이유다. 제대로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참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렇다. 미워하려 한다고 미워지는 것이 아니다. 싫어하려 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다. 원망하고 증오하고 싶지만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헤어짐은 불현듯 어느 순간 깨달음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된다면 인류의 문명에 로맨스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세령(문채원 분)의 목을 조르더니 끝내 멀어지는 세령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에. 차라리 원망하며 악이라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세령을 원망하고 저주하고서야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영영 세령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에조차 아버지와 나누던 대화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된 노릇이란 말인가. 그 여인으로 인해 네 삶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과 그래도 그 여인을 마음에 품고자 한다는 자신의 다짐.

체념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학이었다. 자기에 대한 질책이었고, 그러면서도 자기에 대한 합리화였다. 자괴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셨고 아버지께도 그리 말씀드렸다. 여전히 그는 혼란스럽고 그래서 강화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조차 그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아버지를 직접 베어 죽인 함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대로 죽어갔을 것이다. 증오는 절망 속에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승유는 세령을 만나고서도 전혀 살아갈 의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세령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다. 그러나 그 아버지 수양대군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김승유 또한 수양대군에 의해 아버지와 형을 잃고 그 자신도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녀가 의도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친아버지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기에 그녀의 죄책감 또한 결코 작지 않다.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원망의 말을 듣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주었으면. 탓하고 욕하며 네 잘못이다 원망하고 죽이려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녀로서는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그로부터 원망을 듣게 되었으니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차라리 김승유가 자기를 죽이러 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겠다는 말은 그래서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죄와 김승유의 원한을 자기가 짊어지고 죽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살아 있는 것이 지옥이다.

사실 그들의 탓은 아니었다. 그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단지 세령의 아버지가 수양대군이었을 뿐이었다. 김승유가 김종서의 아들이었을 뿐이었다. 수양대군의 야심이 계유정난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김종서와 그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령이 직접 한 것도 아니고 김승유가 무어라도 손을 거든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수양대군의 딸로써, 김종서를 아비로 둔 이로써 휩쓸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토록 지순한 순수한 사랑마저도 더 할 나위 없이 죄스럽도록. 사랑이 죄가 된다. 비련의 이유다.

계유정난 이전이 경혜공주(홍수현 분)와 정종(이민우 분)의 이야기였다면 계유정난 이후는 거의 신면(송종호 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세령으로부터 벗을 배신한 파렴치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세령이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가며 김승유를 살리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그의 안에서는 무언가 들끓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세령의 진심을 김승유에게 전하고 싶고, 김승유가 세령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그리고 그것은 수양대군의 딸인 세령에 대한 김승유의 대답을 듣기 위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과연 아버지의 일과는 상관없이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김승유를 질투하는 가운데서도 두 사람이 잘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지막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승유는 그러한 바람을 저버렸고, 세령을 진심으로 죽이려 했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신면이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아마 그 순간일 것이다. 운명이 김승유의 세령을 갈라 놓았듯 김승유와 자신의 사이도 갈라놓았다. 세령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김승유가 자신을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기는 다른 수단도 없었다. 신숙주야 수양대군의 사람이었고 신면 역시 수양대군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수족에 불과했다. 단지 확인 차원이었을 뿐.

다만 그럼에도 김승유의 부탁은 거절했으면서도 세령의 부탁을 핑계삼아 김승유의 형수와 조카를 의원에게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신면의 갈등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이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김승유와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기에 그의 부탁을 거부했지만 김승유의 형수와 조카에 대한 의리로 굳이 세령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아마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신면이 자신이 아닐까. 친구로부터 비난받고, 스승으로부터는 동정을 받고, 살아하는 여인으로부터는 경멸을 받는다. 어찌해야 할까.

결국 김승유가 함귀 일당을 제거하고 서울로 돌아오면 나머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보다 공고해져가는 수양대군의 치세와 그러한 수양대군에게 복소수하려 기회를 노리는 김승유. 서로 엇갈리는 신면과 세령의 갈등까지. 세령과 다시 재회하는 김승유와 김승유와 다시 재회하는 세령. 그리고 처절한 복수극.

거친 시대를 살았던 연인들의 달달한 로맨스와 그에 못지 않게 격정적인 사실적인 액션을 기대해 본다. 점차 고조되어가는 요일이었다. 즐거운 일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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